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만큼 주고, 준만큼 돌려받는다”…경조사비 장부 유행 ●경제난과 각박한 세태를 반영하듯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 경조사비를 관리하는 ‘장부’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축의금, 부의금 등 각종 경조사비 지출 및 수입 내역을 꼼꼼히 기록함으로써 받은만큼 주고, 준만큼 받는다는 ‘생활신조’를 실천하겠다는 취지다. 과거에는 자신이 받은만큼 경조사비를 내지않아 상대방이 서운해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 가계부 등에 기록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요즘에는 어디까지나 ‘실속 챙기기’ 차원이어서 양상이 사뭇 다르다. “낸만큼 못 받으면 억울”=공무원 조모(29)씨는 오는 11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결혼식, 돌잔치 등에 경조사비로 나간 돈만큼 자신의 결혼식 때도 그만한 액수의 축의금을 일일이 받아내야 한다는 조씨의 각오는 대단하다. 그는 지난해 한해동안만 경조사비로 약 400만원을 지출했다. 2006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이래 동료 결혼식, 상사 첫 아이 돌잔치, 후배 부모 장례식 등 경조사가 끊이지 않아 200만원 안팎의 월급중 30∼40만원을 매달 지출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국민소비행태 및 국민의식조사 연구’ 자료에 따르면 경조사비 지출에 공무원계층이 가장 많은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는데, 조씨가 여기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사례다. 결국 조씨는 지난해부터 언제, 누구의, 어떤 행사에, 얼마를 냈다는 내용을 정리한 일명 ‘경조사비 살생부’를 만들어 일이 있을 때마다 꼬박꼬박 기재하기 시작했다. 조씨는 ‘낸 만큼 돌려 받겠다’는 일념으로 아직 10개월이나 남았는데도 벌써부터 결혼한다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지인들에게 부지런히 보내고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김모(27)씨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입사 이래 경조사비로 나간 돈이 100만원이 넘는다는 김씨는 디지털 가계부 형식의 컴퓨터용 ‘장부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소개해주고 있다. 우정에 금 가는 경우도=중소기업에 다니는 임모(33)씨는 초·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죽마고우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 얼마 전 치른 자신의 결혼식 때 친구가 낸 축의금 액수가 못마땅해서다. 임씨는 그뒤 경조사비 지출을 적는 가계부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임씨는 “친구 결혼식 때 봉투에 10만원을 넣었는데 그 친구는 내 결혼식에 5만원을 넣었더라”면서 “서운해 하지 않으려해도 그 친구 얼굴을 볼 때마다 기억이 난다”고 불편한 마음을 나타냈다. 우리 국민의 경조사비 지출은 해마다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6년 경조사비 지출은 2005년 대비 11.9%나 증가했다. 소득증가율 5.1%에 비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황정선 연구위원은 “저 사람이 1만원 냈으면 나도 1만원을 내고, 10만원을 냈으면 나도 10만원을 내야 한다는 ‘금전 교환식’이 돼 버린 현실이 아타깝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