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킷 리스트’, 병상에서 만난 친구 카터는 에드워드에게 ‘인생의 기쁨을 찾아가라’며 이렇게 말한다.
“‘아무나’가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
그래 맞네. 확실히 자넨 ‘아무나’는 아니네.”
이 말에 에드워드는 불화로 자신의 곁을 떠난 딸을 찾아간다. 먼저 손 내밀어 화해를 신청한다. 그 때 손녀딸이 나타난다. 놀란 에드워드는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손녀딸에게 입맞춤한다. 바로 그 순간, 가장 어려울 것처럼 여겨졌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가 완성된다. 가슴 찡한 장면이다.
에드워드처럼 나에게도 정말 피하고 싶은 일이 있다. 하나도 아닌 둘이다. 선교사들을 위한 <잠자는 마을>을 세우는 일이다.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일이다. 또 하나가 ‘죽음과 상·장례 문화’를 바꾸는 일이다. 천년 동안 바뀌지 않은 난공불락의 요새다. 둘 다 새로운 루트를 개척해야 한다.
남들은 은퇴를 했거나 준비해야 할 시기에 난 이제야 뭔가를 시작해야 하다니.... 거기다 모든 활동을 정지시킨 코로나19는 삼각파도와만 같다. ‘엉엉’ 소리 내 울고 싶지만 울 수조차 없다. 불면의 밤은 그렇게 찾아왔다.
<메멘토모리 기독시민연대> 발대식이 끝난 늦은 저녁이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 장세규목사가 내게 전화로 이렇게 말해주었다.
“책임감을 느껴라. 할 수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할 수 있는 것만이 아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 나 외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할 수 있다면 ‘나 밖에’ 없는 그 일이다.”
그 어느 날, 울고 싶어도 울 수 없던 서러운 눈물, 엄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이 고개를 흔들어도 홀로 두 손 모으고 아들을 위해 기도하고 계실 내 엄마가 보고 싶다.
아!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