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상가(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들이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다." 유홍준의 시 "상가에 모인 구두들"이다. 문상객들로 붐비는 빈소(殯所) 풍경이 눈에 선하다. 모양이 다른 문상객 구두들엔 다양한 인생살이의 고단함이 담겨 있다. 산 자의 구두들은 뒤엉키지만 죽은 자의 구두는 평온하다. 당나라 때 편찬된 "수서(隋書)"는 고대 한반도 장례풍습을 이렇게 기록했다. "북 치고 춤추며 노래 부르는 가운데 주검을 묘지로 운반했다." 임권택 영화 "축제"는 시골 상가에서 벌어지는 술판과 싸움판을 보여 준다. 슬픔을 삶의 활기, 용서와 화해로 달래려는 우리 장례풍습의 한 측면을 그렸다. 카뮈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은 어머니 빈소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가 "사회 부적응자"로 몰린다. 서양에서도 상주(喪主)의 도덕을 따진다. 프랑스에선 2003년 여름 폭염으로 85세 이상 독거노인 400여명이 한꺼번에 사망했다. 유족이 제때 나타나지 않아 빈소도 못 차렸다. 영안실이 모자라 시신 100여구는 냉동트럭에 보관했다. 일간지 르피가로는 "프랑스의 야만" 사설에서 "노인들이 품위 없는 생의 종말을 맞은 것은 비극"이라고 개탄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손자 이재찬 전 새한미디어 사장 장례식이 어제 치러졌다. 지난 18일 자살한 고인은 재벌가 3세로 태어났지만 빈소도 없이 쓸쓸하게 이승을 떴다. 그는 1999년 회사가 부실경영으로 매각된 뒤 월세 150만원짜리 33평 아파트에서 혼자 살았다. 생활비가 부족해 주변 가게에 외상빚을 졌고 삼성가 모임에는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장례식에는 부인과 두 아들, 친형제들이 참석했지만 삼성 가문의 삼촌과 사촌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삼성 관계자는 "유족이 빈소를 마련하지 않고 조문도 원치 않아 사촌들이 발인에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서양에선 갑부의 아이를 두고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한다. 반면, "수의(壽衣)에는 호주머니가 없다"는 격언도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기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다만 허망한 빈손이냐, 홀가분한 빈손이냐는 차이는 있을 것이다.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