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문학 평론가 이재복 선생님의 책 제목 중에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가 있다.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유소년기를 직계 조상들의 이야기와 사기열전, 삼국지연의, 한국사 인물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난 지금도 동양의 고전이나 사자성어에 밝고 한자를 읽는 데 별로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말을 읽고 이해하며 윗 세대의 정신과 경험을 읽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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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의 한계를 넘어선 세계사나 그리스·로마·북유럽의 신화나 위인전, 쥘 베른, 로버트 스티븐슨, 마크 트웨인의 모험 소설이 될 수도 있다. 헐리우드와 충무로의 영화, 투니버스에서 방영한 재패니메이션, 디즈니와 드림웍스 또한 나를 길러낸 이야기밥이다. 그것들은 나에게 역할 모델과 인간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스토리라인 스킬, 어떻게 살아야 멋진 것인지에 대한 생활미학과 철학을 제공했다. 내 정신은 그것들을 이야기밥들로 해서 자랐다. 여학생들에게 유독 인기가 많아 부러웠던 경인교대 젠틀맨 김항인 교수님의 말처럼, 나는 아이들이 도덕적 실천이 필요한 상황을 상상하여 도덕감정을 함양하는 데 도덕 이야기처럼 적합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도덕 수업을 반드시 토론으로 수업해야 하고, 그것이 교과의 벽을 넘어서서 지적인 능력을 한 점으로 집중하여 동시적으로 통합하는 통합교과의 교육적 순간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그 토론의 무대도 이야기가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인간은 이야기를 먹고 자란다는 전통 교육의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투닥거리다 끝내 조선왕조의 야사野史 에피소드들로 끌어들여 유교 경전의 정신과 덕목을 자연스럽게 전달하는 맹꽁이 서당 훈장님이 그러했듯이, 시나고그의 랍비가 토라와 탈무드를 읽으며 유태인 아이들을 가르치듯이, 기독교 교회에서 아동의 교육을 담당했을 시절 복음서와 구약의 설화들로 아이들을 길러냈듯이 말이다. 당연히 이야기의 완성도와 크게 상관 없는, 사실성이나 허구성의 여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거 실화냐”는 질문은 접어두고 ‘어떤 이야기인가’를 생각해보자.
나는 국어, 영어, 사회, 도덕은 일정 부분은 스토리텔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는 루카치가 말한 의미와 같이 총체적이다. 이야기의 무대 안에는 세계의 모든 것이 끌려나온다. 아이들은 그 속으로 들어와 공감하고 체험한다. 이야기의 무대를 헤쳐나오며 아이들은 배운다. 고대 그리스의 비극 무대나 교과서의 발췌문이나 정치적 선동의 목적을 지닌 교사의 수업이나 유튜브 동영상이나 본질은 다르지 않다. 요컨대 아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선택하느냐, 우리 스스로 어떤 스토리로 자신의 운명을 나아가게 하려 결단하느냐로 교육은 이루어진다. 교육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훈련받은 이들의 스토리텔링은 지금도 여기저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이야기들이 지금의 당신을 길러냈는가. 어떤 의도와 정신, 내용을 지닌 이야기로 밥을 지어 아이들을 먹여야 하겠는가. [출처 : 제3의길]
이야기의 무대에는 세계의 모든 것이 끌려나온다. 아이들은 그 속에 들어와 공감하고 체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