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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우리 문화 원류(源流)를 지키는 사람- 전통상례 전문가 김시덕 박사

경북 봉화에 權憲祖라는 분이 계셨다. 1994년인가, 이 분은 모시고 살던 부친이 돌아가시자 정성스레 삼년상을 치렀다. 그 과정을 담은 기록이 그 무렵 어떤 방송을 탔다. 그리고 2011년, 이 분이 돌아가셨다. 그 아들이 다시 이 분의 삼년상을 또 정성스레 치렀다. 우리들의 옛 선조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게 그들과의 영원한 단절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喪禮, 즉 의례와 격식을 갖춰 장사를 지내면 부모들이 그들 곁에 ‘조상神’으로 다시 돌아와 그들을 지켜주고 집안을 돌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믿음의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의 전통 喪禮는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김시덕 박사(51)는 이런 우리의 전통 상례를 분석하고 연구해 집대성한 독보적인 존재다. 20여 년에 걸친 다양한 현장경험과 답사를 통해 우리의 전통 상례를 한국 의례문화의 대표적인 전통으로 매김 했다. 상례란 무엇인가에 대한 김 박사의 대답은 간단명료하다. “죽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의례로서 사람이 태어나 마지막으로 통과하는 관문이 죽음이고, 이에 따르는 의례가 상례”라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죽은 사람을 땅에 묻고 28개월 만에 탈상하는 3년 동안의 의례”가 상례인데, 언뜻 간단명료하게 대답했지만 그 내용과 구조를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치 않다. “상례는 주검을 처리하는 의례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자를 위한 의례의 성격도 매우 강한 게 특징이다.”

 

말하자면 상례란 망자와 산자가 함께 공유하는 의례라는 것으로, 그 구조와 내용은 이 둘을 합친 만큼 현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복잡다단하다. 전통상례 연구해 집대성한 독보적 존재 우리의 전통 상례는 제사 등 한국인의 일생 의례가 유교식으로 정형화돼 있는 만큼 유교를 바탕으로 한다. 유교식 의례문화는 이미 고대사회에서부터 있어왔고, 고려를 거쳐 조선에 와서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사이 사이에 불교식 의례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유교식이 그 근간을 이뤘다는 게 김 박사의 설명이다. “조선이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삼으면서 조선 중후기가 되자 유교식 의례는 조선을 지배하는 의례문화로 보편화되고 그것이 의례의 문화전통으로 자리 잡아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지요.”

 

조선시대 유교식 상례는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유교가 상류층의 전유물이 아니었듯 유교식 의례 역시 계층을 막론하고 보편화된 것이 일반 계층에 문화적 전통으로 자리 잡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우리의 전통 상례는 중국 송나라 朱熹(1130~1200), 즉 朱子의 ‘家禮’가 의례의 바탕이고 규범이다. 이것을 현실에 맞게 계승, 발전시켜 편람한 게 조선조 후기에 발간된 『사례편람』으로, 말하자면 우리 전통 상례의 텍스트인 셈이다. 김 박사는 이 책들과 현장 답사 등을 통해 전통 상례에 대한 연구와 그 의미의 폭을 넓혔다. 김 박사는 2011년 연말에 세 권의 책을 냈다.

안동의 의성김씨 鶴峰종택 14대 종손인 소운 김시인과 경남 김해의 유림 원로인 화재 이우섭의 삼년상 보고서를 담은 책이 그 두 권이고, 한 권은 2009년 선종한 김 수환 추기경의 장례 전 과정을 담은 책이다. 당시 그는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이 책들은 국립민속박물관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이를 위해 장례 현장에서 살아야했다. 상주들과 함께 의례에 참석하면서 모든 과정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사례편람』에 따른 우리 전통 상례는 모두 19개 과정을 거치도록 돼 있다. 김 박사는 『사례편람』과 앞에 언급한 두 집안의 상례를 바탕으로 그 절차를 설명했다.

 

1. 初終儀: 최초 절차로서 죽음 준비하고 죽음을 확인하며 상례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준비하는 등

   의 ‘죽음을 처리하는 의례’이다.

   임종, 復, 始死奠, 楔齒綴足, 역할분담, 袒, 治棺 등의 소절차들이 행해진다.

2. 襲: 1일 째 시신을 씻겨 옷을 입히는 절차로, 목욕, 습, 襲奠, 飯含, 設靈座, 立銘旌이 행해진

   다.

3. 小殮: 2일 째 행하는데, 시신을 베로 싸는 절차로 소렴전, 袒括髮 등이 소절차다.

4. 大殮: 소렴한 시신을 베로 싸서 입관하는 절차로 이 때 殯을 하기도 한다. 습, 소렴과 함께 염

   습이라 통칭한다.

5. 成服: 4일 째, 상주와 복인들이 상복으로 갈아입고 정식으로 상주와 복인의 역할을 수행하는

   통과의례다.

6. 弔: 문상으로, 성복 다음에 위치시킨 것은 대렴을 하고 성복을 해야 행할 수 있다는 의미다.

7. 聞喪: 보고를 들었을 때 행하는 것으로, 그 행위와 해야하는 일, 그리고 성복하는 일시 등에 관

   한 절차다.

8. 治葬: 장사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 필요한 도구를 제작하는 등 장사지낼 준비를 하는 절차이

   다.

9. 遷柩: 발인 하루 전날, 영구를 옮길 것을 고하고 사당에 인사시킨 후 상여에 싣고 遣奠을 올리

   는 절차까지를 말하는데,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

10. 發靷: 상여가 장지로 가는 행렬인 행상을 위해 출발하는 것을 말한다. 행상을 하는 도중에 친

   지나 친구의 집 앞을 지날 때 노제를 지낸다.

11. 及墓: 영구가 장지에 도착해 하는 일로서 장사를 지내는 일이다. 시신을 매장하고 신주를 모

   시는 경우 신주에 글씨를 쓰는 題主를 하고, 제주를 마치면 신주가 완성됐음을 확인하고 알리

   는 題主奠을 올리는 절차가 이어진다.

12. 反哭: 신주를 모실 경우 제주한 신주를 영여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이 때 신주를 앞에 모시고 그 뒤에 魂帛을 모시고 있어 행상 때와는 반대임을 알 수 있다.

13. 虞祭: 시신을 보내고 영혼을 맞이해 편안히 한다는 의미의 제사로, 세 번 지낸다.

     상중에 처음으로 지내는 제사로 오례 중 凶祭에 속한다.

14.卒哭: 말 그대로 곡을 그쳐 슬픔의 강도를 약하게 하는 의례다. 졸곡제를 지내는 시기에 대해

   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달을 넘기는 踰月葬을 했을 경우에는 삼우제 다음 날에 지내지만, 유

   월장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3개월 후에 지낸다.

15.祔祭: 고인의 신주를 사당에 모신 조상과 함께 모시도록 고하는 절차이다. 졸곡 다음 날, 혹은

   3개월 후에 지낸다.

16. 小喪: 기년을 맞아 고인을 추모하는 제사로 운명 후 13개월이 되는 날이다. 소상 때는 練服으

    로 易服한다. 남자들은 수질을 떼어내고, 여자들은 요질을 떼어낸다.

17. 大喪: 운명 후 두 돌 만에 지내는 제사다. 초상으로부터 대상까지 윤달을 계산하지 않으면 25

    개월이 된다. 햇수로는 3년이기 때문에 3년상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18.禫祭: 평상의 상태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제사이다. 날짜를 따지면 27개월 째에 해당한다.

    탈상 후 차마 바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한 시절을 더 기다린다는 뜻으로 지내는

    제다.

19. 吉祭: 신주를 모시는 경우에 행하는 상례의 마지막 절차로 ‘가례’에는 규정돼있지 않은 절차

     다. 신주의 代를 바꾸고 집을 계승할 주손이 바뀌었음을 공포하는 제사다.

 

상례의 위 절차는 『사례편람』의 규정으로 행해지는 것이다. 김 박사는 그러나 집안에서 내려오는 가풍과 전통에 따라 그 내용과 절차가 조금 다르게 진행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는 학봉종택과 김해 유림 원로의 삼년상도 그 내용과 의미의 바탕은 같지만 절차와 방식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게 진행된 것을 지켜봤다. 학봉종택의 삼년상은 3년에 걸쳐 유교식 상례 19개 절차를 소홀함 없이 치르면서도 의성김씨 학봉종택의 고유한 전통과 관습을 따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매장 후 신주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오는 반곡 행렬을 여자 상주들과 주부들이 대문 밖에 나가 맞이하고, 길제의 아헌관인 주부가 혼례복인 활옷을 입고 의례를 행함으로써 고인에 이어 새로운 종손 탄생을 알리는 의식 등이 그것이다.

 

좋은 날을 받아 하는 의례를 후손들이 참석하기 좋게 공휴일에 하는 등으로 현대 생활에 맞게 융통적인 것도 학봉종택 삼년상의 특색이다. 삼년상, 융통적이거나 교과서적이거나 이에 비해 전주이씨 집안의 이우섭 삼년상은 철저히 교과서적으로 치러졌다고 한다. 유학의 대가였던 고인을 기려 儒林葬을 하면서, 『사례편람』과 『제례홀기』를 옆에 두고 일일이 확인해서 진행했다.

 

화려한 꽃상여 대신 하얀 상여를 쓴 것도 전통보다 예법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김해 이우섭 어른 집안의 경우, 전해오는 예법에 따라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전통을 새로이 세우는 스타일이었고, 학봉종택은 지금까지 지켜온 집안의 전통을 지속시켜가는 스타일이었다”고 양가의 상례를 비교한다. “책의 규범상으로 보면 아무래도 학봉종택이 외형상 좀 허술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집안의 전통이 들어있다. 규범을 꼭 그대로 지킨 이우섭 집안의 경우에는 그런 게 없다. 그러나 형식과 절차가 어떻든 상례가 담고 있는 내용과 의미는 완벽한 것이었다.” 그는 한국의 전통 상례가 집안 어르신의 죽음이라는 갑작스런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충격완화라는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절차로 구성돼 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죽음에 대한 뭔가 아쉬운 듯한 ‘餘韻’이라는 원리로 구성된다는 설명이다.

 

 

전통 상례에는 절차를 세 번 행하는 ‘3’이라는 개념이 주류를 이룬다. 고인의 죽음 후 행하는 초혼의례의 경우, 고인이 체취가 묻어있는 웃옷을 들고 지붕에 올라가 북쪽을 향해 옷을 흔들며 고인의 이름이나 호칭을 부르면서 “돌아오시오”라는 뜻으로 “복, 복, 복”하고 세 번 외친다든가, 시신을 매장하고 신주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지내는 우제를 3~5일에 걸쳐 세 번 지내는 게 그렇다. 또 시신을 처리하기 위해 행하는 습, 소렴, 대렴도 고인이 운명한 날부터 시작해 3일에 걸쳐 3번으로 나누어 행한다. 상주가 상복을 정식으로 입는 성복도 고인 사망 3일 후에 행한다. 이처럼 3회의 초혼, 3일에 걸친 시신처리 준비, 3일 후의 상주, 삼우제를 통한 조상신 승화 등 모든 게 이러한 3단계, 3일의 개념에 연관돼 있다.

 

김 박사는 이에 대해 “3일, 3단계의 여운으로 이러한 3과 관련된 의례과정을 거침으로써 상황이 가져오는 충격을 최소화하고 있는데, 여기에 여운의 원리가 작용한다”라고 말한다. “우리 관습에 모든 일은 세 번을 해 정확하고 결정적으로 일을 한다는 의미로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런 3일, 3단계의 개념을 통해 망자의 영혼이 확실히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 박사는 원래가 이런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보인다. 우선 태생지 자체가 경북 안동인 것이 그렇다.

 

 

어릴 때부터 늘 보고 배우는 게 제사고, 어른들에 대한 인사, 그리고 족보와 집안내력 등 가문들의 예와 격식을 보고 대하며 자랐다. 이 게 바탕이 돼 대학에서 전공으로 삼은 게 민속학이다. 달리 딴 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얘기다. 인류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까지 학부를 마치고 대학원에서 석사를 할 때까지는 안동김씨 등 그 쪽 지방의 문중을 연구테마로 삼았다. 여러 문중의 내력과 가족, 친족분야 연구를 위해 수많은 현장답사와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의례가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가족과 친족집단의 일생의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일생의례의 핵심인 전통 상례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2007년 고려대 대학원 문화재학과에서 ‘한국 유교식 상례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박사는 박사 후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을 거쳐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학예연구관(전시운영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 박사는 우리 전통 상례의 오늘 날의 의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우리 정신문화의 고향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전통이 오늘에 이어지고 있는 것은 자기 DNA의 원류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장례문화가 아무리 간소화, 간략화되고 있지만, 그 자체의 의미는 그대로 담겨져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 날 전통 상례가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전통이라는 것은 개인의 DNA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바뀌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해하고 있다. 다만 여러 현실을 감안해 장소와 절차 등 외형적인 것은 변하고 있지만, 그 내부적인 본바탕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 문화적 전통을 오늘에까지 이어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킨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 박사는 그 일을 꾸준히, 그리고 열심히 계속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전통 상례가 인류 유산의 하나로, 문화인류학적 차원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료임을 강조한다. 해서 전통 상례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기를 바라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명망 있는 문중들에서 한 두 사람 정도를 인간문화재 형태로 지정해 전통을 지켜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했다. 요즘 장례의 대표적인 방식으로 자리잡아 가는 상조회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부정적으로 볼 것이라는 선입관이 있었는데 뜻밖의 대답을 한다.

 

자신은 적극적으로 상조회사를 지원하고 장려하는 입장이란다. 이유는 장례를 치르기에 마땅치 않은 여러 현실적인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통사회에서는 이름 있는 집안에는 하인이 있어 일할 사람이 많았고, 마을 공동체로 살았기 때문에 주변 이웃이 많아 상사가 나면 품앗이로 일을 치를 수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관점에서 자본주의 논리로써 재화를 주고 인력과 장비를 살 수 있는 곳이 바로 상조회사인 셈이다.” 김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문제점도 의식하고 있었다. “문제점도 많다. 이를테면 바가지 등의 지나친 상업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서 김 박사는 상조회사가 상례의 원뜻을 살려 인간존중의 개념으로 자기 집안일처럼 하는 경영방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교수신문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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