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미 카터(91) 전 미국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자신의 암이 뇌까지 전이됐다고 밝혔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애틀랜타에서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이달 초 수술로 간에 있던 흑색종을 모두 제거했으나 MRI 촬영을 통해 뇌에서 4개의 새로운 흑색종이 발견됐다"며 암이 내 몸의 다른 장기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고 밝혔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어 "이제 신의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결과가 오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청바지에 재킷 차림으로 45분가량 기자회견을 하면서 중환자답지 않게 환한 웃음과 쾌활한 태도로 유머를 섞어가며 담담하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은 보도했다. 지난 3일 MRI 검사 후 뇌로 종양이 전이된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카터 전 대통령은 "그날 밤 '이제 살 날이 몇 주밖에 안 남았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아주 편안하게 느껴졌다"고 전했다.
이어 "나는 멋진 삶을 살았고, 수천 명의 친구를 사귀었고, 즐겁고 기쁜 생활을 누렸다. 놀랍게도 난 아내보다 훨씬 더 편안하다"라고 덧붙였다. 살면서 가장 후회된 일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대통령 재임 시절 이란의 미국 인질 구출작전에 실패한 것을 꼽으면서 "헬리콥터 한 대를 더 보내고 싶었다. 그랬다면 우리는 인질을 구하고 나도 재선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농담했다. 그는 "4년의 임기를 더 맡는 것과 카터센터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난 카터센터를 골랐을 것"이라며 퇴임 후 인도주의 활동에 자부심을 보였다. 그럼에도 치료를 위해 "후원자들에게 전화를 걸고 편지에 서명하는 일 외에 카터센터 활동도 크게 줄이겠다"고 전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미국의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1999년 발간한 책 '나이 드는 것의 미덕'에서 남긴 말이다. 가장 성공한 전직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그의 인생의 지혜가 닮긴 말이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현직 시절에는 인기가 없었다. 실업, 물가 상승 등 경제문제와 이란 미 대사관 인질구출작전 실패 등으로 무능한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썼다. 결국 재임 기간 중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그는 재선에 실패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위기 순간에도 자신의 인생관처럼 후회보단 꿈을 키웠다. 퇴임 후 카터재단을 설립해 국제분쟁 조정, 인권 개선을 위해 힘을 썼다. 1994년에는 미국 전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해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하며 평화 외교에 기여하기도 했다. 2002년 퇴임 후 21년간 세계 평화와 인권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현직에서 실패했던 그는 이제 가장 훌륭한 전직 대통령으로 꼽힌다.
카터 전 대통령은 또 회고록에서 정치인으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도 적었다. 조지아주 농촌지역에서 보낸 젊은 시절, 대학 졸업 후 해군에 입대해 원자력잠수함 개발에 참여했던 일, 가업인 땅콩농장을 성공적으로 경영한 일,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을 벌였던 일, 조지아 주지사와 대통령으로서의 삶 등에 대해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자서전에서 본인의 퇴직과 노년기 경험을 생생한 사례로 들면서 예의 '나이 드는 것의 미덕'을 언급했다. 대통령 선거 패배로 인해 쉰 여섯에 '비자발적 은퇴'를 하게 된 카터는 백악관을 떠나기도 전에 벌써 부인 로잘린과 함께 전미은퇴자협회로부터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이에 카터는 스스로 노인이라고 인정하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고 생각했으나 고향 플레인스로 돌아가 생활하면서 달라진 자신의 지위와 분명한 나이를 깨닫게 된다. 그러면서 "도대체 남은 25년간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한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 온 은퇴. 카터와 로잘린은 대학 강의와 회고록 저술 등에 새로운 도전을 하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건강하고 활기차게 50대·60대를 보낸다. 그러나 그들도 70대에 들어서면서 어쩔 수 없이 또 다른 위기인 노년과 마주치게 되고 '노인'이란 새로운 존재로의 전환을 맞게 된다. 이에 따라 카터는 노년기에 직면하는 신체적인 건강의 변화, 가족 관계, 여가 생활, 성(性), 죽음, 새롭게 시도할만한 일들, 자원봉사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한 나라의 가장 영예로운 위치에 올랐다는 점, 많은 혜택과 의무를 수반하는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본인과 아내 로잘린이 특별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카터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노년, 그 길의 미덕을 찾는 일을 잊지 않는다. 카터는 노년의 미덕으로 "특별한 은혜"와 "존경할만한 품성" 두 가지를 정의내리고 있다. 우리가 나이 들면서 받게 될 축복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지미 카터(90) 전 대통령은 암투병에도 불구하고 평소대로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애틀랜타저널(AJC)에 따르면 카터 대통령은 암투병 발표 4일만인 16일 오전 10시 고향 플레인스에 위치한 마라나타침례교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20년 이상 매주 이 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다. 또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며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왔다. 그의 주일학교 수업은 지역 어린이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 참석하는 ‘지역 명물’이 됐다. 많은 주민들은 에모리대에서 암투병 중인 카터가 주일학교와 주일예배에 참석할 수 있을지 우려했다. 그러나 이날 아침 카터는 한손에 낡은 성경을 들고 평소대로 교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부인 로살린 여사와 함께 참석한 그는 “반갑다”며 30여명의 교인들과 친근하게 인사한 후 평소대로 예배를 봤다. 카터는 앞서 주일학교 수업에도 교사가 아닌 학생으로서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