660년 나당연합군에 백제가 멸망할 당시 웅진성(공주)으로 피신한 의자왕을 당나라에 넘기고 중국으로 들어가 무관으로 출세한 예식진 일가족 무덤이 당나라 서울인 지금의 중국 산시(陝西)성 시안(西安)에서 발굴됐다. 백제부흥운동사 전공인 김영관 제주대 교수는 2010년 4월 시안시 문물보호고고연구소가 대학가인 시안시 창안(長安)구 궈두난춘(郭杜南村)이라는 곳에서 당나라 중기 때 무덤 3기를 발굴한 결과, 이들이 각각 예식진과 그의 아들 예소사, 손자 예인수의 무덤임을 확인했다고 27일 말했다. 이곳이 백제 유민 예씨 집안 공동묘지라는 사실은 예소사와 예인수의 묘지명이 발굴됨으로써 밝혀졌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품(品)’자 형태로 배열된 이들 세 무덤 중 예식진 무덤은 도굴이 극심하고 무덤 주인공을 밝혀 주는 묘지명은 발굴되지 않았다. 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볼 때 2006년 중국 뤄양(洛陽)의 골동품 가게에서 묘지명이 발견된 예식진의 무덤이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김 교수는 특히 이번 발굴을 통해 예식진이 백제가 멸망할 당시 웅진성으로 피신한 의자왕을 당나라에 넘겼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백제가 멸망할 당시 웅진성으로 피신한 의자왕을 당나라에 넘겼다는 기록은 ‘소정방 열전’에 나오지만 이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이번에 발굴된 예식진의 손자 예인수의 묘지명에 ‘할아버지가 중국 황제 고종에게 의자왕을 끌고 가서 바쳤다’는 기록이 분명하게 나온다”고 밝혔다. 예씨 집안 인물 묘지명으로는 이들 외에도 지난해 7월 중국 학계에서 보고한 예군 묘지명이 있으며, 그 내용을 검토한 결과 예군은 예식진의 형으로 드러났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김 교수는 이들 예씨 집안 4명의 묘지명에 대한 분석 결과를 28일 오후 2시 서강대 정하상관 610호에서 열리는 제111차 신라사학회 발표회에서 공개한다. 김 교수는 이들 묘지명을 통해 “백제 예씨 가문의 가계를 복원하고 이들이 백제와 당에서 어떤 활동을 펼쳤는지를 알 수 있다”면서 “특히 묘지명을 통해 예씨 가문이 중국에서 백제로 건너간 후손으로 여겼다는 점이 독특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