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는 조선시대 국가나 왕실에서 거행한 주요 행사를 글과 그림으로 남긴 보고서 형식의 책으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정수다. 제실도서는 조선의 의학과 관습, 군의 역사 등을 기록한 고문서. 경연은 임금을 위한 교양강좌용 서적이다. 확인된 문서 가운데 특히 귀중한 것은 경연에 사용된 책 『통전(通典)』이다. 『통전』은 고려 왕실에서 사용하던 책으로 조선 왕실에까지 이어져 임금 교양용으로 활용됐던 책으로 확인됐다. 책의 끝 부분에 찍힌 붉은 직인 ‘고려국십사엽신사세장서(高麗國十四葉辛巳歲藏書)’가 선명하다. 제실도서 38종도 확인했다. 제실도서에는 ‘제실도서지장(帝室圖書之章)’이란 주인(朱印·붉은 도장)이 찍혀 있다. 모두 규장각과 대한제국 제실도서관에 있던 책이다. 조선총독부를 통해 일본 왕실 도서관으로 건너갔음이 입증됐다. 이번에 확인된 문서 가운데 명성황후의 국장 모습을 묘사한 『국장도감의궤(國葬都監儀軌)』의 경우 표지와 그림 한 점이 공개된 적이 있다. 이번에 촬영한 의궤 내부 행렬 그림 두 점은 처음 공개되는 것이다. 이번에 확인된 고문서들은 대부분 우리 정부가 요구해 온 반환 대상에 해당된다. ‘조선왕실의궤 환수위원회’ 사무처장 혜문 스님은 “그동안 목록으로만 확인됐던 일본 궁내청 소장 사료들이 대거 공개되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며 “특히 국내에 없는 『통전』을 발굴하고, ‘고려국’이란 직인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획기적”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올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 궁내청 서릉부에 소장된 한국 자료의 반환을 요구해 왔다. 지난달 26일에는 이정현 의원이 대표 발의한 ‘조선왕실의궤 반환 촉구결의안’이 만장일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체결된 협정으로 문화재 인도 문제는 일단락됐다”며 반환에 부정적이다. 18년간 문화재 반환운동에 관여해 온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은 “민족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불법 유출된 문화재의 반환을 이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일본 궁내청 서릉부는 왕실의 족보와 도서·공문서 등의 관리 및 편수를 담당하고 있다. 1884년과 86년에 각각 설치된 도서료(圖書寮)와 제릉료(諸陵寮)의 직무를 이어받은 현재의 서릉부는 1949년 출범했다. 이곳에 소장된 한국 자료는 639종 4678책으로 전해진다. 약탈의 근거가 명확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120종 661책이다. 이 가운데 ‘조선총독부 기증’이란 도장이 찍힌 게 79종 269책으로 그 대다수는 조선왕실의궤다. 원래는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사고 등에 보관돼 전해졌으나 1922년 조선총독부가 일 궁내청으로 불법 반출했다. ‘제실도서’ ‘경연’의 유출 경로는 불확실하다. 이 책들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규장각과 대한제국 제실도서관에서 고스란히 조선총독부로 넘어갔고 그중 일부가 일 궁내청에 기증 형식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제실도서의 경우 개인 소장인이 찍혀 있었다. 총독부 관리들에 의해 여러 경로를 경유해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는 없는 유일본도 상당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 원장은 “조선왕실 사료 반환은 반드시 이뤄내야 하지만 일 궁내청 서릉부란 협상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접근하기보다 상호 존중의 정신 속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역사적 가치가 더 높은 조선 관련 사료와 문화재가 일 궁내청 서릉부의 다른 곳에 숨겨져 있을 것이라는 일각의 추정도 있으나 현재로선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일본 왕실 내부에 접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
◆제실도서=조선의 의학과 관습, 군의 역사 등을 소개한 유형문화재다. 규장각과 대한제국 제실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조선총독부 관리들에 의해 상당수가 일본 왕실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에는 남아 있지 않는 유일본들의 상당수가 일 궁내청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