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은 경인년(庚寅年), 호랑이띠 해다. 십이지의 세 번째 자리에 해당되는 호랑이(寅)는 방향으로는 동북동, 시간적으로는 오전 3시에서 오전 5시, 달로는 음력 1월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마스코트가 ‘호돌이’였던 데서 알 수 있듯 호랑이는 우리 민족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 가운데 하나다. 육당 최남선은 “중국의 용, 인도의 코끼리, 이집트의 사자, 로마의 이리처럼 조선에서 신성한 동물로 첫째 가는 것이 호랑이였다”며 조선을 ‘호담국(虎談國)’이라 부를 정도로 한국 설화 중 호랑이가 등장하는 이야기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로 시작되는 옛날이야기가 바로 그것. 대부분 산으로 이뤄진 한반도는 일찍부터 호랑이가 많이 서식한다고 해 ‘호랑이의 나라’로 불렸다. 잘 발달되고 균형 잡힌 신체 구조, 느리게 움직이다가도 목표물을 향할 때의 빠른 몸놀림, 빼어난 지혜와 늠름한 기품의 호랑이는 산군자(山君子)·산령(山靈)·산신령(山神靈)·산중영웅(山中英雄)으로 불리는 백수의 왕이었다. 물론 호랑이는 상황에 따라 재앙을 몰고 오는 포악한 맹수가 되기도 하고 사악한 잡귀들을 물리칠 수 있는 영물로 인식되기도 했다. 또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예의 바른 동물로 대접받기도 하고 골탕을 먹일 수 있는 어리석은 동물로 전락되기도 했다. 고고 유적을 조사해 보면 구석기 시대 한반도에 호랑이가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최소 12만년 전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유적을 비롯, 충북 제천의 점말 용굴, 단양의 도담 금굴 등의 유적에서 호랑이의 아래턱이나 이빨, 발가락뼈 등이 발견됐다. 우리나라 신석기 시대 표준 유적인 부산 동삼동패총에서도 호랑이의 발가락뼈와 앞다리뼈 등이 발굴됐는데, 이들 뼈는 호랑이 사냥이 용이하지 않았던 당시 장신구나 부적 등 신앙의 대상으로 수집해 왔을 가능성이 높다. 학계에서는 부산 동삼동패총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 호랑이가 현대 한국 호랑이의 직계 조상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이어지는 시대의 작품인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에는 줄무늬 호랑이와 점박이 표범 등이 14마리나 그려져 있어 당시 한반도 남쪽에 호랑이와 표범이 흔했음을 보여준다. 초기 철기 시대 유적인 경북 영천 어은동에서 출토된 호랑이 모양의 대구(帶鉤·버클)를 비롯, 고구려 벽화 고분에 그려진 사신도(四神圖) 중 백호(白虎), 신라의 호랑이 토우, 백제 때 제작된 호랑이가 입을 딱 벌리고 있는 모양의 남성용 소변 용기인 호자(虎子) 등도 삼국 시대 대표적인 호랑이 관련 유물이다. 단군신화를 필두로 신라 진덕왕(여왕) 시절 경주 남산에서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은 알천공이나 범의 젖을 먹고 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의 이야기 등 호랑이는 우리 역사 기록 곳곳에 등장한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꿈은 장차 태어날 아기나 꿈을 꾼 사람의 신분과 명예, 권세, 승리 등을 상징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호랑이 꿈을 좋아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호랑이에 대한 신앙은 양면성을 지닌다. 인간을 보호해 주는 수호신의 상징이자 인간을 가해하는 두려운 존재였던 것이다. 특히 호환을 당한 사람의 영혼은 ‘창귀’라는 귀신이 되어 죽어서도 호랑이의 부림을 받는 딱한 처지가 된다고 생각했다. 매년 정초가 되면 궁궐을 비롯한 일반 민가에서 호랑이의 그림을 그려 대문에 붙이고 나쁜 귀신의 침입을 막는 풍속이 있었다. 조선 시대 민화 속에 그려진 호랑이는 매와 까치, 소나무, 대나무, 신적 인물 등과 결합하면서 삼재부적, 길상적 의미의 희보(喜報), 장수, 축귀, 산신·산신의 사자 등의 의미로 사용됐다. 경인년 호랑이 해를 맞아 우리 역사와 문화 속에서 호랑이가 차지하는 의미 등에 대해 살펴보는 국제학술대회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또 오는 23일부터 2010년 3월1일까지 기획전시실Ⅱ에서 호랑이 관련 각종 생활사 자료 120여점을 전시하는 ‘경인년 호랑이띠 해 특별전’을 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