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묻기라도 하면 다행"…존엄한 장례 꿈도 못꾸는 가자지구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에서 지상 작전에 돌입한 직후인 지난해 11월 초, 점심 식사를 준비 중이던 사바위 가족의 집 근처에 떨어진 폭격에 10살 난 카림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부모는 카림을 안고 이웃집으로 황급히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카림은 끝내 숨을 거뒀다. 이후 나흘간 시신은 그곳에서 담요에 싸인 채 놓여 있었다.
언제 포탄이 쏟아질지 모르는 집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부모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더해 제대로 된 장례도 치러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결국 카림은 이웃집 뒤편 구아바 나무 아래에 묻혔다. 아버지와 이웃 한명이 얕게 땅을 파고 시신을 놓은 뒤 흙으로 대충 덮고 뛰어 돌아와야 했다.
아버지 하젬 사바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서 흙을 더 덮어줬다"며 "모든 인간은 안장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전쟁 3개월이 된 가자지구에서 사람들은 위험한 거리로 나설 수 없어 사랑하는 가족, 친지를 장례식 없이 서둘러 묻어야 하는 처지에 몰려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10월 7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사망한 가자지구 사람은 2만2천명을 넘는다. 유엔이 "수천 명 어린이의 무덤이 되고 있다"고 표현한 대로 사망자 상당수가 어린이다.
가자지구 남부 알나스르 병원의 무함마드 아부 무사 박사는 "죽을 때 묻어줄 이가 있는 사람은 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주고받을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이스라엘 공습에 카림을 잃은 어머니 수하 사바위도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아들을 묻어줄 수 있었으니 신이 도왔다'고 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전통으로는 사람들은 사흘간 거리에 천막을 세우고 애도하며 공개적인 장례를 치른다.
그러나 전쟁으로 망자들은 집단 매장지나 병원 마당, 뒤뜰 등에 묻히고 있으며 비석 하나 없이 시신을 감싼 천 위에 이름이 적히는 경우도 많다. 장례 기도는 병원 복도나 시신 안치소 앞에서 재빨리 이뤄지거나 아예 생략된다.
가자지구 보건부가 추정하는 실종자 수는 약 7천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폭격 후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건물에는 안에 깔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이 스프레이로 쓰여 있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의 네발 파르사크는 구조대가 피격 장소에 가거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 불가능한 상황이 종종 있다고 전했다.
피란민 일부도 NYT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거리의 시신을 묻어주기는커녕 천으로 덮어주지도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군은 '작전상 이유'와 망자가 납치된 이스라엘 인질일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시신 접근을 막았다고 말했다.
네 아이의 아버지인 아흐메드 알하타브는 지난 11월 7일 한밤중에 가자시티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가 로켓 공격을 받았을 때 대가족 32명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중 어린이가 19명이었다.
알하타브는 다치지 않은 5, 9세 아들을 이웃에게 부탁하고 머리를 크게 다친 7세 아들과 구급차를 탔다.
다음날 아침 돌아온 그는 친척들과 함께 손으로 잔해를 파냈고 생후 32일 된 조카를 비롯한 네 명의 시신을 찾았다.
멀리 있는 공동묘지는 위험했기에 가까이 있는 한 가족의 묘에 이들을 모두 묻어야 했다. 그리고 나머지 24명의 시신은 잔해에서 꺼내지 못했다.
머리를 다친 아들은 공습과 교전으로 무너져 가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생존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알하타브는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피란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고, 나흘 뒤 아들이 병원에서 숨을 거둬 다른 사망한 환자들과 함께 묻혔다는 말을 친구에게서 전해 들었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에서 지상 작전에 돌입한 직후인 지난해 11월 초, 점심 식사를 준비 중이던 사바위 가족의 집 근처에 떨어진 폭격에 10살 난 카림이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부모는 카림을 안고 이웃집으로 황급히 달려가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카림은 끝내 숨을 거뒀다. 이후 나흘간 시신은 그곳에서 담요에 싸인 채 놓여 있었다.
언제 포탄이 쏟아질지 모르는 집밖으로 나갈 수 없었던 부모는 자식을 잃은 슬픔에 더해 제대로 된 장례도 치러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결국 카림은 이웃집 뒤편 구아바 나무 아래에 묻혔다. 아버지와 이웃 한명이 얕게 땅을 파고 시신을 놓은 뒤 흙으로 대충 덮고 뛰어 돌아와야 했다.
아버지 하젬 사바위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가서 흙을 더 덮어줬다"며 "모든 인간은 안장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전쟁 3개월이 된 가자지구에서 사람들은 위험한 거리로 나설 수 없어 사랑하는 가족, 친지를 장례식 없이 서둘러 묻어야 하는 처지에 몰려 있다고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10월 7일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사망한 가자지구 사람은 2만2천명을 넘는다. 유엔이 "수천 명 어린이의 무덤이 되고 있다"고 표현한 대로 사망자 상당수가 어린이다.
가자지구 남부 알나스르 병원의 무함마드 아부 무사 박사는 "죽을 때 묻어줄 이가 있는 사람은 운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주고받을 지경"이라고 한탄했다.
이스라엘 공습에 카림을 잃은 어머니 수하 사바위도 "많은 사람들이 나한테 '아들을 묻어줄 수 있었으니 신이 도왔다'고 한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전통으로는 사람들은 사흘간 거리에 천막을 세우고 애도하며 공개적인 장례를 치른다.
그러나 전쟁으로 망자들은 집단 매장지나 병원 마당, 뒤뜰 등에 묻히고 있으며 비석 하나 없이 시신을 감싼 천 위에 이름이 적히는 경우도 많다. 장례 기도는 병원 복도나 시신 안치소 앞에서 재빨리 이뤄지거나 아예 생략된다.
가자지구 보건부가 추정하는 실종자 수는 약 7천명이다. 이들은 대부분 폭격 후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건물에는 안에 깔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이 스프레이로 쓰여 있다.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의 네발 파르사크는 구조대가 피격 장소에 가거나 시신을 수습하는 일이 불가능한 상황이 종종 있다고 전했다.
피란민 일부도 NYT에 이스라엘 군인들이 거리의 시신을 묻어주기는커녕 천으로 덮어주지도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 군은 '작전상 이유'와 망자가 납치된 이스라엘 인질일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시신 접근을 막았다고 말했다.
네 아이의 아버지인 아흐메드 알하타브는 지난 11월 7일 한밤중에 가자시티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가 로켓 공격을 받았을 때 대가족 32명이 함께 있었다고 한다. 그중 어린이가 19명이었다.
알하타브는 다치지 않은 5, 9세 아들을 이웃에게 부탁하고 머리를 크게 다친 7세 아들과 구급차를 탔다.
다음날 아침 돌아온 그는 친척들과 함께 손으로 잔해를 파냈고 생후 32일 된 조카를 비롯한 네 명의 시신을 찾았다.
멀리 있는 공동묘지는 위험했기에 가까이 있는 한 가족의 묘에 이들을 모두 묻어야 했다. 그리고 나머지 24명의 시신은 잔해에서 꺼내지 못했다.
머리를 다친 아들은 공습과 교전으로 무너져 가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생존 가능성이 낮다는 얘기를 들었다.
결국 알하타브는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피란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고, 나흘 뒤 아들이 병원에서 숨을 거둬 다른 사망한 환자들과 함께 묻혔다는 말을 친구에게서 전해 들었다.
시신을 수습하던 사람들이 공격을 받아 숨지는 경우도 벌어졌다.
오스트리아에 거주하는 파티마 알라예스(35)는 11월 초 가자시티의 친정집이 공습당해 부모님을 포함한 8명이 숨졌고, 살아남은 두 남동생과 민방위대원들이 시신 수습에 노력 중이라는 사실을 남동생들과의 통화에서 알게 됐다.
첫 번째로는 시신 3구를 수습해 묻어줄 수 있었지만, 추가 수습에 나섰을 때 다시 공습이 발생해 남동생 둘과 민방위대원 여러 명이 숨지고 말았다.
알라예스는 "부모님은 오후에 묻히셨고, 동생들은 그날 밤에 같은 묘에 묻혔다"고 말했다.
그의 여동생과 조카 등 가족 5명의 시신은 여전히 건물 잔해 속에 남아 있다.
$가자지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