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를 풍미한 인물들 부고기사로 읽는 현대사
뉴욕 타임스 부고 모음집- 뉴욕 타임스 지음 /윌리엄 맥도널드 편저
윤서연 외 옮김 /인간희극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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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신문에 실리는 ‘부고’(訃告)라고 하면 빈소와 발인 날짜, 장지 등이 먼저 떠오른다. 간혹 사회적 영향이 큰 인물이 죽었을 때는 별도의 기사가 실린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이나 영국 등의 신문에는 부고 기사, 영어로는 ‘OBITUARY’가 주요한 기사로 주요한 면을 차지한다. 또 부고 기사를 전담하는 기자(영화 ‘클로저’에서 주드 로가 부고 기사를 쓰는 기자로 등장)가 있을 정도다.
부고 기사는 단순히 죽음을 알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한 인물의 일생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데 수준이 상당히 높다. 그런 부고 기사의 진면목을 접할 수 있는 ‘뉴욕 타임스 부고 모음집’이 나왔다. 뉴욕 타임스는 1851년 창간해 세계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언론사 중 한 곳이다. 흥미로운 점은 부고 기사를 모아 보니 살아 있는 현대사가 됐다는 것이다. 현대사를 끌어온 인물들이 부고 기사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찰스 다윈(1809~1882) 칼 마르크스(1818~1883) 등 19세기 위대한 사상가와 과학자부터 2016년 세상을 떠난 영국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까지 169명이 등장한다. 책은 이들을 ▷국제 무대 ▷사유의 모험가들 ▷재계의 거물들 ▷새로운 경지를 연 사람들 ▷꿈의 무대를 만든 사람들 ▷악명가들 ▷팝뮤직의 스타들 ▷전쟁의 지휘자들 ▷시각 예술의 대가들 ▷한반도의 운명을 쥐었던 사람들 등으로 분류해 소개한다. 뉴욕 타임스는 앞으로 고전 예술, 문학계의 거장들, 미 서부개척 시대의 인물들 등을 2부에 수록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부고 기사는 ‘역사를 비추는 백미러’로 평가받지만 한편으로는 당대의 살아 있는 분위기를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한 인물이 살았던 시대 상황을 날 것 전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1874~1965)의 죽음을 두고 “세계사적으로 한 시대의 끝을 의미한다”고 전했으며 찰스 다윈에 관해서는 “신기원을 이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적었다.
책은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인물을 찾아 읽으면 된다. 아예 작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면 현대사의 맥락을 어느 정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와 관련해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고 기사가 실려 있다.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부고 기사도 등장한다. 뉴욕 타임스는 김일성에 관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나 나올 법한 사회를 실체화한 인물이다”고 평가했다.
1960~70년대 록 음악을 좋아한 마니아에게 눈길을 끄는 기사도 보인다. 공교롭게도 27살에 모두 세상을 떠난 3J, 지미 헨드릭스(1942~1970) 재니스 조플린(1943~1970) 짐 모리슨(1943~1971)의 부고 기사가 나란히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