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나이를 먹으며 살아오는 동안 어찌 무수한 좌절과 절망이 없었겠는가. 그리하여 매번 허물어져 다시 새롭게 다짐하는 인생이어도 어찌 나름의 지혜가 형성되지 않았겠는가. 그 중 두 가지를 꼽으라면 장자莊子의 <목계木鷄> 우화와 사르트르의 <인간 실존 실패론>이다.
목계木鷄란 장자莊子 달생편達生篇에 나오는 우화다. 중국 주周나라 선왕宣王은 닭싸움 보는 것을 좋아하여 싸움닭 조련사인 기성자紀渻子에게 닭 한 마리를 조련시켜 최고의 싸움닭을 만들어내라고 명령했다. 열흘 후, 왕은 기성자를 불렀다.
“그 닭이 이제 싸울 만하냐?”
“강하긴 하나 아직 교만하여 스스로 최고인 줄 압니다.”
다시 열흘 후, 왕이 기성자를 또 불렀다.
“이제 내보낼 만하겠지?”
“교만은 버렸지만 상대의 그림자와 울음소리에도 쉽게 반응합니다. 태산 같은 진중함이 없습니다.”
또 열흘이 지났지만 기성자는 여전히 왕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이제 조급함은 버렸지만 아직도 성을 내고 눈매가 너무 공격적입니다.”
마침내 네 번째 열흘이 지나자 기성자는 왕을 찾아갔다.
“이제 됐습니다. 상대가 홰를 치거나 울어도 반응하지 않고 늠름하게 버틸 뿐입니다. 마치 나무로 조각한 목계木鷄와 같습니다. 어떤 닭도 그 모습을 보면 도망칠 것입니다.”
생각해 보라. 상대 닭이 아무리 목 깃털을 고추 세우고 무섭게 달려들어도, 마치 나무로 깎은 닭처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늠름하게 가만히 있다면, 상대 닭은 제 풀에 무서워 도망 치지 않겠는가.
상대방 앞에서 무서워 울고, 분노하여 부들부들 떤다면 그것은 이미 상대방에게 지고 들어가는 거다. 평정심을 잃고 분노하면 진다.

“망지사 목계 기덕전 望之似 木鷄 其德全, 겉보기엔 마치 나무로 만든 닭과 같지만 그 덕이 완전하다.”
장자의 구절은 덕의 경지를 설파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뭔가 억울하고 슬픈 일을 당할 때면 스스로를 다스리기 위해 이 구절을 외웠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모든 행위는 ‘실패’라고 했다. 매일 매일이 실패다. 조그만 실패, 큰 실패, 그 실패들이 쌓이다가 결국 최종적인 가장 큰 실패는 죽음이라고 했다.
또 뭔가 좌절하여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인간이라는 좌절감을 느끼게 될 때, 또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여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을 때, 자신은 세상 가장 밑바닥에 있는 ‘말종의 인간이다’라고 생각하라고 했다.
최악의 것만큼 확실한 것은 없으니까. 최악의 것만큼 희망적인 것이 없으니까. 이제 사태는 좋아지는 것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글쓴이 : 박정자) [출처 : 제3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