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아무것도 모를것 같은 다른분야 전문가의 글이 우리 업계를 경이롭게 한다. 아래글도 그 중하나로 여겨 여기에 소개한다 -편집자 주 -------------------------------------------------------------------------- ▶제대로 이별하는 방법 ▶참석자들에게는 죄송하게도, 결혼식에 왔던 손님의 얼굴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 반대로 아버지 상(喪)에는 누가, 어떻게 왔었는지가 꽤 상세히 기억난다. 피곤을 무릅쓰고 늦은 시간 오셨던 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손님들…. 슬픔을 함께 해줬던 사람들이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건 인지상정일 듯하다. 바로 이런 마음을 아는 선조들이 "상조(相助)"라는 개념을 만들었을 것이고, 이 상조 정신이 시스템화된 것이 "상조업체"다. 우리나라의 상조 정신이 일본에 전해지고, 일본에서 상조회사 시스템으로 발전된 것이 1980년대 부산을 중심으로 역수입됐다. 최근 10년 사이엔 전국으로 확산됐다. 한달에 몇만원을 내고 황망(慌忙)한 일을 당했을 때 도움을 받는 방식은 꽤 합리적인 선택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인간 모두가 잠재고객인 이 사업이 "돈벌이"가 된다는 확신이 들면서 우후죽순(雨後竹筍)으로 업체가 늘어났고, 이미 적잖은 문제도 일어났다. 납입금만 떼먹고 도망간 회사, 성당에서 장례를 치러줘 환불을 요구했더니 안 된다고 버티는 회사, 현장에서 웃돈을 요구하는 회사 등. 국내 최대 상조회사 경영진이 100억대 횡령(橫領)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상조업체에 가입한 소비자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상조회사를 아예 외면하기도 어렵다. 외둥이가 늘고 친척과의 유대가 점점 희박해지는 상황에서 누군가 궂은 일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 시장은 업체 300여곳에 시장규모 6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얼마 전까지는 신고만 하면 차릴 수 있었기 때문에 "사채업자들이 들어와 있다" "조폭들이 업체를 차린 곳도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물론 장삿집의 골칫거리였던 웃돈 없이 조용히 상을 치러주는 믿고 맡길 괜찮은 회사들도 적지 않다. 정부가 진입 장벽을 높일 예정인 데다, 대기업들까지 이 시장 진입을 노리고 있다고 하니, 부실업체는 점차 퇴출되고 이 시장은 비교적 양질의 업체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좀 더 근원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상조업"을 지금처럼 시장논리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민간 비영리 조직, NPO(Non Profit Organization)의 개념을 도입, 비영리적인 공법인(公法人)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의 경우, 고객들이 선불로 낸 자금은 정부기관을 통해 위탁관리되므로 개별 업체에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돈을 떼일 염려가 없다. 좀 더 철학적인 접근법도 이제는 필요할 때가 됐다. 전직 첼리스트가 장의사(葬儀社)에 취직해 염(殮) 전문가가 되는 과정을 그린 일본 영화 "굿바이"는 망자를 떠나보내는 일본식 미학과 배려의 절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장의사" 일이 망자를 아름답게 떠나보내 줄 수도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꽃으로 빈소를 채우고, 최고급 수의를 쓰고, 생전에는 구경도 못했던 커다란 리무진에 또다시 비싼 관을 싣고 장지로 향하는 장례식에서 부족한 것은 고인을 회상하고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일일 것이다. 고인이 좋아했던 노래를 틀어두고 파티 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 우리 문화에는 맞지 않겠지만, 우리식으로 고인과 내실 있게 이별하는 방법을 연구할 때도 됐다. 규모와 비용은 줄이고 마음은 깊어지는 방법이 나와야 한다. 그게 바로 상조회사가 할 일이다. -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장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