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비록 철늦은 눈과 꽃샘추위가 머뭇거려도, 삼일절과 경칩이 지나 봄기운이 이미 온 천지 산하에 펼쳐지고 만물이 소생하려 하고 있는 이즈음, 스님께서는 어인 일로 이 ‘시간과 공간’을 떠나려하십니까? 하긴 많이 피로하셨을 줄 짐작합니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며, 죽음이 곧 새 삶의 시작’이라고 하셨지만, 떠나심을 어찌 막을 수 없는 남은 이들은 안타깝기 한이 없습니다. 아쉽고 섭섭한 마음을 이웃과 몇 마디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강원을 졸업하고 운수납자로 선원에 다닐 때에, 스님께서 조계산 송광사 불일암으로 내려오셨고, 저는 수선사에 안거하며 방선 때에 더러 찾아뵈면 스님은 차와 탁마를 통해 건전한 수행과 회향의 길을 제시하시며 세상 걱정도 하셨고, 지인들이 보내 드렸던 비누나 내복 같은 소품을 건네주시기도 하시며 ‘무소유’ 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
산중에 조촐하게 은거하시면서도 ‘맑고 향기롭게’살며,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운동을 이끄시던 스님을 가까이에서 동참하지는 못했지만, 저는 강단에 서서 승가와 수행자의 살림살이를 말할 경우에는 스님의 솔선수범을 좋은 사례로 삼아 왔습니다. 특히 제가 종교적 세계평화운동의 한국 거점기구로 종교적 유엔을 지향하는 종교연합의 지부를 창립하던 시절, 개신교의 강원룡 목사님,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님 등과 함께 성원과 격려를 해주셨음이 되새겨집니다. 몸은 비록 사라질지라도 스님 같이 맑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선각자의 역할을 하셨던 향기로운 인품은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길이 남아 있을 줄 압니다. 스님! 부디 정토에 잠시 머무시다가 곧 다시 오셔서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다시 빛과 힘이 되어 주시기 빌며, 삼가 심향을 사르나이다. [사진-폴리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