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보다 화장을 선호하는 장례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교황청이 “유해를 뿌리지 않는 경우에 한해 화장을 허용한다”는 내용의 새 장례 지침을 발표했다. 1963년 화장을 원칙적으론 허용한 이후에도 매장을 권유해온 교황청이 화장과 관련한 구체적 시행 지침을 분명히 한 것은 처음이다.
25일 CNN 등에 따르면 이날 바티칸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위령성월’인 11월을 맞아 “화장은 허용하지만 사망자의 유해가 공중이나 대지, 바다에 뿌려지거나 가정 내에 보관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새 장례 지침을 발표했다. 신앙교리성은 “적법한 이유로 망자의 화장이 결정되면, 그 유해는 교회가 정한 신성한 장소나 묘지에 안치돼야 한다”며 “만일 유해를 뿌리길 유가족이 원한다면 천주교식 장례를 치르지 못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교황청은 망자를 기억하기 위해 화장된 유해로 기념품이나 장식품을 만드는 행위도 금지한다고 설명했다. 가톨릭 교회는 유해를 자연에 뿌리는 것을 모든 사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보는 범신론에 기초한 행위로 보고 있다. 신앙교리성 측은 “어떤 형태의 범신론적, 자연주의적, 허무주의적 사상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유해를 뿌리는 것은 금지된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0여 년간 화장을 금기시해온 가톨릭 교회는 1963년 장례문화의 변화에 발맞춰 화장을 허용했다. 그러나 ‘육신의 부활’을 믿는 가톨릭 교회의 교리 때문에 부활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면 화장을 할 수 없도록 금지해왔다. 이번 지침에서도 화장을 허용하긴 했지만, 루트비히 뮐러 신앙교리성 장관은 “교회는 사망자의 육신을 묘지나 다른 성스러운 장소에 매장할 것을 권고한다”며 “매장이야말로 인간 육신에 대한 존엄과 존경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교황청 관계자도 이와 관련해 “화장은 자연스러운 절차가 아니며 그 속성상 야만성이 내포돼 있다”며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재로 만드는 화장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BBC 등은 “2013년 조사에서 20년 내 영국에는 묘지로 쓸 공간이 더 이상 남지 않게 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며 교황청이 가까운 미래에 장례 문화에 대해 한 발 더 완화된 지침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한편, 이웃 일본의 경우, 로마 교황청이 내놓은 산골 및 유골의 자택 보관 금지령은 일본에 45만 명으로 추정되는 가톨릭 신자의 장례 스타일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산골이나 유골의 자택 보관은 최근 일본에서 급속히 확대를 보이고 있는데 그 중에는 천주교 신자도 포함되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통계가 없어서 정확한 실태는 모르지만 유골의 자택 보관도 도시를 중심으로 상당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일본에서 산골이나 유골의 자택 보관의 확대 배경에는 무덤을 만들어도 그 무덤을 돌보는 자손이 없다는 인구 구조상의 문제가 있다.
로마 교황청이 내놓은 지침은 이래 저래 일본의 장례 관행과는 역 방향으로 가는 내용이어서 일본에서의 묘지 기능의 재검토 논의가 일어날지도 모른다. 또 로마 교황청은 유족이 유골을 여러개로 "분골(分骨)" 하는 것도 비판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분골은 옛날부터 있어 온 관행이고 석가모니의 유골 자체가 세계 각지에 분골되고 있다. 일본의 가톨릭 신자는 일본의 사생관, 장례관을 견지하면서 앞으로 교황청의 지침을 어떻게 수용해 나갈지에 고민스럽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