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과 이별을 하며 상실(喪失)의 고통과 마주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면서 친구와의 헤어짐,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을 잃어버린 기억, 잘 다니던 직장에서의 갑작스런 퇴사,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등 수 많은 상실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에서 잊혀지고, 다시 만날 수도 있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더욱 뚜렷하게 자리 잡고 다시 만날 수 도 없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고 하는 속담이 뜻하듯 우리의 마음속에서 가족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남겨진다. 때론 슬픔, 아쉬움, 기쁨, 안도함 등으로...
가장 큰 상실의 경험인 죽음 앞에서 그간 우리의 장례문화는 상실에 따른 아픔을 치유하는 방식이 아닌 보여 주기 식 장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가 산업화가 되기 전에는 장례 또한 온 마을이 함께 동참하는 애도의 기간이었고 함께 힘든 일을 치뤄 나가는 공동체 문화였으나, 70년대 고도 성장기를 지나면서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져 산업현장에 있어, 함께할 수 없는 사회구조로 변모하다보니 얼굴도 모르는 고인의 빈소에 상주와의 친분으로 인해 잠시 들려 영정사진에 인사하고, 상주와 인사하고, 부의 봉투 넣고, 식사하고 나오는 것이 현재의 장례방식이 되었다.
이는 상주들에게 더 혼란을 주는 방식이다. 슬픔에 겨워 제단 앞에서는 울다가 조문객이 오면 웃는 낯으로 대하기를 반복하다보니, 가족을 떠나보내는 고별의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않고 오히려 장례가 끝나면 상실에 따른 슬픔으로 힘겨워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이제는 우리의 장례문화도 상실에 따른 슬픔을 치유할 수 있도록 바꾸어 보면 어떨까?
필자는 장례와 관련된 봉안당을 17년째 운영 중이고, 장례식장 또한 개업한지 4년을 넘겨 운영하면서 상실에 따른 슬픔을 어떻게 치유할까? 고민하며 현장에서 적용하고 있어 그 방식을 공유하고자 한다.
장례가 발생하면 낯선 환경에 경황이 없고 조문객을 맞이하기 위하여 바빠진 마음에 고인을 위한 의식이나 추모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그래서, 필자는 첫날 늦은 저녁에 고인을 위한 편지를 쓰도록 권한다. 고인에게 하고 싶었던말, 용서를 구하는 말, 사랑한다는 말, 용서하는 말 등을 편지에 쓰도록 함으로써 고인을 추억하고 설령 화해는 할 수 없지만 스스로 용서가 되는 시간을 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다음날 입관 시에 편지를 낭독하고 고인의 품에 그 편지를 넣어 드린다.
두 번째로는 고인이 영면할 관을 생화로 장식하여 딱딱한 나무관이 아닌 아름다운 꽃관의 모습을 연출하고 입관 후에는 추가로 헌화 꽃을 준비하여 헌화함으로써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세 번째로는 수의보다는 한복이나 자녀들이 최근에 사주었지만 입지 않았거나,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옷이 있다면 그 옷을 입히고, 자녀들이 입관 시에 함께 참여하여 마지막 떠나보내는 고인을 위해 직접 머리 빗겨주기, 얼굴과 손·발에 크림발라주기, 양말신기기, 옷고름 메주기 등을 해줄 수 있도록 가족을 참여시킴으로써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주고 고별의식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고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애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며,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가족들은 슬픔을 치유할 수 있고, 고인과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슬픔의 장례가 아닌 사랑했던 가족을 위하여 마지막 무언가를 해주었다는 기쁨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글: 본지 전문위원 최혁 효원추모공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