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경북 안동에서 조선시대 무덤이 발견됐다. 관 속에 누워있는 것은 400년 간 썩지 않은 6척 장신의 남자 미라. 그러나 세월을 견뎌낸 것은 남자의 몸 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눈은 미라의 가슴 위에 놓은 편지 한 통에 머물렀다. ‘원이 엄마의 편지’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조선 양반가 여인의 사부곡은 이렇게 해서 세상에 공개됐다. 무덤 속의 남자는 이응태(1555~1586)였고, 편지는 그의 부인이 31세의 나이로 요절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한글로 적은 것이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라며 시작하는 이 편지는 그 약조를 지키지 못한 이른 헤어짐을 슬퍼했다. 남자는 아주 짧은 생을 살았고, 부부는 그보다 더 짧은 시간만을 사랑했다. 그러나 남자의 몸과 여자의 편지는 오래도록 살아남았다. 소설은 그 연유를 풀기 위해 역사적 사실과 환상의 사이를 오간다. 하늘의 정원에 소화라는 꽃이 피어있다. 어느 날 천계의 여인이 그 꽃을 훔쳐 인간세계로 달아난다. 눈이 여덟이나 되는 팔목수라가 그녀를 찾아 나섰다. 그녀는 홍여늬란 이름으로 태어나지만 팔목수라가 내린 저주만은 피하지 못한다.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는 죽는다. 안동의 양반 이요신은 둘째 아들 응태의 사주를 받아보고 경악한다. ‘부모의 가슴에 묻힐 사주입니다. 이 사주를 가진 자는 영민하고 선하며 밝습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한없는 기쁨을 주지만 이는 오히려 슬픔을 키우기 위한 분탕질일 뿐입니다.’(41쪽) “처음 당신이 우리집 담 너머에 핀 소화를 보고 저를 알아보셨듯,이제 제 무덤에 핀 능소화를 보고 저인 줄 알아주세요.” 참척을 피하기 위해 요신은 아들의 운명을 바꾸려 한다. 여늬의 아버지도 딸을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사랑할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소화가 아름답게 핀 여름 어느날, 응태는 사냥을 나갔다가 여늬를 만난다. 소설은 그러나 여필종부 시대의 사부곡이 아니다. 운명을 알아버린 두 사람이 이제 사랑을 택할 것인가, 목숨을 택할 것인가를 두고 갈등한다. 아버지를 죽이는 운명을 벗지 못한 오이디푸스처럼 그들도 사랑의 운명을 벗지 못한다. 남편을 잃은 아내, 아내와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나는 청년, 아들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슬픔이 교차하며 인간의 희로애락이 격정적으로 쏟아지는 대목은 독자의 마음을 빼앗는다. 죽은 남편에게 보내는 아내의 편지들도 가슴을 파고 든다. 팔목수라와 여늬가 망각에 대해 벌이는 논쟁은 실존에 대한 고뇌를 담고 있다. 팔목수라는 응태의 목숨을 빼앗으며 선언한다. ‘인간이 잊지 못할 아픔은 없다. 인간은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을 잊고 잃는다. 그러니 미련도 슬픔도 가지지 말아라’(140쪽) 여늬는 “사람이 잊거나 이기지 못할 슬픔이 있다”고 맞선다. 그녀는 남편에게 편지를 쓴다. ‘담 안팎에 어제 심은 소화를 능소화라 하였습니다. 하늘을 능히 이기는 꽃이라 제가 이름지었습니다.… 처음 당신이 우리집 담 너머에 핀 소화를 보고 저를 알아보셨듯, 이제 제 무덤에 핀 능소화를 보고 저인 줄 알아주세요. 우리는 만났고 헤어지지 않았습니다.’(203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