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지난해 유전자 검사 결과 유방암 가능성을 조기에 발견해 절제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에서 유전자 검사가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다.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앞다퉈 운명을 관찰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 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유전자 검사 결과는 ‘당신의 암 발병 가능성은 평균보다 1.46배 높습니다’라는 식으로 활용된다고 한다. 당사자의 타액이나 구강 점액을 채취해 분석 서비스 회사로 보내면 바로 결과가 나오는데 심장질환 고혈압 등 각종 질병의 위험 가능성을 알려줘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10년 전부터 유전자 검사를 주요 사업으로 해온 도쿄 시부야의 '제네시스헬스케어' 회사는 지금까지 35만명 이상이 유전자 검사를 신청했는데, 최근 1년새 고객이 급증하여 요즘은 매일 검사용 가방이 산처럼 쌓인다고 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유전자 검사와 분석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기업이 3년 전에 비해 약 2배 늘었고 올해 들어 새롭게 진입하는 IT 기업도 늘어났다고 한다. 산업계에서는 유전자 검사 기반의 의료 서비스 시장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많이 나온 바, 식이요법과 운동, 유전자 검사 등을 접목한 광범위한 건강, 생활 관리 분야가 좋은 사업 기회가 될 것이란 얘기다. 이에 편승하여 소니와 도시바 등의 전기, 전자 전문 업체들조차 유전자 데이터 관리와 분석 장비 개발 시장에 진출하는 걸 검토 중이라고 한다.
유전자 검사 열풍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있는데 아직 유전자 검사 개발을 완전히 믿기 어렵다는 이유다특정 질병의 발병 확률을 확신하기 어렵고 생활환경 등 다른 여러 가지 조건을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게 부정적인 논리지만 지금까지는 범죄수사나 친자관계 확인 등에만 한정적으로 사용돼온 유전자 검사가 폭넓게 활용되고 있는 것만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인 듯.
한국의 실정
유전자검사는 크게 진단적 검사와 질병예측성 검사로 나눌 수 있다. 진단적 유전자검사는 질병 진단을 위한 검사로 안젤리나 졸리 사례나 산전 기형아 검사(NIPT)와 같이 유전성 질환이나 가족력이 확인된 고위험군에 속하는 사람 등을 대상으로 한다. 반면 질병예측성 검사는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질병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검사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진단적 검사와 예측성 검사를 분리한 규제가 필요한 실정인데 한국에서 유전체검사를 포함한 모든 신규 검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검사장비의 의료기기 허가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신의료기술평가 승인,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급여·비급여 판정이 있어야 한다. 모 유전자 업체 사장은 "유전체 분석기술의 발전이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는 점을 인식하고, 식약처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으로 이원화돼 있는 인허가 사항을 단일화해 인허가 기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식약처와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안정성 및 유효성 검사는 중복 업무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임상적 유효성이 검증된 진단적 유전체검사(임상유전체검사)도 시행할 수 없다. 이 검사에 대한 관련 장비 및 시약이 식약처에서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체검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미국의 경우 식약처 허가가 없어도 검사실자체개발검사(LDT)를 허용하고 있다. 또 검사실 인증 규정인 'CLIA'를 통해 무분별한 검사를 제한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유전체정보를 예방과 진단에 적극 활용하려 하고 있다. 영국은 앞으로 태어나는 모든 신생아에 대해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검토 중이다. 또 '10만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2017년까지 10만명의 암 및 유전질환들의 혈액 샘플을 채취, 유전 정보를 분석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계 유전체 데이터의 2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중국 BGI(Beijing Genomics Institute)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성장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 7월 BGI의 산전 기형아 검사를 의료기기 허가 없이 신의료기술로만 승인하고 허가해, 유전체 분석 산업 성장에 발빠르게 대응 중이다.
질병예측성 검사인 개인유전체분석 서비스의 경우 개인 정보 서비스 측면에서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조은영 디엔에이링크 이사는 "현재 모든 유전체검사 관련 규제는 질병 진단과 관련돼 적용된다"며 "한국은 예측성 검사에도 의료기관의 의뢰가 필요하지만 이는 해외 대부분의 국가에는 없는 항목"이라고 했다. 또 해외 상품의 국내 영업에는 규제가 없어 역차별적 요소가 존재한다고도 지적했다. 박창원 마크로젠 수석 연구원은 "예측성 검사를 의료행위로 간주하면 국내 관련 산업은 발전하기 힘들다"며 "규제가 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기술의 발전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합리적 규제 확립이 빨리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기업이 질병예측성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질병관리본부에 검사하고자 하는 유전자 항목을 신고해야 한다. 법에는 신고라고 돼 있지만 사실상 평가 후 등록제로 운영되고 있고, 평가 기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또 질병관리본부 산하 한국유전자검사평가원은 질병관리본부에 등록된 유전자 항목에 대한 유효성평가를 시행하는 데 평가기준이 달라 각각 다른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연구를 계량적으로 종합한 '메타(Meta)분석'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유전자검사평가원은 메타분석을 선호하고 있다고 한 업체는 전했다. 김은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우리보다 앞서 유전체 의학을 위한 토양을 마련해온 선진국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빠른 시간 안에 대량의 유전체 정보를 체계적으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노력이 시급하다"며 "또 유전체 정보의 수집 분석 활용을 위한 표준 마련도 중요하다"고 했다. 미국 일본 중국 등을 포함한 18개국은 2013년 시작된 '글로벌 유전체 데이터 공유 연합'을 통해 세계 표준 마련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 컨소시엄에 한국은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