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가득한 아이들의 눈… 르완다의 희망을 봤죠"
"어때, 소리가 몸을 통해 느껴지지?"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6)가 16세 르완다 소년 새뮤얼 은셍기마나의 손에 바이올린 활을 쥐여주며 말했다. "낑, 끼깅…." 소년이 조심스레 활을 켜며 소리를 만들어내자 정경화는 아이처럼 팔짝팔짝 뛰었다. "그래. 그거야. 조금만 더 하면 오케스트라 해도 되겠다. 내가 내는 소리를 잘 들어봐. 금방 따라올 수 있을 거야." 흙으로 벽 쌓고 나뭇가지로 지붕 얽은 낡고 침침한 집을 '연주홀' 삼아 정경화가 바이올린을 켰다.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크라이슬러의 '사랑의 기쁨'. 거장(巨匠)의 선율이 담벼락을 타고 마을에 울려 퍼졌다.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동네 꼬마와 아낙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지난 25일 르완다 수도 키갈리에서 차로 세 시간을 달려야 닿는 산골마을 무다솜와의 주민들은 이렇게 처음으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와 만났다.
1999년부터 15년간 국제구호 NGO인 '월드비전'을 통해 다달이 르완다 어린이·청소년 3명을 후원해온 정경화는 이날 사진으로만 봐온 아이들과 처음 만났다. 1994년 발생한 르완다 인종 대학살 20주기와 세계 평화의 날(9월 21일)을 맞아 월드비전 관계자들과 함께 르완다를 찾은 것이다. 정경화는 지난 6월 서울에서도 르완다 어린이 돕기 음악회를 열었다. "남의 나라 같지가 않아요. 내가 두 살 때 6·25전쟁이 터져서 가족이 피란길에 올랐고, 그 와중에 가족이 죽기도 했죠. 전쟁이 얼마나 끔찍한 건지 잘 알거든. 르완다 내전 소식을 듣고 가슴이 미어졌어요. 그래도 희망은 있어요. 이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세요."
정경화는 아이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한국에서 축구공과 운동복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왔다. 그는 "아들 둘을 키워봐서 사내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안다"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공기주입기로 축구공에 바람을 넣었다.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나서 헤딩을 하고 드리블을 했다. 그동안 마을 아이들은 축구공이 없어 바나나잎과 잡풀을 뭉치고 얽어서 축구공 대신 차고 다녔다.
르완다는 1994년 4월 부족 간 갈등으로 촉발된 내전으로 석 달 만에 1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마을도 20년 전 대학살의 광풍(狂風)을 피해가진 못했다. 지금도 당시 상황을 물어보면 주민들 표정에선 웃음기가 사라진다. 이곳에서 마을 재건 사업과 치유·화해 프로그램을 펴온 월드비전은 "20년 전 대학살을 똑똑히 지켜본 어린이·청소년들이 부모 세대가 됐지만 당시 충격으로 정상적인 부모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꿈을 키워간다. 새뮤얼은 의사가 돼 병든 이웃들을 치료하고 싶어하고, 13세 소년 조셉은 영어 교사를 꿈꾼다. 정경화는 아이들을 꼭 안아주고 뺨을 비비면서 말했다. "한국도 전쟁이 끝난 뒤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단다. 너희 눈 속에도 미래의 꿈이 보여. 예쁘게 다듬으면 언젠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날 거야."
뉘엿뉘엿 해가 기울 무렵, 정경화는 아이들과 손잡고 마을회관 옆 공터로 가서 주민 100여명 앞에서 즉석 연주회를 열었다. 클래식 레퍼토리 몇 개를 짧게 선보인 뒤 르완다의 국민 애창곡인 '나만탕가라'를 연주했다. 전주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휘둥그렇게 눈을 뜨더니 선율에 맞춰 우렁차게 노래를 불렀다. 정경화는 "이 나라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한 곡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냐"며 미리 악보를 구하고 동영상도 보며 넉 달간 연습했다. 정경화는 다음 날 키갈리 호텔에서 열린 주(駐)르완다 한국대사관 초청 무료 콘서트에서도 같은 곡을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그는 "내가 예전엔 완벽주의자였고, 자신만만한 게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행복이란 게 뭔지 알아가고 있다"며 "앞으로 이 나라에 자주 오게 될 것 같다"고 했다.[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