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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천년고찰 주지 된 한국 女 무용수

 
- 지난 4월4일 일본 시코쿠의 대일사에서 주지 취임식을 가진 한국무용가 김묘선 씨. 그는 김묘선이란 이름을 그대로 법명으로 받았다. 2 1200년 역사를 가진 대일사를 찾은 ‘오헨로상’. 이들은 일시적인 출가자이기에 삿갓이나 모자를 쓰고 흰색 장삼 차림으로 두세 달간 걸어서 88개 사찰을 참배한다
한국 여인이, 그것도 한국무용을 하는 여성이 머리도 깎지 않고, 일본 문화계가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등록하려 애쓰는 천년 사찰의 주지가 됐다. “무슨 황당한 소리냐?”고 되묻겠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김묘선(金昴先·51) 씨. 한국 국적을 가진 틀림없는 한국인이다. 물론 삼단 같은 머리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김씨는 인간문화재 이매방 선생에게서 중요무형문화재 27호인 승무와 97호인 살풀이춤을 이수해 2005년 준(準)문화재가 됐다. 정식 명칭이 ‘전수교육조교’인 준문화재는 인간문화재 후보라는 의미가 있다. 김씨는 인천에 있는 발림무용단을 이끌며, 미국 UCLA의 교환교수로 매달 방미해 한국 춤을 가르쳤다. 그런 김씨가 일본 고찰의 주지가 된 사연은 무엇일까.

그 비밀은 승려도 결혼할 수 있는 일본 불교에 있다. 일본은 4개의 큰 섬으로 이뤄졌는데, 그 가운데 가장 작은 것이 시코쿠(四國)다. 1995년 김씨는 시코쿠를 방문해 황진이처럼 나긋나긋한 춤을 췄다. 이때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지족선사’가 환갑 나이의 대일사(大日寺) 주지인 오구리 고에이(大栗弘榮) 스님이었다. 공연이 끝나자 스님은 다짜고짜 청혼을 했다.

사람의 연(緣)이란 정말 아무도 알 수 없다. 말도 통하지 않고, 교감도 잘되지 않고, 종교도 다른 두 사람이 이듬해 부부가 된 것이다. 한국 춤의 인간문화재가 되려는 사람은 한국 국적자여야 한다. 오구리 스님이 “당신의 문화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으므로 김씨는 한국 국적을 유지한 채 혼인했다(‘주간동아’는 두 사람의 결혼 러브 스토리를 2005년 5월24일자에 보도했다).

일본은 불교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최징(最澄) 대사가 만든 천태종(天台宗)과 홍법(弘法) 대사가 만든 진언종(眞言宗) 등이 유명한데, 홍법대사는 시코쿠 출신이다. 그는 시코쿠의 사찰 가운데 88개를 진언종의 성지로 지정했는데 이때 대일사는 13번째 성지가 됐다. 그 후 시코쿠는 물론 일본 전역의 신자들이 88개 성지를 순례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 1996년 결혼식을 올린 김묘선 씨와 오구리 스님.
▶김씨 무용에 매료돼 ‘즉석 청혼’
‘오헨로상(お遍路さん)’으로 불리는 순례자들은 일시적으로 출가한 것이기에 장삼과 삿갓 차림으로 ‘오헨로노 미치(お遍路の道)’라고 하는 순례자의 길을 따라 두세 달 동안 걸어서 88개 사찰을 참배한다. 순례자는 연 30만~ 50만명에 이른다. 일본 문화계는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가 매우 큰 이 순례 전통과 88개 고찰을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으로 지정받고자 백방으로 뛰고 있다.

조선 후기의 우리나라가 그러했듯, 도쿠가와(德川) 막부 말기의 일본도 서양 종교의 거센 침투를 받았다. 막부는 이를 막기 위해 각 지역의 중심 사찰이 우리의 읍·면·동사무소와 비슷한 일을 하게 했다. 지역 주민들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신고하게 해, 사찰은 지역 주민의 족보와 호적을 관리하게 됐다. 이에 따라 불교가 사실상 국교가 됐고, 스님이 있어야 제사와 장례를 치르는 문화가 형성됐다.

이렇게 해서 사찰의 통제를 받게 된 가구를 가리키는 일본어가 ‘단가(檀家)’다. 단가는 사찰에 족보와 호적을 비롯한 모든 것을 맡기고, 그곳에 시주하는 신도의 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단가를 많이 가진 사찰이 재정적으로 여유 있다. 대일사는 1200년의 역사를 가진 고찰이기에 찾아오는 순례객이 너무 많아 단가 관리는 88개 사찰에 속하지 않은 국중사(國中寺)가 하게 했다. 국중사는 300여 곳의 단가를 관리하고 있는데 오구리 스님은 대일사와 국중사의 주지였다.

이런 남편의 후원에 힘입어 김씨는 시코쿠에서 문화행사가 열릴 때마다 한국의 전통무용단을 불러 공연을 하게 했다. 시코쿠에서 유명한 한국무용 전도사가 된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한국무용을 전파했고, 사랑의 산물인 옥동자도 보았다. 그러나 행복은 10여 년 만에 막을 내렸다. 2007년 4월 오구리 스님이 뇌경색으로 쓰러져 한 달간 투병하다 타계한 것.

▶남편 장례식 후 주지스님 ‘고시’ 준비
김씨는 “그때는 정말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이는 열 살밖에 안 됐는데, 이 사찰을 어떻게 끌고 나갈지 눈앞이 캄캄했다”고. 그러다 아들이 “저는 아버지처럼 큰스님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자라서 스님이 될 때까지 어머니가 이곳을 지켜주세요” 하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뇌경색으로 쓰러지던 바로 그날 남편이 “당신도 스님 자격을 따놓으라”한 말을 떠올렸다.

일본 불교는 시험을 통해서도 승려 자격을 준다. 장례식을 마친 그녀는 남편이 득도한 교토(京都)의 대각사(大覺寺)를 찾아가 승려 자격시험 공부를 시작해, 그해 연말 시험을 통과했다. 그리고 바로 이보다 훨씬 어렵다고 하는 주지 시험에 도전했다. 하루 두세 시간만 자며 ‘반야심경’을 비롯한 수많은 경전을 외우고, 손으로 하는 수행언어인 작법(作法) 450여 개를 익히며 백일 수행을 반복한 끝에 지난해 5월 주지 시험도 통과했다. 보통은 2년씩 걸린다는데 외국인인 김씨는 반년 만에 통과한 것.

김씨는 마침내 지난해 12월 교토 대각사에서 대일사 주지로 임명받고 지난 4월4일 대일사와 국중사 주지로 정식 취임했다. 일본에서도 스님이 되려면 머리를 깎아야 한다. 김씨는 ‘공연은 가발을 쓰고 한다’는 각오로 스님 공부를 시작했는데, 대각사 스님들은 갑론을박을 한 끝에 ‘김씨에 대해서만은 삭발을 하지 않게 하자. 법명도 본인의 이름을 그대로 쓰게 하자’며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다. 그는 외국인으로, 여성으로, 삭발을 하지 않고 일본 최초로 고찰의 주지가 된 것이다.

파란의 사연 끝에 일본 천년 사찰의 주지가 된 김묘선 스님. 한국의 인간문화재 후보인 그가 일본 스님과 결혼해 고찰의 주지가 된 것은 일본에서도 화제다. 일본 NHK 방송은 오래 전부터 그와 남편인 오구리 스님 그리고 아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찍어왔다. 그는 ‘욘사마’에 이은 또 한 명의 한류(韓流) 전도사가 될 것인가. ...[주간동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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