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2월 17일 경북 경주시 마우나오션리조트에 있는 체육관 지붕이 무너졌다.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체육관에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부산외국어대 학생들이 있었다. 이 사고로 학생 9명을 비롯해 10명이 숨졌다. 딸을 잃은 아버지는 얼굴도 모르는 먼 나라의 아이들을 위해 유치원을 세워 아픔을 극복하고 있다. 하루도 병원을 떠나지 못한 어머니는 아름다운 캠퍼스를 걷는 딸의 모습을 꿈꾸고 있다.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면 혜륜이가 ‘참 잘했어요’라고 할 겁니다.”
참사 때 숨진 고혜륜 씨(당시 19세)의 아버지 고계석 씨(52). 고 씨는 딸의 죽음으로 받은 보상금으로 남태평양 바누아투 공화국에 유치원을 지었다. 이름은 ‘혜륜국립유치원’. 딸은 남을 위하는 마음이 남달랐다. 교회에서는 남학생 대신 학생회장을 맡았고 전공도 간호학을 선택하려고 했다. 그러나 교회 설교 뒤 해외 선교활동을 꿈꾸며 부산외국어대 아랍어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갔다가 변을 당했다. 사고 직후 고 씨는 “보상금이 얼마가 나오든지 그건 우리 것이 아니다. 모두 딸을 위해 쓰자”고 아내와 결정했다. 6억 원 가운데 4억 원으로 바누아투의 수도 포트빌라에 유치원을 짓기로 했다. 지난해 7월 혜륜유치원이 문을 열었다. 나머지 2억 원은 부산외국어대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소망장학회’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하지만 고 씨에게 ‘그날’은 여전히 악몽이다. 사고 당시 병원으로 갔을 때 딸의 얼굴에 남아있던 온기도 아직 생생하다. “떠나기 전날 용돈 2만 원을 달라고 해서 줬는데, 그게 마지막일 줄이야….” 13일 일터인 현대중공업에서 만난 고 씨의 검은 뿔테 안경 사이로 눈물이 흘렀다. 영화 감상이 취미였던 고 씨는 사고 후 극장을 거의 찾지 않는다. 어두운 곳에 조용히 있으면 딸 생각이 자꾸 나기 때문이다. “혜륜이가 우리 가족에게 준 사랑과 기쁨이 너무 컸습니다. 혜륜이가 못다 이룬 꿈을 대신 꼭 이어주고 싶어 유치원을 세우고 장학금도 전한 겁니다”라고 말했다. [출처 :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