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은 역사적으로 매장 방식이 선호됐지만 국토 묘지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화장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곽문완 대한필름영화제작사 대표로부터 북한의 장묘문화를 들어보자.
북한에서는 사망자가 생기면 사망자나 상주 직장에 통보하고 거주지 인민반을 통해 주변에 연락하여 장례식을 거행하는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북한에는 장례식장이나 장례 전문 업체가 없기 때문에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이나 인민반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인근 병원이나 진료소에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아 동사무소와 보안서에 신고, 주민등록에 사망한 날짜를 등록하면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다.
이어서, 상주와 사망자나 상주의 직장이, 매장인지 화장인지 등 매장 방법을 협의한다.
평양은 화장, 지방은 매장이 많다. 평양에는 시민들을 위한 화장장이 국가 차원에서 건설되고 있지만, 지방은 아직 화장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략적으로 말해 북한 전체에서 매장과 화장 비율은 7 대 3에서 8 대 2다.
매장한다고 결정되면 사망자나 상주의 직장이 시신을 매장하는 장소를 조사한다.북한 사람들은 풍수적으로 좋은 곳에 묻혀야 후손들이 잘된다고 믿기 때문에 묘지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정한 공동묘지 중에서 매장 장소를 골라야 한다.
매장을 위한 산이나 임야를 개인이 소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돈 없는 사람은 뒷산에 묻는다
북한에는 시신을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장례식장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시신 처리는 죽은 사람이나 상주의 직장에 노하우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진행하고, 그런 사람이 없으면 상주 스스로 처리한다.
장례에서는 시신을 발인할 때 사용하는 관과 차량도 중요하지만, 역시 장례와 관련된 서비스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신을 수습할 관은 직장이나 개인이 만들어야 한다.운구차량도 유가족이 마련해야 한다. 대개는 비교적 깨끗한 면포나 면속옷을 입혀 출관을 한다.
이것도 어느 정도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의 경우이다.
장례를 치를 만한 여력이 없을 경우 주민들이 장례를 생략하고 시신을 마을 뒷산에 몰래 매장하는 사례도 많다.
북한에서 화장문화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초부터다. 1989년 평양에서 성대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이 열렸을 때 평양시 주변에 늘어선 공동묘지를 본 김정일은 경지면적이 한정된 북한에서 국토의 묘지화를 막기 위해 토장이 주류였던 장묘문화를 화장문화로 바꾸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1990년 11월 평양시 낙랑구역 통일거리 근처 오봉산에 북한 최초의 일반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평양시 오봉산 화장장'이 건설되었다.
다만 매장 문화를 중시해 온 북한 사람들에게 화장은 낯선 데다 시신을 태우는 화장은 죽은 자를 다시 죽인다는 인식이 퍼져 있어 이용자는 거의 없었다.
북한 당국은 언론과 방송을 통해 화장문화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각 기관과 기업소에서 화장문화를 장려하는 강연을 하는 등 평양 시민들에게 사회주의 생활문화 양식인 화장을 적극 독려했다.
항간에는 사람은 죽으면 지옥이나 천당으로 가지만 땅에 묻히면 지옥으로 가고 불에 타면 천국으로 간다는 풍설까지 나돌았다.
평양을 중심으로 시작된 화장문화는 이후 급속히 확산돼 오봉산 꽃시장에 유해를 보관하는 납골당이 생길 정도로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