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대사를 치르는 특별한 분야인 상조업계에서 그 동안 금기시 되어 왔던 노조가 구성되었고 이로 인해 노사가 본격 대립하는 양상이 최초로 공개적으로 노출되어 귀추가 주목된다. 경향신문 보도에 의하면 재향군인회 산하단체인 ‘재향군인회 상조회’가 사설 업체를 고용해 노동조합을 감시하고 미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향군상조회는 25만명의 회원을 보유한 업계 3위의 장례업체다. 향군상조회 노조는 9일 사측이 지난달 6일부터 10일까지 사설 경비업체 직원들을 동원해 노조가 파업 중인 서울 녹번동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감시한 것을 동영상 등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비업체 직원들은 노조원들이 사측에 대한 반대 집회를 하러 이동할 때 뒤를 밟아 동선을 파악하기도 했다. 노조 측은 ‘어떤 업체가 사측에 노조 관련 영상을 틀어주는 걸 봤다’는 사내 제보를 듣고 이 같은 정황을 파악했다. 노조는 활동지역 인근에 자주 나타나는 의문의 남성들을 확인했고, 이들을 촬영해 불법 감시의 증거를 확보했다. 이날 노조가 공개한 영상을 보면 경비업체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들이 노조원들이 움직이면 차량으로 쫓아온 뒤 소형캠코더로 몰래 촬영을 했다. 집회를 벌일 때는 인근 건물이나 가로수에 몸을 숨긴 채 감시를 했고, 때론 옷을 바꿔 입어가며 노조원의 뒤를 밟았다. 7명이 차량 2대를 이용해 이 같은 활동을 벌였다. 노조는 사측의 이 같은 감시 활동이 그 이전부터 오랫동안 진행돼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향군상조회에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건 지난해부터 시작된 노사갈등이 발단이다. 회사 측은 지난해 5월 의전 분야의 아웃소싱을 선언한 뒤 44명의 의전팀장(장례지도사)들에게 “아웃소싱 업체로 가지 않는다면 영업부로 발령내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직원들은 반발했고, 이는 노조 설립으로 이어졌다.향군상조회 노사갈등의 핵심 원인은 고용 체계다. 향군상조회 직원들은 그간 정규직이라 해도 계약직처럼 매년 고용계약서를 갱신해야 했다. 노조는 ‘최소한의 고용안정’을 위해서는 매년 고용계약서를 갱신하는 관행이 없어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노사는 10차까지 단체교섭을 벌였지만 결렬됐고 노조는 지난 4월 파업을 시작했다. 파업 중에 사측의 미행 사실이 밝혀지자 노조는 크게 반발했다. 최윤구 노조 투쟁부장은 “헌법에 보장된 노조활동인데, 이를 봉쇄하기 위해 돈 들여 감시까지 하다니 황당하다”고 말했다.
사측은 사설 업체를 동원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이는 노조의 불법시위 때문이라고 말했다. 향군상조회 백종선 본부장은 “노조 측에서 파업 뒤 정당한 시위를 했다면 사설 경비업체를 고용할 필요는 없었다”면서 “노조원들은 회사가 영업하고 있는 장례식장을 찾아 다니며 확성기를 틀어놓고 영업을 방해했다. 이들이 어느 곳을 찾아가는지 알아보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노조가 지난 5월 중순 이후에는 시위를 자제했는데 사측은 6월에도 아침부터 밤까지 과도한 감시를 벌였다”며 “노조에 발각되자 경비업체 직원들이 철수한 것은 회사도 문제의 소지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노조는 10일 서울지방노동청 동부지청에 사측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신고하고 미행 활동을 촬영한 자료도 함께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