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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살며불편 죽어서도, 장애인 무연고 사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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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연고 장례를 치르면서 만난 수많은 사망자들 중 유독 마음이 아픈 사연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기를 만났을 때, 2~30대의 청년을 만났을 때, 고아로 자란 사연, 그리고 장애가 있는 사망자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2018년 이후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서울시 공영장례 의전업체를 선정하여 고인에 대한 제대로 된 마지막 예우를 갖춰 장례를 진행하지만, 예전의 경우 운구가 진행될 때 시신을 모신 관의 뚜껑이 떠 있는 광경을 가끔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공문에 기록된 바가 없어 장례를 치르기 전에 장애유무를 알 수 없었던 상황이라 운구 현장에서 참혹한 광경을 마주하고 많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10월 초에는 두 분의 장애인을 무연고 장례로 모셨습니다. 한 분은 어려서부터 고아원에서 자라 혼자 사시다 거주지에서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고, 제적등본상 연고자 미상으로 무연고 사망자가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 분은 지역의 복지관에서 돌보던 뇌병변장애인으로 요양병원에서 사망한 무연고 사망자 ㄱ님입니다. 시신을 위임한 형제는 위임사유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데려온 업둥이로 열두 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사망한 후 독립하겠다며 집을 나간 후 45년간 생사를 모르다가 사망소식을 들었다.”고 적었습니다.

 

장례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참석을 못하게 된 복지사 한 분이 장문의 메시지로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어르신은 저희 단지에 혼자 이사 오시면서 뵙기 시작했어요. 사고로 뇌병변장애를 갖게 되신 이후 거동의 불편함도 크고 편마비로 말씀도 어눌해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셨던 어르신이 동네 이웃이 한두 분씩 생기면서 복지관에 나오셔서 식사도 하시고 모임도 하셨어요. 언젠가부터는 전동휠체어가 아니면 걷기가 불편해지셨지만 사람을 좋아하셨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4~5배 힘들어도 나들이며 모든 활동에도 다 참여하신 분이셨어요.”

 

청소년들이 안부 방문을 가면 ㄱ님은 ‘어르신 말고 형님’으로 불러달라며 분위기를 밝게 만들 만큼 친화력이 있었습니다. 수급비를 받으면 근처에 혼자 사는 동생들을 불러 밥을 사기도 해 동네에서 꽤 인기 있는 편이었습니다.

 

밝은 미소 뒤에는 아픈 면도 있었는데, ㄷ님은 이혼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자녀를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몸이 안 좋아져 혼자 지내기 힘들어진 이후 요양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복지관에서는 가족들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끝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살면서 맺었던 인연들이 끊어지면서 급격히 쇠약해진 ㄷ님은 결국 요양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활동을 지지하는 부용구 활동가가 작성한 글입니다)

[출처 :나눔과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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