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법이 시행된 지 2개월여 만에 허점이 드러났다. 13일 수원지방법원이 경기도 하남시장 등이 제기한 ‘주민소환투표 청구수리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하남시선관위의 주민소환 투표 청구수리는 무효’라고 판결한 것이다. 판결문의 취지는 “서명부에는 청구 사유가 반드시 기재돼야 하나 청구 사유가 기재되지 않았고, 그 결과 주민소환 투표를 청구할 유효수를 채우지 못해 무효”라는 것이다. 주민소환법은 주민이 소환을 청구하는 데 필요한 청구 사유 규정을 두지 않아 마치 무제한 청구가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즉, 이 법 제7조 제1항은 ‘(청구인은) 소환 사유를 서면에 구체적으로 명시하여 관할 선거관리위원회에 주민소환 투표의 실시를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전후가 모순되며, 법원은 바로 이 규정을 들어 무효라고 판단한 것이다. 이 규정은 ‘할 수 있다’는 임의 규정으로 볼 수 있을지 모르나 이 법의 입법취지가 주민과 공직자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분명하지 않은 법률의 제정 자체가 갈등 유발의 원인이 되며, 그래서 법원의 판결은 정당하다고 본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 청구 사유를 규정하지 않은 점이다. 예를 들어, 공직자가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사항이나 주민 생활에 필요한 공익시설 설치의 정책을 제시해도 소환 대상이 됨은 물론이다. 이러한 표면적인 이유에 가려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선거에서 패배한 데 대한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다음 선거를 대비한 사전 운동으로 이용될 우려도 있다는 점이다. 둘째, 절차의 투명성이다. 주민소환법에는 국회의원을 소환하는 내용은 없고, 자치단체 공직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국회는 해당 상임위원회의 공청회와 심의에 한나라당 의원은 1명도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일방적으로 진행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는 없었고, 본회의는 아수라장 분위기에서 형식적인 통과절차만 있었을 뿐이다. 주민 간의 갈등을 해결한다는 법률이 극심한 갈등 속에서 만들어졌다면 그 법은 이미 갈등 요인을 잉태하여 갈등을 해결하는 법률로는 부적절하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2건의 법률개정안이 의원 발의로 이미 상정된 것은 국회 스스로도 문제가 있음을 시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국회는 지체없이 개정안을 심의하여 그 결과를 국민과 법원에 제시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 제40조에서 ‘입법권은 국회에 속한다’고 입법전속권을 준 헌법과 국민에 대한 보답이라고 본다. 그리고 이왕 법률을 개정하려면 지금까지 나타난 문제점을 충분히 포함시켜야 한다. 이를테면, 청구사유에 대한 최소한의 규정과 갈등조정기구를 두어 주민과 공직 간의 의견을 조정한다든지, 주민소환 착수 전에 자치단체의 정책 사항에 대해서는 반드시 주민투표를 거치는 주민투표 전치(前置) 제도도 검토해 보는 것이다. 그 밖에도 이미 청구 이유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투표운동 기간을 25일로 한 것은 대통령(23일)과 자치단체장(14일)의 선거기간에 비해 불합리하다. 다만, 유의해야 할 점은 이 제도가 자치단체 공직자에 대한 경고성 제도라는 취지와 공직자의 적극적인 정책 개발 의지를 꺾는 제도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수원지방법원의 이번 판결은 교훈적 판결로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즉, 법률은 한건주의 입법보다는 원칙에 따른 신중한 입법이 필요하며, 시장이 정책을 개발하거나 시민이 주민소환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신중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점을 새삼 확인시켜준 것이다. [문화일보]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