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생존을 하면서 가장 오래된 의식은 아마도 장례와 제례의식일 것이다.
삼십만 년 전 살았던 네안데르탈인이 장례의식을 치렀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사는 동안 다양한 의식을 치르면서 살아가지만 가장 보편적인 제례의식은 아마도 기제사와 설··추석 명절에 지내는 차례가 아닐까 싶다.
차례 문화는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이름만 다를 뿐 대부분 행해지던 고유의 의식이다.
대부분 이른 봄에 행해지던 의식은 조상신에게 한해 농사를 준비하고 있으니 풍년이 들기를 또한 사고 없이 무탈하기를 비는 의식으로 진행 되었다.
가을에 행해지던 의식은 첫 수확물을 거두어 들이고 조상신에게 감사의 의미로 의식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식은 우리나라의 설 차례와 추석 차례에 있어서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설 차례는 한 해 농사를 준비하는 시기이기에 설날부터 시작하여 정월 대보롬까지 이어지던 농경사회의 큰 축제이자 준비 기간이었고 추석 차례는 첫 수확물을 통해 조상신에게 감사를 드리던 소박한 제례의식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에 차례상은 간소했다. 그 지방의 첫 수확한 농산물 몇 가지를 올리는 것으로 예를 표했는데 언젠가부터 차례상이 기제사에 버금가는 성대한 상차림으로 변하고 고부간에 갈등의 요인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에서도 이러한 허례허식을 축소하고자 차례의 의미를 부각하고, 현존하는 종가집의 간소한 차례상을 뉴스를 통해 소개하면서 간소한 상차림으로 마음을 표현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러면 언제부터 차례상이 요즘처럼 성대하게 되었을까?
60~70년대 고도 산업화와 성장기를 지내면서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불과 40~50년 전 이야기지만 그 시절 농촌, 산촌, 어촌의 젊은이들은 모두가 도시로 이주하여 산업현장에서 근로를 제공하게 되었고, 주말도 없이 야근, 특근, 휴일연장 근무를 하다 보니 고향에 다녀올 수 있는 시기는 딱 명절 두 번뿐이었다.
이러한 실정에 따라 일 년에 단 두 번 고향에 가다 보니 미안한 마음과 자식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듯하여 최대한 많은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버스와 기차에 올라타 고향을 향한 것이다. 이는 살아있는 부모형제 뿐만이 아니라 죽은 조상에 대한 예의 또한 마찬가지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모습이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뉴스에 나오는 중국의 농민공들이 청명절과 노동절에 고향에 가는 뉴스 화면을 보게 되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자가용도 없던 시절 불과 40~50년 전 우리의 모습 또한 현재 중국 농민공의 모습과 똑 같았으니 말이다.
현재의 관점에서 본다면 명절 차례는 농경사회의 의식이므로 지내지 않더라도 무방하지만 우리의 오래된 전통이고 관습이기에 본래의 취지에 따라 조상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뜻으로 간소히 지내고 가족 간에 우의를 돈독히 하는 소중한 시간으로 보내기를 기대해 본다.
글쓴이 : 최 혁 / 하늘가장례식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