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후반 부부가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다. 8개월에 걸쳐 러시아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을 누볐다. 오토바이 한 대로 총 41개국을 훑었다. 강병희(58)·이병자(56) 부부를 인천의 자전거 공장에서 만났다. 부부가 평생을 매달려 일궈온 회사다. 자전거를 수입하던 회사는 어느덧 직원 10명에 자체 브랜드를 판매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부부는 그간 딸과 쌍둥이 아들을 키웠고, 시집간 맏딸은 손자를 안겼다. 결혼 30년째 되던 2012년, 남편은 사업을 돕던 아들에게 회사를 갑자기 물려줬다. 그다음엔 배기량 800㏄짜리 근사한 독일제 오토바이를 샀다. 그러고선 "엄마와 이걸 타고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자식들에게 통보했다.부부는 2008년 한 달간 자전거를 갖고 스페인 산티아고를 여행한 적이 있지만, 자녀는 아버지의 선언을 믿지 않았다. 아들 강민수(29)씨는 "오토바이 타고 국내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장기간 해외를 누비는 여행이어서 놀랐다"며 "당연히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할 거라 봤다"고 했다. 작년 초 어머니가 "아버지와 여행가겠다"고 했을 때, 세 자식은 걱정으로 다 같이 울었다고 했다. 이씨는 "남편은 평소 세계여행을 함께 가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며 "30년 넘게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일하면서 어디든 같이 가던 습관이 배어 여행에도 따라나섰다"고 했다. 준비는 남편이 도맡았다. 코스를 짜고, 여행용 GPS와 아내를 위한 헬멧을 샀다. 짐은 최소한으로 꾸렸다. 침낭 두 개와 간단한 옷가지, 코펠과 버너 등 40㎏만 가방에 담았다.
지난해 6월, 부부는 속초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자루비노로 가는 배에 오토바이를 싣고 장정(長征)에 올랐다.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지르고 몽골을 거쳐 유럽을 돌았다. 철저하게 현지 음식을 고집했고, 캠핑장과 호스텔을 찾아 잠을 청하며 여름과 가을을 났다.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편안한 호텔에서 자고 싶죠." 아내는 "그래도 자식들이 힘들게 일하는데 흥청망청 쓸 순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입장료 받는 박물관에 들어가지도 못한 건 아쉽다"고 했다. 그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주변만 돌았지만, 영국 대영박물관은 공짜라서 들어갔다"며 웃었다. '짠물' 부부는 한 달 경비로 150만~200만원만 썼다. 부부는 가장 좋았던 장소로 풍경이 아름다운 스코틀랜드 해안 길을, 나빴던 장소론 비포장도로투성이인 알바니아를 꼽았다. 좋고 나쁜 기억 모두 길 위에서 이뤄졌다. 8개월 달린 오토바이 계기판엔 4만5000㎞가 찍혔다. 지구 한 바퀴가 넘는다. 하루에 보통 200~300㎞를 달렸다. 뒷자리에 앉은 아내는 하루 6~7시간 동안 남편 등을 봤다. 이씨는 "남편 뒷모습은 참 든든했다"고 말했다. 여행하며 한 번도 큰소리 내며 싸우지 않았다고 한다. 남편은 그 까닭을 '대화'에서 찾았다. "아무리 평생을 산 부부도 대화 없이 서로 맘을 읽는다는 건 불가능해요. 여행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얘기하며 속을 터놓았죠." 헬멧에 장착된 블루투스 무전기로 "괜찮지?" "왼쪽 좀 봐, 멋있지" 같은 이야기를 쉼 없이 해댔고, 같은 음악을 들었다. 6월에 시작한 여행은 11월 런던에서 아내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멈췄다. 아내 먼저 한국에 보낸 남편은 계획대로 유럽을 마저 돌고 아프리카까지 가려 했지만, 12월에 귀국했다. "한 달 지나니까 죽겠더라고요, 외로워서. 중도 포기했습니다." 부부는 지난 3월 다시 여행을 떠났다. 두 달간 발칸반도 국가들을 일주하고 터키에서 여행을 끝냈다.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들은 새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는 북미·남미 대륙과 아프리카 일주다. 내년 가을 출발하겠다고 한다. "이제는 다릿심이 달려서 오토바이 여행은 못 하겠다"는 아내의 하소연에 남편은 캠핑카를 사기로 했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