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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감사합니다,잊지않겠습니다...

김수환추기경,입관,미사,발인,묘역안장 상보(詳報)

▶金추기경 입관하자 "눈물바다"…서울 명동성당 현장
▶19일 오후 5시 15분 명동성동 건물 옆 대형스크린 앞.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관이 덮이자 수많은 조문객들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더 이상 그분의 모습을 볼 수 없어 목이 멥니다." 수천명의 눈에 눈물이 맺혔으며, 엉엉 목놓아 우는 이도 적지 않았다.

입관식은 이날 오후 4시부터 5시 30분까지 주교·사제단과 가족들만이 참가한 채 진행됐다. 4시 55분 이후에는 공동취재단에만 입관 예절 참관을 허용했다. 모든 조문객들은 대형 스크린으로 생중계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비공개로 진행된 일정에선 오후 4시 20분 유리관을 벗긴 뒤 25분에 염습(시신을 깨끗하게 염)을 하고 50분에 관에 안치했다. 김 추기경의 장례식이 서울대교구장에서 교황장으로 격상되면서 교황을 대신해 정진석 추기경이 모든 절차를 밟아나갔다. 오후 5시 입관 예절이 시작됐으며 주교단을 시작으로 사제단, 가족들이 성수(聖水)를 뿌리고 분향(焚香)이 끝나자 관이 덮였다.

입관 후에는 성경 로마서 말씀이 이어졌다. "그분과 함께 살리라. 죽음은 그분 위에 군림하지 못하느니라." 천주교 신자를 비롯한 많은 조문객들은 더 이상 김 추기경을 볼 수 없었지만 김 추기경을 "새로운 희망의 표증"으로 가슴 깊이 아로새겼다. 김 추기경이 살아생전 가장 즐겨 불렀던 성가 "야훼는 나의 목자"가 울려퍼지자 명동성당 일대는 잔잔한 슬픔에 잠겼다.

정진석 추기경은 입관 예절을 통해 "참된 사도직을 수행하고 떠난 김 추기경이 하늘나라에서도 성인의 반열에 들게 하소서"라고 축복했다.

1시간 30분에 걸친 입관 예절이 끝난 뒤에도 추모 행렬은 이어졌다. 입관 전까지 34만여명이 명동성당을 다녀갔으며, 이날 자정까지 조문객을 합하면 40만명에 이른다. 전국의 가톨릭 주요 본당에 설치된 분향소까지 감안하면 총 조문객 수는 1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계됐다.

한편 이날 명동성당 건물 뒤편에 있는 지하 고해성사 장소에도 수많은 인파들이 줄지어 기다렸으며, 뒤뜰 촛불 봉헌장에는 조문객 등이 켜놓은 촛불들이 활활 타올라 김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했다.

 
 
 
 
 
 

▶<김 추기경 장례미사>추모인파 오열 속 하늘나라로.....
▶은은한 빛으로 가장 그늘지고 낮은 곳을 어루만지던 ‘별’이 졌다. 하늘은 매서운 바람으로 슬픔을 토해냈고 이 땅에 남겨진 이들은 ‘마음 속의 등불’을 잃은 애통함에 눈물을 흘렸다. 고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치러진 명동성당에는 비통함이 내려앉았다. 곳곳에서 눈가를 훔치는가 하면, 낮은 목소리로 성가를 부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울대교구장인 정진석 추기경이 교황의 이름으로 집전한 장례 미사는 오전 10시 참석자들이 입당송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를 부르면서 엄숙하고 경건하게 시작해 성경의 지혜서와 요한의 서신, 마태오의 복음 등을 읽는 "말씀 전례"와 정 추기경의 강론으로 이어지며 1시간 40분가량 진행됐다.

정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김 추기경은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빛과 희망이 되었고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모든 한국인의 "사랑과 평화의 사도"였다"며 "(그가) 사랑과 나눔을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유산으로 남겨 주셨기에 한 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며 "죽음은 새로운 삶으로 옮아가는 것"이라는 신앙 때문에 (우리는) 오히려 희망을 갖고 산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말씀 전례와 성찬 예식이 끝나고 열린 "작별 예식"에서 정 추기경은 "추기경단 일원으로서 여러 해 동안 교황에게 충심으로 협력해오신 김수환 추기경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억한다"는 내용의 교황 추도사도 대독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 대표인 한승수 총리가 대독한 고별사에서 "이 나라를 지탱해온 큰 기둥이었고, 우리의 나아갈 길을 가르쳐준 큰 어른인 김 추기경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려 한다"고 고인을 애도했고, 오스발도 파딜랴 주한교황청 대사는 "김 추기경은 전 생애와 영면을 통해 당신이 참된 하느님의 사람이였음을 보여줬다"며 추도했다.

이와함께 한국 천주교회 주교단 대표인 강우일 주교, 사제단 대표인 전 가톨릭대학 총장 최승룡 신부, 신자대표인 한홍순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 등 모두 5명이 조사를 통해 고인을 기렸다.

 
- ◇ 20일 오전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거행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에서 고별식이 거행되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 20일 오전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거행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 20일 오전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거행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거행되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 20일 오전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거행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에서 고별사가 낭독되자 장례미사에 참석한 수녀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20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왼쪽),한승수 총리등 참석자들이 故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를 드리고 있다.

▶“감사합니다” 김 추기경 육성에 눈물바다
▶이날 새벽 5시부터 몰려든 1만여명의 추모 인파는 영하의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칼바람을 맞으며 김 추기경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명동성당 본관 대성전 안과 바깥 뜰에는 추모인파가 빼곡히 들어찼고, 명동성당 앞과 카톨릭 회관 주차장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앞에는 새벽부터 나온 성도들이 돗자리를 깔고 앉아 김 추기경을 위한 기도를 올렸다. 명동성당 건너편에 위치한 YWCA 건물을 비롯해 인근 빌딩 옥상과 창문에도 장례미사를 지켜보는 시민들로 메워졌다. 19일 자정까지 김 추기경을 조문한 인파는 모두 38만 7420명. 그만큼 김 추기경의 자리는 매우 컸다.

경건하고 엄숙한 표정의 추모객들은 저마다 김 추기경에 대한 기억은 달랐지만 그가 남긴 따뜻함을 그리워했다. 김 추기경이 선종 전에 남긴 “고맙습니다. 용서하고 사랑하세요”라는 울림을 곱씹으면서 “추기경님이 남기신 뜻에 따라 살도록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군 휴가를 받자마자 성당으로 달려왔다는 전모씨(24)는 “어제 뉴스로 선종 소식을 듣고 꼭 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너무 큰 별이 가셔서 가슴이 아프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이젠 편히 쉬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 ◇ 20일 오전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거행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에서 고 김수환 추기경의 영정과 관이 명동성당을 나오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 고 김수환 추기경의 영정과 관이 명동성당 대성전의 문을 나오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장례미사 말미에 추기경의 생전 육성을 담은 영상이 스크린에 투영되자 곳곳에서 흐느꼈다. “나는 정말 많은 시련과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에 비해 여러가지 의미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나를 이렇게까지 큰 은총으로 축복하여 주시는 하느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나의 모든 걸 바쳐서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는 담담한 김 추기경의 육성에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는 이들이 늘어났다.

오전 11시 40분, 장례미사를 마치고 김 추기경이 안치된 관이 성당을 빠져나오자 영면의 길을 떠나는 뒷모습이라도 보고자 하는 인파들이 통로 주위로 몰려 들었다. 십자가를 앞에 세우고 김 추기경의 영정을 따라 신부들이 관을 들고 대성전 주 출입구를 빠져나오자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흐느낌이 높아졌다. 김 추기경의 운구차에 손을 대고 고개를 숙이며 작별인사를 하는가 하면, 성호를 긋고 기도를 드리는 이들도 있었다. 몇몇은 탄식같은 오열로 안타까움을 토해냈다.

김 추기경의 운구자가 성당을 빠져나간 뒤에도 추모객들은 연도를 다함께 낭송하며 슬픔을 나눴다. 일부 추모객들은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듯 성당 주위를 서성였다. 특히 성당 입구에 걸린 28점의 추기경 샌전 사진 앞에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이를 담으려는 추모객으로 붐볐다. 일부 추모객들은 대형 스크린과 김 추기경의 관이 놓였던 자리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

 
- ◇ 고 김수환 추기경의 영정과 관이 명동성당 앞마당을 지나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 고 김수환 추기경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 고 김수환 추기경의 관이 실린 운구차가 장지로 출발하자 오열하던 추모객들이 운구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뇌성마비 2급 장애우인 권순욱씨(35, 서울 방화동)는 “가족들이 힘드니까 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존경하는 분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서 혼자서라도 나왔다”며 “매번 성탄미사때마다 와서 먼 발치서나마 뵈었는데 이젠 못 뵌다고 생각하니 슬프다. 부디 좋은 곳에 가셔서 우리를 잘 인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가를 따라부르는 그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했다.

김 추기경과의 작은 인연을 간직한 성도들에게는 더욱 애틋한 하루였다. “누구나 겪는 인생의 과정”이라고 애써 슬픔을 억눌렀지만 김 추기경과의 소소한 추억을 반추하는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고, 눈시울을 붉어졌다.

송경희씨(44, 서울 가양동, 여)는 중학교 1학년 때 당시 주교였던 김 추기경으로부터 견진성사를 받은 기억을 떠올리며 내내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녀는 인자했던 주교님이 마음 속의 버팀목이 돼줬노라며, 그러나 이젠 그 육성조차 들을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어제도 4시간을 기다렸는데 결국 뵙질 못했어요. 너무나 다시 한번 꼭 뵙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서 죄송하고 마음이 아파요. 우릴 위해서 좀더 계셨더라면...”이라고 말을 흐린 송씨는 “오늘 새벽 5시에 성당에 와서 미사를 드린 후 계속 (밖에서) 기도드렸다. 아직 식사도 안했는데도, 추위도 배고픔도 모르겠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하다”고 울먹거렸다.

추모객들의 안내 자원봉사를 맡은 박승규씨(54)는 8년전 WWME(World Wide Marriage Encounter) 아시아 회의에서 마주쳤던 김 추기경의 음성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김 추기경은 당시 폐막미사를 집전했다. 박씨는 “추기경님을 안내했었는데 따스하고 나즈막한 어조로 “수고하십니다”고 인사를 건네시던 게 생생히 기억난다”며 “할아버지처럼 외롭운 이들을 어루만지시던 분이셨다. 추기경님의 마지막 말씀처럼 반목과 갈등은 접고 서로 사랑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땅에 떨어진 김 추기경의 상본(예수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 성인들의 화상이나 성서 구절, 성인들이 한 말 등을 담은 작은 그림이나 카드)을 주워 먼지를 터는 그의 손길에서 각별함이 묻어났다.

 
- ▲ 20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거행된 가운데, 추기경의 관이 실린 영구차가 수많은 추모인파들의 연도를 들으며 명동성당을 빠져 나가고 있다./연합뉴스
 
- ▲ 20일 명동성당에서 거행된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를 마친 운구차량이 성당을 나서자 성당 밖에서 장례미사에 참석한 가톨릭 신자들과 시민들이 고인의 영구차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
천주교 서울대교구 장례위원회는 이날 성당에 모인 조문객이 약 1만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차분한 모습을 보이던 추모객들이 흐느끼기 시작한 것은 1시간40분가량 진행된 미사가 끝나고 김 추기경의 주검이 안치된 관이 성당에서 빠져나온 오전 11시40분께였다. 십자가를 앞에 세우고 김 추기경의 영정을 따라 신부들이 관을 들고 대성전 주 출입구를 빠져나오자 추모객들은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라며 울먹이다가 관이 검은색 운구차에 실리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조종(弔鐘)’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운구차가 움직이자 가까이 있던 추모객들은 김 추기경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느끼려는 듯 운구차에 손을 댔고 일제히 약속이나 한 듯 고개를 숙이고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를 했다. 일부 여성 신자들은 머리에 쓰는 하얀색 미사포를 벗어 흔들며 ‘성인(聖人)’같은 삶’을 살다간 김 추기경에게 이별을 고했다.

대성전 앞을 출발한 운구차가 성당 들머리를 지나는 동안에도 추모객들은 성호를 긋고 기도를 하며 김 추기경의 영생을 빌었으며, 일부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이 장면을 촬영하기도 했다. 운구차가 명동 초입을 지나 삼일로에 접어들자 인도에 늘어서 있던 사람들도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숙이며 “잘 가세요. 편안히 쉬세요”라고 외쳤다. 김 추기경의 장례행렬이 성당을 완전히 빠져나간 뒤에도 추모객들은 못내 아쉬운 듯 연도를 다함께 낭송했고, 일부는 성당에서 추기경의 관이 놓였던 자리에 무릎을 꿇고 눈을 감은 채 기도를 올렸다.

뇌성마비 2급인 권순욱(35)씨는 “가족들이 힘드니까 가지 말라고 했지만 존경하는 분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좋은 곳으로 가셔서 우리를 잘 인도해주셨으면 좋겠다”며 흐느꼈다. 김 추기경이 선종한 다음날인 17일부터 성당에 매일 들렀다는 김수정(52.여.경기도 구리)씨는 “장례미사를 봤지만 추기경님이 돌아가신 게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이곳에 계실 동안이라도 같은 곳에 있고 싶었고 생전에 얼굴은 못 뵈었지만 이것만이라도 축복이다. 감사한다”고 울먹였다. 경찰은 대통령 이.취임식 등 국가 행사에 쓰이는 오픈카 2대와 사이드카 13대를 배치해 김 추기경의 장례행렬을 인도했다.

 
- ▲ 20일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가 끝난 후 성당 밖에서 미사에 참석한 가톨릭 신자들과 시민들이 고인의 영구행렬 지나가자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 ▲ 20일 명동성당에서 김수환 추기경 장례미사가 끝난 후 성당 밖에서 미사에 참석한 가톨릭 신자들과 시민들이 고인의 영구행렬 지나가자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용인 성직자묘역 오전부터 추모 인파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영면하게 될 경기도 용인 천주교공원묘원의 성직자 묘역에는 20일 오전부터 추모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추모객들은 추운 날씨 탓에 대부분 차량 안에서 머물며 오후 1시부터 시작될 하관예절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묘역 입구의 주차장과 도로변에는 승용차 40여대가 주차된 가운데 서울대교구 경제인회 소속 회원 20여명 나와 추모객들에게 핫팩을 나눠주었고 가톨릭 단체 관계자들이 주차와 안내 등의 자원봉사를 맡고 있다.

묵주를 손에 든 70대 할머니는 "추기경님 가시는 마지막 길을 배웅하러 왔다"며 "어제 저녁 마산에서 고속버스로 분당의 친척 집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묘역을 찾았다"고 했다. 도시락을 싸들고 묘역을 찾은 단체 추모객들도 눈에 띄었다. 용인 보라성당에서 다른 신자들과 함께 온 임금례(71.여) 씨는 "추기경님이 돌아가셨을 때 큰 별이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고 안종순(69.여) 씨는 "늘 의지하는 마음으로 살았는데 가슴이 뚫린 것처럼 허전하다"고 김 추기경의 선종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김 추기경의 시신이 묻힐 묘역에는 대형 천막이 쳐진 가운데 관이 안장될 자리에 길이 2.5m, 폭 1m, 깊이 80㎝ 크기로 묘 자리가 만들어졌다. 장방형의 묘 자리 옆에는 하관 후 뿌릴 고운 흙이 인부들에 의해 준비되고 있었고 그 옆에는 흰색 천으로 자루를 감은 삽 10여자루가 세워져 있다. 묘역 전면에는 김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말씀이 적힌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플래카드의 양 옆에는 김 추기경을 상징하는 휘장과 그가 온화하게 미소짓는 사진이 프린트돼 있다.

묘역 주위에는 취재진들이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분주했고 이른 아침부터 묘역을 찾은 추모객들이 기도를 하거나 흐느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관리사무소는 "묘역을 찾는 모든 추모객들이 하관예절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할 방침"이라고 했다.

 
 
 


▶"하늘에서 영원히 안식하소서"/ 김 추기경 "하관 예절" 거행
▶관이 무덤 속으로 내려가자 흐느끼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나왔다. 서러움은 가슴을 채우고 목을 채우고, 입으로 넘쳐올랐다. 황사 때문이었을까? 하늘도 차츰 흐릿흐릿 변했다. 20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용인공원내 성직자 묘역. 묘역 들머리부터 추기경이 안치되는 주교 묘역까지 올라가는 길(500m)은 둔덕져 있었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스산한 슬픔이 묻어있었다.

김수환 추기경의 하관 예절이 이날 오후 1시30분께 정진석 추기경, 윤공희 대주교, 조규만 주교 등 성직자와 유족, 사제단, 일반 신자 등 모두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무덤 축복, 기도, 향 봉헌, 성수 뿌리기, 독서, 청원기도, 유가족을 위한 기도, 관덮기 순으로 진행됐다. 일반 신부와 다르지 않은 하관 의식이었다.

정 추기경의 무덤 축성으로 하관식이 시작되자 곧 고인의 영정사진과 삼나무 관(가로 65㎝ 세로 230㎝)이 무덤을 덮기 위해 흙으로 쌓아 올린 제단 위에 안치됐다. 성수뿌리기 등 하관 의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고인의 영정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정 추기경은 기도를 올리며 "천상에서 주님의 자비로 (김 추기경이) 성인의 반열에 오르게 하소서. 영원한 안식에 들게 하소서"라고 축원했다.

이어 내려지기 시작한 관. 유족들의 흐느낌 속에 죽은 사람의 관직, 성씨 등을 흰색 글씨로 기록한 붉은색 천인 명정(銘旌)이 널 위에 펼쳐졌다. 명정에는 "추기경 광산 김공 수환 스테파노 지구"라고 적혀 있었다. 관을 내린 후 정 추기경을 비롯해 유족들은 분향과 성수뿌리기를 진행했다. 유족들은 관 속에서 영면에 들어간 김 추기경을 향해 3-4차례 성수를 뿌리며 하늘로 떠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성수를 뿌린 후에는 장봉승 주교, 강우일 주교, 이병호 주교 등과 유족들이 흙을 한삽 한삽 퍼올리며 관을 덮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기도를 올리는 소리는 점점 높아졌고, 이에 따라 유족과 지인들의 눈시울은 더욱 불거져 갔다. 매장이 진행되는 동안 김 추기경의 떠남을 아쉬워하는 기도와 노래가 묘역을 뒤덮었다. 이 땅에 남은 사람들의 가슴에 "서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남긴 김 추기경은 그렇게 "하느님의 품 속으로" 영원한 안식을 찾아갔다.

 
- 20일 오후 경기도 용인 천주교공원묘원으로 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 운구차량이 들어서고 있다
 
- 20일 경기 용인 천주교성직자묘역으로 고 김수환추기경의 운구행렬이 도착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20일 오후 경기 용인 천주교성직자묘역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집도하에 고 김수환추기경의 하관식이 열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땅속에 묻히는 유해 /사진공동취재단
 
- 뿌려지는 흙
 
-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는 추기경
 
- 흙 다지기
 
- 십자가와 함께 한 일생


故 김수환 추기경 선종(善終)과 관련된 일체의 기사는 연합뉴스, 뉴시스, 조선일보 등 매스컴의 제공을 받았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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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2 -> ▶"세계 천주교인 추모하라" 장례식 교황장 격상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식이 서울대교구장에서 교황장으로 격상됐다.
▶서울대교구는 19일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을 대신해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 미사 및 기타 전례를 집전하는 특사로 정진석 추기경을 공식 임명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 추기경의 장례는 서울대교구장이 아닌 교황장으로 치러진다. 또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 자격이 아니라 교황을 대신해 20일 열릴 장례 미사 뿐 아니라 다음주 진행될 장례 전 일정을 주관하게 된다. 교황장 지정은 전세계 천주교 신자들이 김 추기경을 추모하라는 의미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교구는 “추기경의 장례식이 모두 교황장으로 치러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김 추기경은 전세계 추기경 가운데 최연장자급이고 교황이 여러 사정으로 직접 주례를 하지 못해 정 추기경을 특사로 임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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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기사1 -> ◆김수환 추기경 선종(善終)◆

●`이웃집 성자`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오후 6시10분쯤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선종(善終)했다. 김 추기경은 7개월여 동안 병원에 입원해 투병 중이었다. 서울대교구는 김 추기경 선종에 따라 서울 명동성당 등에서 장례 미사를 치르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한국 천주교 첫 추기경으로 역사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김 추기경(본명 스테파노)이지만 그는 결코 권위적이거나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추기경을 만났던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편안하고 인자했던 모습으로 기억한다.

김 추기경은 생전 운동을 매우 좋아했다. 그가 특히 좋아했던 운동은 테니스. 윔블던테니스 대회 같은 큰 대회가 열리면 밤을 새워서 볼 정도로 `테니스 광`이었다. 추기경은 또 `보통 남자들처럼` 축구도 즐겨 보았다. 축구 한일전이 있으면 빠짐없이 챙겨봤을 정도. 축구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내듯 김 추기경은 실제로 2002년 한일월드컵 개막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TV드라마도 평소 그가 좋아했던 취미 활동이었다. 추기경은 특히 역사적 사실을 다룬 시대물을 좋아했다고 한다. 2002년 초에 한 모 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태조 왕건`과 `여인천하`를 즐겨 본다며 해당 드라마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말한 적도 있다.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날 때부터 운전면허를 따겠다는 계획을 말하고 다닌 김 추기경은 몇 년 뒤 언론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계획을 달성했냐"는 질문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추기경은 필기 시험도 치르지 못하고 면허따기를 포기한지 꽤 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럼없이 "문제집을 풀어봤는데 낙제점을 맞아 포기했다"며 그 이유를 당당히 밝혔다.

그는 분명히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웃을 때는 친근하고 인자하게 느껴졌던 우리네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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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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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상조단체 상조협회 이야기
조직이란 소속된 구성원들의 친목과 함께 공동 발전을 위한 네트워크란 점이 핵심 존재이유라고 할 수 있다. 한국상조산업계도 2021년을 기점으로 비영리 공인 단체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전국적인 단일조직은 아니지만 어쨋든 공식 '사단법인'이란 점에서 의미있는 발전이다. 한국상조산업협회는 설립 허가를 받은 후 박헌준 회장 이름으로 “공식적인 허가 단체로 거듭난 협회는 회원사와 더불어 장례문화발전과 상조업계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기자는 관련 기사에서 경험에서 우러나는 희망사항을 곁들였다. 4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상조산업의 문제점은 원래의 본향이었던 상부상조, 아름다운 품앗이의 핵심, 장례문화를 제대로 발전시킬 수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의례서비스의 근본을 떠나 소위 결합상품 내지는 의례와 거리가 먼 라이프서비스로 주업태를 변경시켜 가며 이윤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상조고객의 대부분이 미래 장례를 목적으로 가입한 것이라면 상조산업 발전과 장례문화 발전이 동일한 의미를 가져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24일자로 공정위의 허가를 받은 '사단법인 한국상조산업협회'가 설립목적으로 명시한 "상조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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