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금감원·창투사 CEO 출신▶‘신의 직장’ 나와 52세에 영업 시작▶주당 3건 이상 185주 연속 계약 신기록 ING생명 보험설계사(FC·Financial Consultant) 한광수(56)씨의 명함은 동료들의 그것과 좀 다르게 생겼다. 이름 위엔 붉은 글씨로 ‘2008, 2009년 ING 활동량부문 챔피언’이란 문구가, 오른쪽 상단엔 역시 붉은 글씨로 ‘T.O.T Member’란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챔피언제도는 ING 본사가 매년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설계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시상 프로그램. 대상 격인 종합 챔피언(1명)을 비롯, 계약건수 부문(1명), 활동량 부문(1명), 수익보험료 부문(1명) 등 연 4명에게만 챔피언의 타이틀이 주어진다. ‘T.O.T(Top of Table)’는 연간 4억5000만원 이상의 신규 계약 수당을 달성한 설계사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다. 지난해 국내에서 T.O.T 멤버 자격을 얻은 설계사는 25명뿐이었다. ING 보험설계사들이 쓰는 용어 중 ‘3W’란 말이 있다. 일주일에 세 건 이상씩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걸 의미한다. 지난 2006년 5월 입사, 11월 셋째 주로 186주째를 맞은 한씨의 기록은 ‘185주 연속 3W 달성’. 입사 첫날부터 3년6개월이 흐른 지금까지 단 한 주도 빠짐없이 최소 세 건의 신규 계약을 체결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의 말마따나 ‘비공식적 세계 신기록’이다. 경이적 성과 덕분에 이미 그는 ING 내에선 물론 보험업계에서도 알아주는 ‘스타 설계사’다. 비교적 짧은 시간에, ‘을 중의 을’이란 보험영업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다. 한씨의 이력은 꽤나 화려하다. 대학(전북대 경제학과) 졸업 후 한국은행 공채에 합격해 16년을 근무했고 IMF 외환위기 당시 금융감독원이 신설될 때 창설 멤버로 자리를 옮겨 다시 4년을 근무했다. 이후엔 3년간 모 창업투자사 CEO를 지내기도 했다. ‘신의 직장’을 섭렵한 엘리트 금융인 출신에 CEO까지 지낸 그가 보험업에 뛰어든 건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창투사 CEO 시절, 좋았지요. 기사 딸린 승용차도 나오고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어도 환영과 부러움을 샀으니까요. 그러나 늘 1%가 부족했습니다. 규모가 작더라도 내 사업을 갖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어요.” 그 즈음 때마침 보험설계사 일을 하는 후배를 만나 업계 쪽 얘길 들을 기회가 생겼다. 뭣보다 직업적 자유가 보장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당시 그의 나이가 쉰둘이었다. 처음부터 그가 보험맨으로 승승장구한 건 아니었다. 입사 초기 ‘전 직장을 찾아가 지인을 상대로 영업하라’는 회사 측 권유로 금감원을 찾았던 기억은 지금도 아프게 남아 있다. “절 무척 따르는 후배였거든요. 오후 일정이 전혀 없다기에 찾아갔는데 제 명함을 보더니 표정이 바뀌더라고요. 10분쯤 얘기했을까, 갑자기 미팅에 들어가야 한다며 일어서더군요. 사실은 그날 간 김에 옛 동료들도 만나볼 생각이었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돌아서서 여의도역까지 걸어오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요.” 그는 “너무 힘들고 막막해 한밤에 무작정 차를 고향으로 몰아 어둠을 뚫고 아버지 묘소가 있는 선산에 올라가 울면서 하소연한 적도 있다”고 했다. 요즘 그는 유명세를 타며 여기저기 강연 의뢰를 많이 받는다. 청중은 주로 후배 설계사들. 그가 강의 때마다 강조하는 메시지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거절에 대응하는 노하우를 익히라는 것이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 ‘거절 당하는 순간 영업은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객 입장에서 보면 거절은 엄연한 자기 권리예요. 거절 당하는 상황에 부딪히는 건 당연합니다. 그러니 거절을 두려워해선 안 돼요. 거절을 즐길 줄 아는 경지까지 올라야지요.” 둘째는 자신이 이 일을 하는 목적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뭐 때문에 여기 왔느냐(What for?)는 질문을 늘 스스로에게 던지라고 합니다. 돈 좀 벌어보겠다고 왔으면 딴 생각 말고 그 목적에만 집중해야지요.” 한씨는 스스로를 ‘희망전도사’ ‘행복전도사’라고 부른다. 한창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나 인생을 포기하는 장·노년층, 꿈을 잃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젊은이, 초심을 잃고 방황하는 동료나 후배 설계사들에게 희망의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특히 그는 생애 첫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층에게 보험영업에 도전해볼 것을 주문했다. “세상은 저희더러 을이라고 하지만 저희는 을이 아닙니다. 고령화 저출산 사회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보험상품이고, 전문성을 바탕으로 보험 포트폴리오를 제시해주는 게 저희 일이니까요. 희소성의 원칙이란 게 있지요. 아직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적을 때 과감하게 뛰어들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
■양병숙. .▶중견 IT업체 20년 경력 홍보팀장 출신▶2년 준비 끝 과감하게 사표 던져▶진심과 오뚝이 근성 무기로 고객을 내 편으로 양병숙(45)씨는 한광수씨와 입사동기다. 그는 2006년 3월까지 150명 규모의 중견 IT업체에서 홍보·마케팅팀장으로 근무했다. 경력 20년차의 베테랑 홍보우먼이었다. 그러나 그가 몸담고 있던 회사엔 ‘45세 이상인 여직원은 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남자 직원과 똑같은 강도의 업무를 소화하면서도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갑갑했던 그는 조심스레 이직을 고민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가입했던 사망보험금 덕분에 남동생 학비를 조달할 수 있었던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보험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직접 보험업계에 뛰어들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자신을 담당하던 보험설계사의 권유로 당시 ING생명의 모 여성 지점장과 식사를 함께하게 됐다. “일주일에 한 번씩 구두굽을 갈아가며 일한 덕분에 지금 자리에 올랐다는 지점장 얘기에 마음이 움직이더군요. 같은 여자가 봐도 무척 멋졌거든요. 경제적 윤택함과 사회적 지위 같은 게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나라고 왜 못해?’란 욕심도 생겼고요.” 그러고도 2년 가까이 고민을 계속한 후 그는 과감하게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1개월간의 교육 끝에 보험설계사 일을 시작했다. 초창기 그 역시 적잖은 수모를 당했다. 홍보 일을 오래 한 덕분에 낯선 사람 만나는 것까진 자신 있었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전혀 모르는 제3자를 소개 받은 경우는 그래도 나았어요. 너무 잘 지내다가도 보험 건으로 연락하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만남을 거부하는 지인이나 친척도 꽤 많았죠.”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를 풀기 위해 그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내가 열심히 하다 보면 언젠간 당신이 날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1년 안팎의 시간이 지나면 꼭 그들 중 한두 명에게서 연락이 왔다. 진심과 꾸준함으로 적이 될 뻔한 고객을 내 편으로 만든 것이다. 그는 현재 MDRT(백만불원탁회의) 회원이다. 연간 신규 계약 수당과 각종 인센티브 등을 합치면 연봉은 억대를 가뿐히 넘긴다. 마지막 직장에서 받던 연봉과 비교하면 서너 배 이상 많은 액수다. 그뿐 아니다. 회사가 우수 설계사들을 대상으로 시즌마다 제공하는 해외투어 등 각종 인센티브를 입사 이후 한번도 놓친 적이 없다. 그가 스스로 꼽은 영업 비결은 세 가지다. “정석을 중시하는 편이에요. 영업활동 할 때도 회사에서 나온 매뉴얼 내용을 지키려고 늘 노력하죠. 오뚝이 근성도 있어요. 슬럼프는 남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슬럼프라고 생각될 때면 의식적으로 더 열심히 활동합니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래서 상대를 편안하게 해주는 외모 덕도 톡톡히 보고 있어요. 부모님께 감사해야죠.”(웃음) [주간조선 208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