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에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이마에 큰 혹을 달고 있던 어르신에게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요양병원으로 출근하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나는 요양병원에서 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병원에서 2년을 근무하다가 결혼과 함께 그만두었었다. 그러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 사는 곳에 위문을 갔다가 "저처럼 옛날 간호사들도 필요하면 전화주세요"라고 의례적으로 한마디 했다. 그런데 한 달 후 전화가 왔다. 내가 필요하다니… 예순이 돼 가는데…. 그렇게 석 달간 봉사를 하다가 아예 정식 간호사로 나섰다. 혹시 나이가 든 간호사를 싫어할까 걱정도 했지만, 나이 드신 분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 준다고 오히려 좋아하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벌써 1년 전 일이다. 밤 근무 간호사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고 어제 상황을 인계받고 한숨을 돌리는데, 누군가 간호사실로 뛰어들었다. "선생님, 제 고무신이 없어졌어요. 누가 훔쳐갔어요." 머리는 늘 헝클어져 있지만 표정만은 진지한 94세의 치매 할머니다. 고무신을 꼭 찾아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병실로 모셔드린다. 할머니의 옷장 속은 크고 작은 보자기로 가득 차 있다. 병실에서 없어진 물건은 모두 그곳에 들어 있다. 숟가락과 젓가락이 한 묶음씩 나오곤 한다. 신던 운동화와 구두, 배식하는 밥그릇과 간장종지, 남이 입다 버린 속옷까지 켜켜이 쌓여 있다. 아침부터 고무신 타령을 하시더니 창 밖에 눈이 내리자 보따리를 이고 피난가야 한다며 종종걸음을 치신다. 아마도 그 춥던 1·4 후퇴 때를 기억하시나 보다. 땀이 줄줄 흐르던 지난여름 복날에도 속바지를 있는 대로 껴입었던 할머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도 무조건 "아저씨"라 부른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선생님, 배가 아파요. 약 좀 주세요." 늘 과식해 배가 아프다는 할머니는 한 개가 정량인 소화제를 꼭 두 알씩 받아간다. 그래서 소화와 관계없는 영양제를 한 개 더 얹어 드린다. 다음 날 빨갛고 큰 약을 달라고 아이처럼 떼를 쓴다. 약을 먹고도 20분만 지나면 간호사실로 약 달라고 쫓아온다. 반듯한 이마에 오뚝한 코, 양 볼에 볼우물이 지는 그 할머니는 그래서 별명이 "약방 할머니"이시다. |
올해 88세 할아버지는 잠잘 시간이면 어김없이 주사를 놔달라고 하신다. 그래야만 잠자리에 드시는 분이다. 병원에는 이런 환자에게 주는 특효약이 있다. 증류수 주사(placebo), 흔히 말하는 맹물주사다. 저녁 근무조는 아예 맹물주사 명단을 갖고 있다. 요양병원 생활 1년은 매일 울고 웃는 사건의 연속이었다. 깔깔거리며 할머니·할아버지와 함께 너스레를 떨기도 하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뜨거운 슬픔들이 가슴을 메게 하기도 한다. 100세 시대라고 한다. 우리 병원에 실제로 100살이 넘은 할머니가 계시다. 스물다섯에 과부가 되어 야채 장사며 연탄 장사 등 안 해본 장사가 없다고 하신다. 그렇게 키운 아들에 대한 자랑이 할머니의 일과이셨다. 칠순을 넘긴 며느리가 봉양하기 버거웠던지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그런데 요즘 그 어른이 우울증에 빠지셨다. 말이 없다. "아들이 보고 싶다. 손자 녀석들을 내가 키웠는데 보고 싶다." 멍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신다. 늘 자식이나 손자 걱정을 하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이지만 가족들은 한 해만 지나면 찾아오는 빈도가 줄어드는 게 이곳의 현실이다. 우리는 과연 "100세"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 것일까. 아침에 "치매 백신"이 2~3년 내에 나올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치료제 효능도 있다니 어쩌면 우리 요양병원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좋아지실 것 같기도 하다. 마치 기적같이 느껴지는 일이다. 그러나 실제 연구가 성공할지, 성공하더라도 약이 시판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때까지 우리 요양병원 할머니·할아버지들에겐 맹물주사뿐이어야 하나. 이곳에서 일하며 어느 시인처럼 "인생은 즐거운 소풍일까"라고 되묻곤 한다. 영원히 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그저 오늘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