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께선 어느 책에서나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최인호)
“죽음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거늘, 육신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소유물이 소멸된다는 생각 때문에 편안히 눈을 못 감는 것이지요. 육신은 내가 잠시 걸친 옷일 뿐인걸요.”(법정 스님)
3월 11일 법정 스님(1932∼2010)의 입적 5주기를 앞두고 고(故) 최인호 작가(1945∼2013)와의 산방 대담을 담은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여백·사진)가 24일 출간됐다. 2003년 4월 길상사 요사채에서 4시간 동안 나눈 대담이다. 책에는 2004년 출간된 ‘대화’(샘터)에 수록된 대담과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에 실렸던 법정 스님 관련 글이 수록됐다. 최 작가는 생전 암 투병 중에도 법정 스님의 입적 3주기에 맞춰 2013년 이 책을 출간하려 했지만 소설 작업과 병세 악화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해 9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출판사에 스님이 입적한 날(3월 11일)을 전후해 책을 내 달라고 유지를 남겼다. 책 제목과 구성도 작가가 직접 정했다. 두 사람은 행복, 사랑, 고독, 죽음, 진리, 시대정신 등 11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남은 생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눈길이 간다.
“저는 정면 승부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다시 태어나도, 지금 이 생에서도 끝까지 창작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고요.”(최인호)
“내게도 꿈이 있지요. 얼마가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남은 삶을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고 싶군요. 그리고 추하지 않게 그 삶을 마감하고 싶습니다.”(법정 스님)
두 사람 모두 말을 행동으로 옮겼기에 지금도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는 서로의 인연도 소개한다. 1980년대 초반 잡지 ‘샘터’에 각자 ‘산방한담(山房閑談)’과 연작소설 ‘가족’을 연재하던 두 사람은 우연히 잡지사에서 마주쳤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다 법정 스님이 “앞으로 무슨 소설을 쓰겠느냐”고 묻자, 최인호는 “불교에 관한 소설을 쓰고 싶다”고 답했다. 최인호는 “쓰고 싶어 하면 언젠가는 쓰게 되겠지요. 말과 행동이 업이 되어서 결과를 이루게 됩니다”란 스님의 격려를 화두로 가지고 불교소설 ‘길 없는 길’을 완성했다. 이들은 첫 만남 이후 30년 가까이 열 번 남짓 만나면서 서로 격려하고 응원했다. 최인호는 “법정 스님과의 인연은 전생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숙세(宿世)의 것임을 깨달았다. 법정 스님과 나는 둘이 아니다. 너도 아니고 나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다”라고 썼다.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