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를 통해 감동을 주고자 노력하는 모습 역력 ●종사자들의 몸에 밴 서비스 정신 ●장례회사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세미나 개최 ●일본장례문화의 진수는 "종합 연출" ●FBI요원처럼 한치의 실수도 허락지않는 서비스 ●장례식장소가 호텔 연회장 같은 분위기 |
우리 장례문화도 많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관련학과가 전국에 걸쳐 10여곳에 개설되어 젊은 일꾼들을 양성해 내고 있다. 대전보건대학에서는 국내 최초로 학교의 후원으로 장례지도과 학생 3명을 이웃 일본의 선진 장례문화 연수 목적으로 지난 1월 20일 파견했다. 장례문화의 핵심인 서비스의 질적 향상과 컨텐츠 개발 등 젊은 인재들이 보다 많은 것을 배워 관련학문 발전과 국가간의 상호교류에 이바지하게 된 점에 큰 의미를 두고자 한다. 이에 본지에서는 학생들의 생생한 연수 과정을 직접 쓴 글을 통해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하면서 협조해 준 학교와 학생에게 사의를 표한다. 참고로 이글을 쓴 학생은 대전보건대학 장례지도학과 1학년 곽민수양이고, 가나가와현 와다회사에는 2학년 김준구군, 이민족군이 연수중입니다.<편집자 -주) |
●연수 제1보 - "에포크 제팬"의 첫 방문 ●2008년 1월 20일 에포크 제팬에서 나온 직원의 큰 플랜카드로 환영을 받으며 미야자키 공항에 도착하였다. 일본은 처음 인지 춥지는 않은지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었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뒤 여러 가지 편의 시설에 대해 설명을 들은 뒤 내일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다음 날 1월 21일 아침 호텔로 직접 마중 나온 타카하시(TAKAHASI YOSHIKA) 상 덕분에 편하게 호텔에서 회사까지의 길을 알 수 있었다. 도착해서 회사를 처음 본 느낌은 이곳이 장례 업무를 담당하는 곳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겉으로 보든 내부를 들여다 보든 그 곳은 자세히 내용을 보지 않으면 누구든 장례 업무의 회사라고 알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타카하시 상과 함께 하며 이 회사가 서류와 전반적인 큰 틀은 지금 위치한 이곳에서 그리고 나머지 장례의식을 치르는 즉 우리나라의 장례식장과 같은 곳은 Hall 이라고 하여 미야자키시 내에 10곳을 두고 운영을 하고 있다는 회사의 시스템을 알게 된 후는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이러한 특이한 시스템이 과연 효율적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우리나라는 한 도시에 인구가 집중해서 살고 있고 님비 현상으로 인해 도심 여러 곳에 장례식장이 들어 설 수 없어 한 지역에 대형 장례식장이 들어서는 현실이지만, 일본의 특히 이곳 미야자키의 경우 지형에 따라 인구가 길게 분포 되어 있고, 여러 교통과 고비용을 고려 할 때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장례식장을 방문하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Head가 되는 사무실이 한 곳에 위치하고 도시 곳곳에 가족장의 형태로 하나의 건물에 하나의 홀만 운영되는 시스템이 발전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든다. |
검사 후에는 다 같이 회사 지침같이 보이는 글귀를 한번 씩 읽은 후 또 다시 한명이 지목 되고 그 지목 된 사람은 인사 시범을 보인다. 나머지는 인사 시범을 따라 한다. 이러한 것은 우리나라의 고급 음식점이나 호텔이나 백화점등 서비스 교육을 받는 모습과 거의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모습은 일본의 장례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비스로 이뤄진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보고까지 한 뒤 미팅이 끝났다. 아침의 시작부터 이런 철저한 미팅으로 하루 일과와 서비스 제공에 대해 실수에 대한 미연의 방지가 보였다. 사무실로 내려온 직원들은 각자 자신이 갈 길을 따라 나섰는데, 알고 보니 그것은 미야자키내 위치한 열 곳의 에포크 제펜의 홀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배치는 매일 스케줄 조정에 따라 변경된다. 그 이유는 홀이 있는 위치의 거리와 그 홀의 크기 등 각각의 서로 돌아가면서 함으로써 어려움을 조정하는 것이었다. "에포크 제펜" 회사와 처음 함께 일하면서 먼저 회사의 구조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중점적으로 회사의 시스템과 일을 시작하는 에포크 제펜의 아침의 풍경에 대해 묘사했다. 아직은 완전히 알지 못했지만 이러한 구조를 이해함으로써 앞으로 지내면서 좀 더 우리나라와 비교 분석하여 우리나라 장례를 더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장례 절차가 많이 간소화 된 편이다. 일반적으로 누군가 돌아가시게 되면 에포크 제펜과 같은 장례회사에 연락을 취하게 된다. 일본은 병원에 장례식장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병원에서 돌아가셔도 집으로 모시게 되거나 바로 고별식장, 장례식장 같은 곳에 모시게 된다. 장례식장에 모시게 되면 먼저 가족과 상담 후 美裝(미장, びそう) 과 納棺(납관, のうかん)의 의식을 한다. 미장은 우리나라의 시신 메이크업에 해당하며 납관은 우리나라의 염습 및 입관 과정과 흡사하다. 그러나 과정이 비슷할 뿐 그 내용은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는7매로 시신을 싸매고 수의를 다시 입히는 과정 후에 입관을 하지만 일본은 메이크업이 끝난 시신을 가족과 함께 시신이 뉘여 있는 하얀 이불을 들어서 관에 넣는 작업으로 끝이 난다. 단지 말 그대로 입관 하는 과정이다. 입관 후에는 시신 위에 드라이아이스를 다리와 배 등에 올려놓고 하얀 이불보를 한번 더 덮은 뒤 관을 닫는데 관도 역시 얼굴을 볼 수 있게 개관 되어있는 형태이다. 드라이아이스로만 처리하는 일본의 납관 과정에서 시신의 위생처리가 제대로 된 상태인지, 드라이아이스로만 해결 될 수있는 문제인지 의문이 생겼다. |
통야 후에는 고별식, 즉 장례식을 치르게 된다. 장례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직원들의 서비스정신이 일관되게 보여 진다. 그리고 장례식은 종교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 적인 순서를 보자면 상주들은 가장 앞에 앉아 있고 조문객들은 뒤에 비치된 의자에 앉는다. 화려한 제단 아래 고인의 관이 놓여 있고, 종교에 따라 스님이나 신주 등이 입장해서 고인을 위한 염불 또는 기도 등을 한다. 아나운서의 진행과 나레이션에 따라 상주와 조문객들이 움직인다. 종교의식이 끝이 나면 상주의 고별 편지 낭송과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고인의 연보가 흘러나온다. 조문객은 퇴장하게 되고, 가족만 남아 준비된 화환에 있던 꽃들을 고인의 관에 하나씩 넣으면서 직원들이 주는 작은 잔에 담긴 물을 마시거나 고인에게 주는 꽃에 붓는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참았던 눈물을 그제야 쏟아 낸다. 눈물을 흘릴 때도 곡을 내어 울지 않고 마치 슬픈 영화를 보듯 눈물을 흘린다. 그것이 일반적인 일본의 장례 모습이라 한다. 고인과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한 뒤 출관하게 된다. 출관 뒤에는 남은 가족들은 점심이나 저녁을 먹는다. 준비된 음식은 일본의 도시락이다. 직원들은 출관하는 차를 배웅하는데 차가 나오기 전 장례식장 앞의 도로를 양쪽에서 통제를 하고 출발하는 고인과 가족의 차들이 끊겨 나오지 않게 한다. 이것이 일본 장례의 일반적인 식순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하자면 매우 간단한 절차로 보인다. 보통 장례식도 하루 내지 이틀 안에 끝나기 때문에 삼일을 치르는 우리보다는 짧은 편이다. 짧고 간소화 된 만큼 고인의 가족들의 슬픔을 극대화 시키려는 노력이 보였고, 감동을 주고자 하는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조명과 제단이 화려해 지고 서비스 가치가 높아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장례식 직원들의 서비스 마인드에 대해서 좀 더 알고 관찰함으로서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
[2]▶종사자들의 몸에 밴 서비스 정신◀ ◈대전보건대학 장례지도과 곽민수◈ 오늘 미야자키 일일 신문사에서 저를 취재해 갔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장례를 배우러 온 첫 연수생이기때문에 관심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는데, 먼저 우리나라의 장례지도과에 대해서 궁금해 했습니다. 전국에서 몇개의 학교가 장례지도과가 있으며, 학생수는 얼마나 있는지 질문 했습니다. 그리고 이 과에 지원하게 된 동기와 공부는 재미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싶은지에 대해서도 취재해 갔습니다. 한국의 장례가 일본과 많이 다른지, 일본의 장례를 본 느낌은 어떤지 어떤 계기로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 학교에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일본에 관심이 있어하고 오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 취재해 갔습니다. 기사가 언제 실릴지는 정확한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고, 조만간 신문에 실릴 예정이라고 합니다.기사가 실리는 대로 교수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 미야자키에서 곽민수.. |
●일본의 장례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객에 대한 서비스로 일관한다. 아침의 직원들의 미팅에서부터 이미 서비스가 시작 된다. 21일 8시 30분 첫 출근부터 지금 까지 참석한 미팅에는 직원들의 복장 검사가 있는데 어느 날은 복장 상태 검사, 어느 날은 손톱 검사 그리고 어느 날은 손수건 검사 등 무작위로 바꾸어서 하였다. 단정한 복장으로 고객에게 단정한 이미지를 부여하고 깨끗한 손톱을 유지하여 청결함을 부여한다. 그리고 직원마다 손수건 두 개씩을 지니고 다니는데 하나는 자신의 땀이나 손을 닦기 위한 것,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고객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복장부터 고객을 위해 입는 것이다. 미팅 때 마지막 순서로 인사 교육이 있다. 한사람의 시범 하에 모두가 따라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것은 현장에서 고스란히 적용되는데 우선 복도를 지나치다가도 고객이 보이면 누구든 멈춰 서서 15도 각도로 고개를 숙인다. 이러한 것은 당연하게 여기듯 보였다. 지난 25일은 타카하시 상과 江平ホ-ル에 방문하게 되었다. 직접 식이 진행 중인 홀에 올라가지 않고 이번에는 사무실에서 모니터로 식이 진행 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 때 고인의 유족이 일어서서 조문객을 향해 인사를 하던 장면이 나오는데 뒤에서 같이 보던 타카하시 상이 15도로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사무실에는 나와 타카하시상 단 둘밖에 없었고 유족이나 조문객들도 보지 않는 상황에서 모니터에 그렇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이렇게 직원들은 고객이 보지 않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서비스를 지키는 것이었다. 또한 고객에 대한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는다. 식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어린 아기가 울음을 터트려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잠시 홀의 구석으로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이 때 직원의 한명이 의자를 하나 가져다주어 고객을 앉게 해주고 아기가 울음을 쉬이 그칠 수 있도록 물도 가져다주는 배려를 보였다. 이런 세심한 서비스가 고객의 감동을 이끌어 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
그 중에 가장 인상 깊거나 서비스가 좋았던 직원의 이름을 적으면 거기에 이름이 거론된 직원은 회사 내에서 지명도가 올라가서 다음에 다른 유족들이 찾아 왔을 때, 서비스가 좋다고 평가 된 점을 어필하여 소개 받을 수가 있고, 만약 서비스가 가장 좋지 않았다거나 불쾌 했던 직원의 이름을 적으면 이름이 거론된 직원은 다음의 월급이 조금 깎이게 된다. 그래서 직원들은 항상 긴장하고 있으며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 같은 회사의 시스템이 직원들의 최고의 서비스로 이끌어 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일본의 서비스는 우리나라에 비해 장례식이 짧고 간단히 진행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장례식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서비스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꽃 제단이나 고별 편지의 낭송 그리고 낮게 깔리는 음악,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꽃 미장(고인의 관에 꽃을 넣어 주는 순서)등의 이벤트가 발달한 것도 위와 비슷한 이유인 짧은 장례식의 가치를 그만큼 높이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우리나라도 점점 간소화되길 바라는 유족이 늘어나게 된다면 이런 서비스 가치의 상향 조정이 가장 먼저 시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에포크 제펜 관계 사람들이 모두 친절 하셔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
◈대전보건대 장례지도과 김준구,이민족 군◈ 대전보건대학에서 일본현지 장례식장에 연수로 파견한 학생은 앞서 나온 곽민수양 외에 김준구,이민족 두 남학생도 있는데, 이들은 가나가와현 와다장례식장에서 열심히 연수를 하는 과정을 일기형식으로 적어 보내왔기에 여기에 소개한다. 다음에는 곽민수양을 소개한 현지신문 기사와 그녀의 연수 일정을 추가로 소개한다. [편집자-주] |
●첫 출근 ●1월21일 월요일 맑음 숙소에서 아침 일찍 기상하여 와다회장님을 기다렸으나 10분. 20분, 30분이 지나도 사장님은 오시지 않았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첫날부터 큰 걱정이 앞서기 시작했다. 이대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인가. 최초로 연수를 보내주기 위해 노력하신 여러 교수님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 이제 우린 장례업에 발을 들여 놓지도 못하고 이대로 꺼져버리는 불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별에 별 생각이 들었다. 주민들에게 물어 직접 본사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본사로 갔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도착하였다. 어제 갔었던 건물로 갔었는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다회장님께서 직접 오셔서는 우리를 본사로 데려가셨다. 회장님의 말로는 사장님께서 매우 화가나 있다는 제스처를 주시면서 우리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언어전달이 잘못되어서 오해가 생긴 것이다. 이걸 해명할 말이 생각이 안 나고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생겼다. 본사로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새삼 일본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비밀 번호 키를 누르고 암호화되어있는 문구를 넣어야했다. |
이때까지 내가 저렇게 외국인을 봤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받아보니 새삼 느낌이 새로웠다. 와다회장님께서 사장님과 직원들을 소개해주었다. 그렇게 소개를 마치고 바로 개인에게 파트너를 지정해주곤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어안이 벙벙하였지만 마음만은 모든 걸 다 할 준비는 되어 있었다. 처음 우리가 한일은 세레모니 홀이라는 건물에서의 장례식준비였다. 처음 들어선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나무로 만든 제단장식이였다. 별도의 영결식장은 있지 않았다. 빈소는 향나무로 만든 일본 전통 사찰모양의 제단으로 되어있었다. 창문과 문으로 표현되는 곳마다 조명이 들어 왔으며 용이 여의주를 품고 있는 듯 한 모양으로 사찰과 고인을 지키는 의미처럼 보였다. |
첫 번째 이들은 목소리가 크지만 귀에 거슬리지 않는다.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목소리로 식을 진행하며 또박또박 약간 느린 어조로 영결식을 진행한다. 두 번째 끝까지 손님을 안내한다. 입장에서부터 자리배정과 자리에 앉을 때까지 책임진다. 모두 흰 장갑을 착용하며 중간음향상태의 이상이나 식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수시로 직원 간에 사인을 보내는 모습에 정말 이런 것이 장례연출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회사 안의 내부모습이다. 왼쪽에 보이는 화이트보드 판이 직원들이 하루일과가 적힌 일과표이다. 자석을 이용해 휴무자와 근무자를 표시하고 근무자는 시간별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부터 시간까지 정확하게 표시해놓고 있었다. 매일 이 상황판앞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모두 서서 회의를 시작하는 모습이 정말 전쟁에 참가하는 군인들의 자세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저렇게 매일 일본직원 1명과 파트너를 정해서 한팀이 되어 따라다니면서 2인조 활동을 했다. |
말 그래도 출장장례인 것이다. 그리고 일본인 장례지도사 30명의 핸드폰은 회사에서 지급된 핸드폰이였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핸드폰을 가지고 서로연락하며 위치를 파악하고 식의 진행을 본사에 보고한다. 차량은 너무 많아서 몇 대인지 아직 파악은 못했지만 키를 한꺼번에 보관하며 사용자가 가지고 나간다. |
이렇게 인근주민과의 친밀감을 유대하는 동시에 미래의 고객을 확보한다는 전략인것 같다. 이렇게 끊임없이 노력하고 빈틈을 공략한다.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고객을 미리 찾아가 고객을 만드는 것이다. |
여기서 설명은 들은 분들은 팜플렛을 가져가고 그 정보를 이용해 자신의 장례식을 계획하고 예산을 정한다고 한다. 고객은 복잡하고 어려운 장의를 보다 쉽고 힘들지 않게 정보를 얻고 장례식장은 먼저정보를 줌으로써 고객을 확보한다.. 바로 윈윈 전략인 것이다. 영상이 끝난 뒤에는 궁금하신 분들에게 1:1일로 면담을 실시한다. 철저히 친절하게 답변해드리고 궁금한 내용을 자세하게 쉽게 설명한다. 그리고 오신분들에게 오신점을 고맙게 여긴다며 꽃을 선물해 드린다 |
벽기둥에 칸막이를 쳐놓아서 무엇인지 들쳐보니 작은 콘세트가 있었다. 그 콘센트 마져 가리기위해서 병풍으로 가린 것이다. 작은 것하나 마져 주변환경과 어울리지않으면 그런 세심함을 보인다. 작은거 하나의 서비스가 중요한 것이다. |
참 부러운 환경이기도 하고 일본이라는 나라가 참 신기 하게 보였다. 삶과 죽음이 한곳에 아무렇지 않게 공존하는 세상이다. 아무렇지 않게 영구차가 번화가를 지나가고 시신이 들어가고 나온다. 과연 우리나라도 사람들의 인식이 바뀔 때 까지 얼마나의 시간이 걸릴지 생각하며 하루를 마쳤다. |
와다직원들은 밥을 무척이나 빨리 먹는다. 밥을 먹는다고 보기보다 밥을 마신다고 보는게 맞을 것같다. 우리는 반도 못 먹을때 그들은 벌써 다먹고 기다리고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빨리 먹고 1분이라도 조금 더 쉬고 싶은 마음에서 밥을 빨리 먹는 것 같다. 밥 먹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쉬고 싶어 하는것 같다. 이곳일은정말 힘들다. 한시라도 긴장을 늦추면 안되고 항상 완벽을 추구한다. 자기가 맡은 장례식의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다. 점심시간만이라도 긴장을 늦추기 위해서 인지 밥을 빨리 먹는다. 정말 빠르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가 힘들다. |
◈대전보건대 장례지도과 곽민수◈ ▶일본현지 신문 보도 내용◀ 대전보건대의 곽민수양, 일본에서 이국의 장례문화를 배우다/ . 대전보건대 장례지도과의 곽민수(21세)양은 미야자끼시에 소재하는 "에폭 재팬" 미야자끼 지사에서 일본의 장례에 대한 내용을 배우고 있다. 연수기간은 2월 11일까지로 곽양은 "한일간 장례의 차이를 배워 장래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의욕을 보였다. 곽양은 부산시 출신으로 고교졸업후 한때는 부산소재 다른 대학의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여동생이 진학했던 대전보건대 장례지도과에 흥미를 가지고 장례를 폭넓게 공부하기 위해 동 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일본에는 대학에 장례학과가 없으나 대전보건대학은 매년 동경의 장의전문학교 등에 유학생이나 연수생을 파견하고 있으며 이번에는 이 학교의 소개로 곽양을 보내게 되었다. 한일간의 장례차이에 대해 곽양은 " 한국에서는 가족이나 조문객이 큰 소리로 울고 슬픔을 표현하는데, 일본에서는 흐느끼는 사람은 있으나 한국에 비해 조용하다"고 그차이에 놀랬다고 한다. 앞으로 "일본에서 배운 것을 살려서 국가가 운영하는 장례식장에서 일하기를 희망한다"고 소감을 표명했다. |
일본의 장례는 처음부터 끝까지 꽃을 이용한 연출이 이어지는 점에서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1월 26일 江平 ホ-ル는 다음 날의 고별식 준비로 한창 바빴다. 다음 날 고별식을 위해 가장 먼저 준비하는 것은 입구의 사쿠라를 이용한 꽃 장식과 제단 배치와 꽃 장식이었다. 다른 어떤 것보다 꽃이 이용의 가장 먼저 이루어지는 것은 그만큼 꽃을 이용한 연출을 중요시 생각하는 것이다. 꽃이 어떻게 꾸며지냐에 따라 사람의 눈길을 어느 정도 끌 수 있는지 그리고 장례식의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어 질지 결정이 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단 제작이 끝나고 화환이 들어왔다. |
고인을 화장장으로 보내기 전 마지막 고인과의 작별 인사를 하는데 고인의 관에 꽃을 하나씩 꽂아 줌으로써 고인에 대해서 한번더 생각 할 수 있고, 더불어 주변의 아름다운 꽃과 음악을 통해서 한껏 고귀하게 승화되는 것이다. 슬픔을 아름다움으로 이끌어 내는 최고의 연출이다. 꽃과 더불어 조명 또한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는 촛불로서 이용하고 있지만 일본은 제단 뒤쪽을 전기를 사용한 조명으로 연출하고 있으며 홀 내의 모든 조명의 조도 또한 은은하게 비추게끔 하여 분위기를 자아낸다. 촛불 역시 일반 녹아내리는 초가 아닌 알코올을 이용하고 겉은 하얀색의 초와 비슷하게 만들어낸 자기를 써서 사용 하고 있었다. 이런 조명 시설을 적절히 이용해 분위기를 이끌어 낸다. 화환의 꽃들은 나중에 花美葬(꽃미장, はなびそう)시에 고인의 관에 넣을 꽃으로 사용되어 졌고, 그렇게 하고도 남는 꽃은 꽃다발을 만들어 입구에 놓아두면 유족이나 조문객들이 하나씩 가져갔다. 그렇게 해서 꽃의 재사용과 버려지게 되는 낭비를 막는 것이다. 우리는 개업집의 꽃은 가져오지만, 장례식의 꽃은 불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져가려 하지 않는다. |
이러한 음악과 아나운서의 효과적인 진행을 위해 음향 시설 또한 제대로 갖추고 있다. 이렇게 일본은 빛과 소리, 시각을 이용하는 것이 고객의 감동을 최대한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
고별식은 아주 성대하게 이뤄졌으며 꽃 또한 일반 다른 장례와 달리 하얀색으로 통일감을 주었다. 꽃 종류는 달랐지만 화환부터 제단까지 하얀색으로 통일을 해 깔끔하고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음악도 클래식이 아닌 직접 북과 징으로 신주들이 연주를 하는 연출을 보였다. 장례의 규모가 달라지면서 연출의 폭 또한 커짐을 느낄 수 있었다. |
●1月26日 土曜日 도쿄에 가다. ●오늘은 도쿄행이다. 도쿄에 있는 와다회사로 견학을 가기로 했다. 일본에서 처음 타보는 지하철이다. 일본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와 정말 다르다. 그 누구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으며 책, 핸드폰 아니면 잔다. 떠드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이내 우리도 분위기에 휩싸여 조용히 있었다. 이렇게 40분가량 지하철을 타고 도쿄에 있는 장례식장에 도착하였다. 도착하였는데 마침 식이 시작하기 1시간전이었다. 우리는 회사 건물 곳곳에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물론 사전에 양해를 구하고 찍은 것이다. 일본인들은 상당히 배려심이 강하다. 한국에서 온 연수생이라고 밝히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깐 당연히 ok를 했다. 그러면서 참으로 우릴 좋아해주고 우리에 대한 것을 물어봐 주셨다. 한국에서 장례에 대한 공부를 한다니깐 참 신기해하시면서 우리는 갑자기 둘러싸여서 인기인이 되어버렸다. 식장 안에 들어가는 순간 화려한 제단에 눈길이 제일 먼저 갔다. 역시 일본은 제단이다. 갖가지 아름다운 꽃들을 곡선미를 살려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흰색만이 아닌 핑크색 장미를 넣어 조금 더 화사하고 화려하게 하였다. 고인이 생전 핑크색을 좋아하셨다고 한다. 자신이 좋아하면 하는 것이 일본의 특성이다. 우리나라처럼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국화로 통일하는 것은 안 좋은것 같다. |
제단 앞에 저렇게 관이 놓여져 있고 뚜껑이 열려져 있어 저 곳으로 고인의 얼굴을 본다. 그리고 화려한 조명은 제단에 있어 필수이다. 어떻게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고 화려하게 꾸밀지 노력하고 연구한다. 장례식장 입구 앞에도 역시 꽃이 놓여 있다. 건물 곳곳에 화장실에도 꽃이 놓여있다. 정말 일본장례문화는 꽃으로 시작해서 꽃으로 끝난다. 그리고 일본의 모든 장례식장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사람이 타는 엘리베이터와 시신이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 2개가 존재 한다. 이곳은 사람과 관이 같이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쯔지도에 있는 와다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는데 이곳은 같이 있다. 엘리베이터를 따로낼 건물공간이 부족하였다고 한다. 도쿄도 땅이 비싸서 건물을 크게 올리는 것 같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관을 움직임을 줄이는 쇠사슬도 같이 있다. 또 오른쪽 사진은 문스토어이다. 일본의 아이디어이다. 관이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문을 열고 닫아야 할 상황이 많다. 이때를 대비해 스토어를 준비하여 식이 있을 때는 항상 저렇게 해놓고 문을 열어 놓는다. 식이 끝난 뒤 직원들이 꽃을 자르는 모습이다. 식이 끝남과 동시에 꽃집직원과 장례식장 직원들은 재빠르게 꽃을 제거한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꽃을 자르면서 유가족들이 기다리지 않게 멘트가 끝남과 동시에 꽃은 준비가 되어져 있었다. |
밥은 역시 외식업체에서 대행하고 있으며 밥 먹을 때에도 사진과 꽃으로 제단을 설치하여 밥 먹을 때도 고인과 함께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른쪽 사진은 우리나라로 치면 조위록을 쓰는 곳이다. 안쪽에 수납공간이 있어 짐을 넣을 수 있다. 이것도 실용주의 일본의 아이디어다. 작은 공간 하나도 놓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조위록 쓰는 곳 앞에는 저런 테이블이 하나있다(사진-4). 저것의 용도는 조위록 쓸 때 조문객의 짐을 올려놓으라고 있는 테이블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코트나 가방 등 짐이 많은 조문객을 위한 배려이다. 이런 세심한 배려 하나가 고객의 감동을 주는 것이다. 밥을 먹고 나선 바로 화장장으로 향한다. 장례식장과 화장장과의 거리는 도보로 5분 거리이다. 동선이 정말 가깝다.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을 치루고 바로 화장장으로가 화장을 한다. 거리가 가까우니 정말 편하다. 연로하신 분들은 버스를 이용해 가고 젊은 사람들은 걸어서 화장장을 갔다. 화장장은 사립화장장으로 개인화장장이었다. 사립화장장의 규모며 내부의시설은 국공립 화장장보다 더 좋았다. 내부는 정말 고급스럽게 인테리어 되어 있으며 근무자의 복장은 통일하고 여성근무원과 남성근무원으로 100명이 넘었다. 화장로는 총 1층에만 10기가 있었다. |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이곳 장례식장 직원들은 화장장까지 따라오며 에스코트를 해준다. 그런 장례식장 직원들이 쉴 수 있는 공간도 있다. 그곳에는 과자며 차가 무료로 제공되고 있으며 사립화장장에서 장례지도사에게 주는 배려라 고한다. 일반 유가족은 이용할 수 없으며 장례지도사들만 화장이 끝날때까지 기다리면서 쉴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천장에는 화려한 상드릴레가 달려있어서 건물 내관을 더욱더 고급스럽게 만들고있다. 이렇게 도쿄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끝났다.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사설 화장장이란 곳도 가보고 과연 사설이기에 할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국립이었다면 못했을 것들은 사설이라 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에서 능동적인 태도는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이라는 건 분명했다. |
이런 점이 너무 부럽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곳. 사람이 태어나는 것도 살아가는 것도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도 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인데 왜 우리나라는 죽음을 거부하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마냥 일본이 부러워지는 하루였다. |
●오늘은 일본에서 처음 상조회사가 개입된 장례식을 보았다. 상당히 규모가 큰 장례식이었다. 우리가 있는 쯔지도에는 상조회사가 없다고 들었다. 그런데 오늘은 상조회사가 개입된 장례식이라 기대가 많이 되었다. 왼쪽사진은 오늘 제단의 도안이다. 이곳은 그날 제단할 도안을 이렇게 출력하여 꽃제단사가 이사진을 보고 작업을 시작한다. 기독교장례식의 도안이다. 원래 개신교, 천주교 장례는 성당이나 교회에 가서 하는데 오늘은 와다장례식장에서 하였다. 처음이었다. 그래서 사진과 보이는 모양으로 모든 것을 다시 재정비하여 만들기 시작하였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뒤 커튼도 만들고 나무제단을 다 해체한 뒤 모든 인원이 투입되어서 장례식을 준비하였다. 우리는 제단의 규모가 너무 커서 높은 직위의 분이신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정말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10여명이 넘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평소에는 50개정도의 의자를 150개 넘게 날랐다. 모든 직원들이 정말 요원처럼 자기가 맡은 일을 각자 척척 알아서 다해내는 모습이 참 이들은 장례식장 직원이 아닌 FBI같은 요원의 모습이었으며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이곳의 모습이 전형적으로 보여지는 모습이었다. 제단사들도 분주히 움직이며 제단의 모습이 다 완성되기 시작하였다. |
이렇게 제단과 의자의 정열을 다하고 잠시 숨 돌릴 틈도없이 음향기기 셋팅과 2층 3층에 있는 관람실 의자정열과 조명점검, 음향기기 테스트로 들어갔다. 옆 사진에서 보이는 곳이 관람실이다. 식장내부의 자리가 모자라면 이곳으로 와서 모니터를 보면서 장례식을 참관한다. 이곳까지 장례식장을 포함 3곳의 자리가 꽉 찰 정도로 조문객이 많이왔다. 장례식 장면은 촬영불가여서 담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이들은 장례식이라는 하나의 행사를 준비하는 행사요원이었고 모든 것에 대해 완벽함을 추구하고 행동하나하나가 서비스의 정신이 깃든 정예요원이라는 느낌을 다시 한번 받으며 몸에서 몸으로 체험하면서 이들의 서비스 정신과 직업 정신을 느끼게 되었다. |
우리나라처럼. 천편일률적으로 다 똑같지 않다. 이런 주문은 첫 상담에서 이루어진다. 사진의 배경을 어떻게 할 것인지 무엇을 좋아 하셨는지 즐기셨는지 모든 사항을 장례식과 접목시켜 준다. 이런 서비스 정신이 바로 또 다른 이익의 창출과 또 고객의 향수와 감성을 자극하는 마케팅이 아닐지……. 우리나라도 이런 점을 도입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
●일본군 출신의 장례식이 있었다. 여태껏 많은 장례를 본적은 없지만 이렇게 많은 화환이 들어온 것은 처음 보았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화환이기에 이렇게 많이 들어와도 사람들이 있을 자리는 충분했다. (장례행사 중 사진 촬영 할 수 없었음) 이번 장례는 행사 식순이 영결식장 문 앞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볼 수 있도록 놓여 있었으며 고인의 영정과 함께 있어 더욱더 눈길이 많이 갔다. 이곳에서는 검은 리본을 거의 쓰지 않았다. 제단장식은 전부 꽃으로 했으며 관위를 일장기로 덮어 놓고 그 위를 고인이 평소 읽던 책과 안경 유품 등을 올려놓았으며 관의 얼굴 부위만 열어 얼굴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와다 장례식장의 사회로 모든 의식이 진행이 되었으며 고인의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이 나와 고인의 영정을 바라보며 마지막 편지를 읽고 살아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흐느끼며 말하는 모습에 우리와는 다른 점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우린 유족을 바라보거나 영정을 등지고 읽고 말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고인을 직접 바라보고 하는 모습에서 고인을 위한 장례를 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진 캐논 변주곡 과" time to say good bye" 등 커피 선전에서 자주 나오는 듯한 편안한 음악으로 연주를 했다. 발인 바로 전에는 온가족의 사진 촬영이 있었다. 어렵게 모인 가족들이 사진 촬영을 통해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 할 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노약자나 장애우를 위한 시설이 항상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을 했다. 운구차량에 올라타기 위한 그 작은 높이에도 발판을 준비해 밟고 오를 수 있도록 모든 차에 발판이 준비 되어 있었고 휠체어 역시 배치되어 있었다. (고령화에 따른 조치로 보이기도 함) 운구차에 올라타는 짧은 거리에도 경호원이 경호를 하듯 우산을 일일이 씌여주며 차에 태워주는 모습을 보며 고객을 대하는 서비스가 일반 대기업과 맞먹는 정도 인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났지만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의 고객서비스와 제단이 꾸며질지 매일 매일이 기다려진다. |
●자택에서 치르는 장례식도 점차 증가 ●2月4日 月曜日 오늘은 자택에서 하는 장례식에 같이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디에 가는지 모르고 그냥 무작정 차에 올라 가다보니 어느 한 일본인 집이였다. 전형적인 일본주택건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집에서 하는 장례식이였다. 집안쪽 방에 꽃제단장식과 관 등 장례식에 쓰이는 모든 물품을 집에다가 모두 가져다 놓았다. 아쉽게도 내부며 건물 전경을 사진을 찍지 못해서 정말 아쉬웠다. 일본은 가족장이 유행하고 있고 ‘또 한 가지가 집에서 하는 장례식이 유행이라고 한다. |
처음 차에 탔을 때 짐칸에 삽이 하나가 있어서 무엇인가 했는데 도착하고 나서 그 용도를 알았다. 여기 일본에는 주일 날 눈이 많이 왔었다. 그래서 고인 집 앞에 눈을 치워주기 위해 삽도 가지고 간 것이다. 조문객들이 오는 길에 눈이 없도록 위함이었다. 참으로 한발먼저 앞서서 생각하는 것이다. |
그리고 식이 끝나자마자 화장장으로 향해야 하기에 영구차 운행직원은 지도를 챙겨와 길을 체크하고 나갈 길을 미리 확인하고 돌아왔다. 또 골목이 좁기에 버스가 들어올 수 없었기에 택시를 대여해 유가족과 친척들을 화장장까지 모셔다 드린다. 하나부터 끝까지 계획된 대로 진행되고 짜인 각본에 의해 연출된다. 정말 하나의 종합예술 극단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렇게 식이 끝나고 본사로 돌아와 다시 장례식준비에 분주하였다. |
고인의 일대기를 사진으로 나열하여 추억을 회상할 수있는것이 또 하나의 서비스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물론 이것 또한 금액에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시도할만한 것이다. 이것은 조문객에게 드릴선물이다. 이것 또한 금액에 포함된다. 쇼핑백도 정렬된 상태로 유지되어야한다. 마치 군대에 다시온 듯한 기분이었다. 무사히 장례식을 마치고 오늘하루도 보람차고 많을 것을 느끼고 체험한 하루였다. |
2주 정도의 연수 기간 중 오늘은 그나마 좀 한가한 날이었다. 제단설치를 연습하는 모습을 보았다. 꽃집 직원들이 와서 여러 차례 구도를 바꿔가며 제단을 꾸미고 있었다. 장례를 치르는 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제단을 완성한 후에 우리에게 이 제단의 느낌은 어떠냐고 물어보며 종교적인 이미지가 있느냐 없느냐 일일이 물어보았다. 우리가 보이는 느낌 그대로 말을 해주자 그래도 자신들이 의도한 이미지와 맞는게 있었는지 정말이냐며 만족 해 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는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도록 중앙이 맞는지 기울기와 꽃의 늘어짐은 맞았는지 일일이 체크하는 모습을 보고 수정하는 모습은 정말 프로다웠다. |
오늘 본 장례식 중 인상깊었던 한가지는 식이 진행되기 30분 정도 전부터 고인이 평소에 좋아하던 음악을 은은하게 틀어 주는 것이었는데, 흘러나오는 음악을 조용히 따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유족과 조문객들의 모습은 마음이 찡했다. 더군다나 일본인들은 통곡을 하며 울지 않는다. 조용히 흐느끼기만 하는데 더 슬퍼 보였다. 식이 진행되는 중에는 하프로 고인이 좋아하던 음악을 연주하였다. (비틀즈의 음악이 흘러 나왔다) |
밥과 떡들은 흰 종이에 싸서 입관 시에 같이 넣어주며, 고인의 음반들과 장례를 치르는 동안 유족의 물품 등은 모두 직원들이 챙겨 두었다가 집으로 모두 직접 가져다준다. 일본의 장례문화를 보면서 우리가 바로 적용해도 무리가 없어 보이는 것이 많다. 그중에 하나가 고인의 좋아하던 음식을 진설 하는 것과 고인이 좋아하던 음악을 조용하게 틀어주는 것은 오히려 유족들에게 반응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고인에 대한 생각을 더 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
와다 회사 에서의 제설작전. 이곳에서는 회사라는 느낌 이라기 보다는 군대와 같은 생활패턴인 것 같다. 밤새내린 눈으로 회사 주변의 길이 눈에 쌓이고 곳곳에 결빙 되었다. 직원 들은 모두 정장을 갈아 입고 작업용 바지와 장화, 앞치마와 장갑을 준비하고는 눈삽과 석가래등을 우리에게 쥐어주고 곳곳으로 투입 되었다. 우리는 경기도 북부와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한 경력을 이용해 제설작전에 투입되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일본인은 군대가 자원제도 이기 때문에 군대를 가지 않는다. 그래서 인지 우리에게 군대를 갔다 왔냐며 몇 년간 근무 하고 힘드냐 어떤사람들이 뽑혀 가느냐에 대한 질문을 주로 하고 많은 관심을 보였다. 군대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은것 같았다. 우리가 제설작업을 하는 모습과 실력을 보고 대단하다는 표현인 “스고이 스고이”라고 감탄의 표현을 보였다. 회사주변을 작업을 한후 맞은 편 주차장으로 가서 제설 작업을 하였는데, 주차장이 파칭고와 주차장을 같이 쓰고 있었다. 와다 회사의 주차영역 표시는 파란 주차바리케이트로 표시를 해놓았다. |
그래서 인지 이곳의 차는 운구차는 물론 이거니와 조그만한 트럭과 봉고(라보, 다마스와 유사)도 항상 청결함을 볼 수 있다. 늘 청결함을 유지하고 직원들의 구두를 보면 항상 파리가 앉아도 미끄러질 만큼 청결함을 유지하고 정장 역시 늘 말끔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와다 회사의 사무를 담당하는 건물을 보면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임에도 불구 하고 실내에는 항상 청결함을 유지 하고 있다. |
항상 회사 현관 정문에 위치하여 안내를 한다든가 청소기나 걸레를 들고 늘 청소하는 모습이었다. 매일 오는 것이 아니고 정해진 날에만 와서 근무를 하였으며, 그들 역시 주간에는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는데, 신입의 경우 결혼한 상태에서 회사에서 준 월급으로는 부족하다고 하였으나 경력이 오래된 직원은 충분하다고 말을 하였고 정확한 액수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았다. 경력에 따라 월급을 주는 것은 우리와 같고 액수에서도 상당히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나라도 마찬 가지 인 것 같다.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공통점을 발견했다. 꾸준히 열심히 하는 자에게는 충만한 물질의 복도 따라 오는 구나.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한방. 하이킥 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이번 연수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인생의 성공은 잘 맞는 하이킥이 아니다. 인생의 성공은 꾸준한 로우킥이다. 늘 두드리는 자에게 문이 열리듯이...... [연재를 마치며] 한국장례업계 최초로 학교에서 보내준 해외 연수를 무사히 다녀 온 대전보건대학 장례지도과 김준구, 이민족, 곽민수 3 학생에게 노고를 치하하며 연재를 통해 우리 학생들도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일본 사람들의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근무자세와 앞으로 더 배우고 일해야 할 과정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하는가를 깊이 배우고 돌아 온데 대해 기특하고 마음 든든함을 금할 수 없다. 3학생들과 함께 장례문화에 마음두고 면학에 열중하는 모든 학생들에게도 앞날의 성공을 기원하며 연재를 마친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