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7년 10월 12일 고종은 황제 즉위식을 갖고 다음 날 세계에 한국 최초의 자주적 근대국가인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나라의 임명장과 도장을 만드는 보책조성소는 이날부터 즉위식에 쓰인 책보(冊寶·임명장과 도장)를 싣고 환구단으로 가는 반차도(班次圖·나라의 행사 장면을 그린 그림), 향과 보책을 싣고 가는 황금색 가마, 각종 의장 등 즉위식의 전말을 상세히 그린 "대례의궤(大禮儀軌)" 총 9권을 만들었다. 그중 한 권은 1922년 일본에 넘어갔다. 조선총독부가 일본 궁내청에 기증하는 형식이었다. 그 비운의 "대례의궤(오대산 사고본)"가 18일 돌아온다. 이날 방한하는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직접 들고 오는 형식이다. 정부 관계자는 16일 "노다 총리가 한·일 간 우호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일본이 돌려주기로 약속한 도서 1205권 중 고종의 자주 의식이 담긴 "대례의궤"를 비롯해 순종이 왕세자 시절 순명왕후 민씨와 올린 결혼식을 기록한 "왕세자가례도감의궤(상·하)" 2권,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 2권 등 상징적인 도서 5권을 18일 방한할 때 직접 반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8일 대례의궤 등 5권을 들고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으로 입국하는 노다 총리는 이날 곧바로 청와대에 들어가 전달식을 가질 예정으로 알려졌다. 일본이 대례의궤 등 5권을 고른 것은 우리 정부 입장을 최대한 반영한 결과로 알려졌다. 조선왕실의궤 환수 운동을 벌여온 혜문 스님은 "대례의궤를 총리가 (사과하는 의미로) 직접 돌려준다는 것은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다"고 했다. |
▶일본 총리가 들고오는 대례의궤·가례도감의궤는 ▶"오전에 황단(皇壇)에 임하시어 하느님께 제사하시고 황제위에 나아가심을 고하시고, 정오에 만조백관이 예복을 갖추고 경운궁에 나아가 대황제 폐하, 황태후 폐하, 황태자 전하께 크게 하례(賀禮)를 올리니, 백관이 즐거워들 하더라. 집집마다 태극국기를 높이 걸어 인민의 애국지심을 표하며, 길에 다니는 사람들도 얼굴에 즐거운 빛이 나타나더라." 1897년 10월 12일, 독립신문은 고종이 환구단에서 황제로 즉위하던 현장을 이렇게 적었다. 독립신문이 근대적 미디어로서 당시 행사를 기록했다면 전통 방식으로 기록한 것이 바로 "의궤"다. 의궤는 국가 주요 행사의 상세한 내용을 그림과 함께 기록했다. 18일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들고 올 "대례의궤(大禮儀軌)"와 "왕세자가례도감의궤(王世子嘉禮都監儀軌)"는 특히 조선말~대한제국 초기의 주요 국가 행사를 상세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대례의궤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자신이 황제가 됐음을 만천하에 알린 전 과정을 기록하고 있고, 가례도감의궤는 1881~1882년 당시 왕세자이던 순종의 결혼식 과정을 소상히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례의궤에는 대한제국의 국새인 "황제지보(皇帝之寶)"가 그려져 있다. 거북 모양으로 만들었던 다른 조선 국새와 달리 황제를 상징하는 용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함께 올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는 정조가 동궁 시절부터 국왕 재위 기간까지 지은 시문(詩文), 교지(敎旨) 등을 모아 규장각에서 펴낸 것이다. 총 100권 중 2권을 총리가 직접 들고 온다. |
▶나머지 1200권은 언제 오나 ▶일본 궁내청(宮內廳·왕실 담당 행정기관)에 보관돼 있다가 반환되는 한국 도서는 150종 1205권. 지난 6월 10일 발효된 "한·일 도서협정"에 따라 나머지 1200권도 12월 10일까지는 돌아와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향후 인수인계 절차 등을 협의하는 데 최소 2~3주 정도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이르면 11월 중순쯤 모두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반환되는 도서는 위험 분산을 위해 항공기 두 편 이상으로 나뉘어 서울로 돌아온다. 문화재청은 책이 모두 반환되면 2주 후에 종묘에서 고유제(告由祭) 등 간단한 환영 행사를 열 계획이다. 반환 완료 후 두 달 뒤에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특별 전시회를 개최해 일반에 공개한다. ▶소장처는 어디? 일본에서 반환되는 도서 1205권은 모두 일단 국립고궁박물관으로 간다. 하지만 강원도 등에선 "40여종 80여권으로 추산되는 조선왕실의궤만은 본래 보관 장소인 강원도 오대산 사고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고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다. 오대산 사고가 있는 월정사가 주축이 된 "조선왕조실록 및 왕실의궤 제자리 찾기 범도민 추진위원회"는 한승수 전 국무총리, 김진선·이광재 전 도지사, 정념 월정사 주지를 공동 대표로 하고 종교계를 포함한 각계 대표를 고문으로 추대하는 한편 100만명 서명운동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는 "국민이 가까이 접근할 수 있고, 보관·조사·연구 및 전시·홍보에 가장 적합한 곳은 국가기관이다. 문화재청이 반환 도서를 인수하는 만큼 보관·관리는 국립고궁박물관이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일단 국립고궁박물관에 두면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종합적으로 검토해 환수 의미를 잘 살리면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는 곳으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