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와 의료계, 시민단체는 이른바 ‘조력 존엄사법’과 관련해 생명경시 풍조를 만연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며, 생애 말기 환자들의 존엄한 돌봄 유지를 위한 노력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을 호소했다.
안규백 국회의원은 8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의사조력자살, 말기환자의 존엄한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안 의원은 지난 6월 이른바 ‘조력 존엄사법’을 대표 발의했다.
조력 존엄사는 의사가 약물을 준비하면 환자 자신이 그 약물을 주입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법의 핵심은 ‘자기 결정권’이다. ‘품위 있는 죽음’이라는 개념으로 개인 스스로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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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죽음은 모든 가치와 선을 실현할 가능성이 종결되는 하나의 부정적인 사건이다. 토론자로 나선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소장 박은호(그레고리오) 신부는 “권리는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공적인 인정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죽을 권리라는 주장은 단지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 때문에 그 죽음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고,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 만으로 그 선택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대한웰다잉협회 최현숙 대표도 토론에서 “태어나고 죽는 생명에 대한 결정권은 인간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단지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밝혔다.
또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의 자기 결정권 존중’이라는 표현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려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면 그 선택은 이미 자유로운 선택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조력 존엄사’라는 용어의 문제도 짚었다. 이는 자살방조를 존엄하게 죽을 수 있도록 돕는 선한 행위처럼 포장하므로 ‘의사조력자살’이라는 용어가 솔직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발제를 맡은 서울대학교 철학과 김현섭 교수는 이 법안이 말기 환자에 대한 의사조력자살에 그치지 않을 것을 우려했다. 고통의 기준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해서 죽음이 고통스러운 삶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면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다.
김 교수는 “이 법안은 결국 생명경시 풍조를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생명을 살리는 의료인의 본분을 침해한다는 문제도 대두됐다.
앞서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위원장 문희종 요한 세례자 주교)와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위원장 정순택 베드로 대주교),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회장 김현숙) 등은 성명서를 통해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의 이전에 존엄한 돌봄 유지에 대한 실질적 대책 마련을 국회에 요청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