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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억류한국인12명 유골 최초확인

 
▶부끄럽습니다 시베리아에 묻힌 역사
▶日정부, 우리측에 유골 위치 통보했지만 한국 정부는 "유족이 발굴하라"
▶일제 때 만주로 끌려갔다가 해방 후 소련군에 잡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시베리아 동토에서 숨진 12명의 유골이 시베리아 남동쪽 바이칼 호수 인근에 매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시베리아 억류자"의 매장 위치가 밝혀진 것은 해방 이후 65년 만에 처음이다. 시베리아 억류자는 일제 강점기 때 관동군으로 징집돼 만주로 끌려간 조선인 가운데 해방 후 소련군에 포로로 붙잡혀 억울하게 강제 노역을 했던 피해자들이다.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규명위원회는 27일 "소련군에 잡혀 강제 노역하다 사망한 조선인 중 12명의 유골이 러시아 바이칼 호수 근처 집단 수용소에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진상규명위는 "부분적이지만 시베리아 억류자의 구체적 실체가 처음 드러났다"고 말했다.

시베리아 억류자 매장 위치는 진상규명위가 일본 정부와 유골 봉환(奉還) 협의를 해오던 중 2008년 11월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건네받은 자료에 의해 밝혀졌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부터 러시아 정부에 관동군 포로 명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고, 일부 유해를 발굴해 본국으로 송환해 오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 12위의 한국인 유해도 일본과 러시아 정부 간 유해봉환 협의 과정에서 드러났다.

진상규명위에 따르면 유골 12위(位)는 바이칼호수 아래 탈츠이 지역의 1지부와 14지부에 7위, 호린스크 지역 7지부에 2위, 울란우데 지역 제944 특별군병원 묘지에 3위가 각각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호린스크 지역 7지부에 있는 2위의 무덤은 국내 풍습처럼 봉분(封墳)이 만들어져 있다고 진상규명위는 설명했다.

진상규명위 관계자는 "소련군은 일본군과 달리 화장 풍습이 없어 동토(凍土)에 시신을 그대로 매장했다"며 "온전한 유골의 DNA 정보를 통해 유족을 찾는 작업도 훨씬 수월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진상규명위가 찾아낸 일본지역 강제 징용자의 경우 유골만 2600위가 넘지만 사망자 신원을 파악해 국내 유족을 확인한 사례는 25위에 불과하다.

오일환 진상규명위 유해팀장은 "정확한 매장 위치가 드러났기 때문에 러시아 정부 협조를 받아 유해를 봉환해 오기만 하면 되지만 그동안 일본에 있는 징용자 유골 사업에 치중해왔고 예산이 부족해 구체적인 진전을 못 봤다"고 말했다.

일제 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 특별법에 따르면 진상규명위의 법정 활동 기한은 오는 3월 24일 끝난다. 진상규명위는 2005년 3월 이후 법적 활동기간인 4년이 지났고, 2차례에 걸쳐 6개월씩 연장해 올 3월이면 활동이 종료돼 추가 연장도 어려운 상태다. 진상규명위는 일본을 비롯해 시베리아와 사할린 등 해외 강제징용자 유골을 조사하기 위해 올해 예산으로 7억여원을 국회에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진상규명위는 1945년 일본이 패전하면서 소련군에 잡힌 일본 관동군 60만명 가운데 7700~1만명이 강제 징집된 조선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스탈린은 전쟁으로 초토화된 소련을 재건하기 위해 이 포로들을 시베리아 각지로 이송시켰다. 이른바 "시베리아 억류 사건"이다. 식민지 백성으로 억울하게 끌려간 조선인 포로들은 일본군 신분으로 시베리아 각지의 집단 수용소에 나뉘어 강제노동을 했다.

이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며 벌목작업과 철도공사, 하역작업 같은 힘든 일을 했다. 시베리아 포로 생존자들의 모임인 "시베리아 삭풍회" 회원들은 "작은 흑빵 한 조각과 수프 떠먹으며 얼어붙은 암석을 팠다. 잠시라도 손을 멈추면 돌멩이가 날아왔다", "급속도로 번식한 이는 영양실조로 야윈 우리 몸의 피를 멋대로 빨아먹었다. 긁을 때마다 이가 잡혀 나왔다"며 당시의 노역 생활을 "지옥"으로 기억했다.

살아남은 포로들은 1948년 12월 나홋카항을 출발해 함경남도 흥남항으로 돌아왔지만 모두 2300여명에 불과했다. 이 중 500여명이 남한으로 내려왔지만 38선을 넘다 총에 맞아 죽거나 간첩으로 오인돼 고향에 온 뒤에도 전기고문을 받고 수사 당국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이들은 1990년 한국과 소련이 수교를 맺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처지를 하소연하지도 못했다.

삭풍회 회장 이병주(85) 옹은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은 일본 억류자 협회에서는 수차례 러시아 현지 조사를 다녀갔다"며 "반면 우리 정부는 "자비(自費)로 발굴해라. 유해 운송비 정도는 지원해주겠다"는 답변뿐이다"고 했다.

현재 생존하는 삭풍회 회원은 20명이 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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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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