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 산하 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란 연구기관이 OECD 30개국을 포함한 세계 40개국을 대상으로 그 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품격(品格) 있는 죽음을 맞느냐는 걸 갖고 "죽음의 질(The Quality of Death)"을 조사해 한국 순위를 하위권인 32위로 평가했다. EIU는 죽음에 대한 사회의 인식, 임종(臨終)과 관련한 법제도, 임종 환자의 통증과 증상을 관리하고 환자 가족이 심리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완화 의료(palliative care)"의 수준과 비용부담 등 27개 지표를 비교했다. 영국이 제일 좋은 평가를 받았고 호주 뉴질랜드 아일랜드 벨기에가 뒤를 이었다. 한국 사회에선 살아서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한다는 사람이 거의 없고, 어떤 이의 죽음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그의 회생 가능성을 포기하는 부도덕한 일처럼 인식됐다. 그렇다 보니 인공호흡기 같은 기계장치를 감아 맨 채 고통 속에서 죽음과 만나게 된다. 병원들도 호스피스 시설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죽음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교육받거나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의사·간호사가 임종 환자들 곁을 지켜왔다. 국립암센터가 2008년 성인 1006명을 대상으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84.6%가 "완화 의료"를 원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한해 암(癌) 사망자 6만7000명 가운데 완화 치료를 받는 이는 7.5%인 5000명에 불과하다. 무의미한 생명연장 시술은 환자 본인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엄청난 치료 비용을 남은 가족 어깨에 지우기 십상이다. 우리 사회도 "죽음의 질" 문제를 떳떳하게 공개적으로 논의해 볼 때가 됐다. 죽음의 단계가 의료보건 정책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인식부터 필요하다. "죽음의 질"에서 최고 평가를 받은 영국은 죽음을 앞둔 환자가 삶의 마지막 시기를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도록 돌봐주는 "종말 간병 간호사(Terminal Care Nurse)" 제도를 운영, 그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고 있다. 우리도 완화 진료 비용의 일부를 건강보험에서 지원하거나 은퇴한 간호사 등을 재교육시켜 임종 전문인력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봐야 한다. 의과대학에서도 완화 진료를 정규 과정으로 이수케 해야 하고 품격 있는 죽음을 가르치는 "웰 다잉(well-dying)" 전문가도 길러야 한다. 불치병에 걸렸을 때 어떤 식의 죽음을 맞고 싶다고 의사를 미리 밝혀두는 "생전 유언(living will)" 작성 운동도 필요하다. 아름다운 마무리가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더 의미 있게 만든다. 가족과 친지들의 사랑 가득한 보살핌 속에서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할 때다. [조선일보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