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는 장군과 사병의 위상 가히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거기에다 죽어서도 차별 대우를 받는다. 국립묘지의 장군 묘역은 1인당 26.4㎡(8평) 규모의 땅에 시신을 안장하고 봉분까지 허용되는 반면 사병 묘역은 3.3㎡(1평) 크기에 화장한 유골만 안장하며 물론 봉분은 없다. 게다가 장군 묘역과 사병 묘역은 멀리 떨어져 있다. 차별도 보통 수준이 아니다. 얼마 전 어느 예비역 장성은 전역 후 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다가 돌연사 했다. 그는 봉분이 갖춰진 국립묘지 8평 묘역에 매장됐다. 그러나 교전 중 사망했거나 무공훈장을 받았더라도 영관급 이하 군인들은 1평 묘역에 화장 후 안치된다. 죽어서도 계급 차별을 당하는 것이다.
'화장문화'에 역행
이는 화장하는 쪽으로 장묘문화가 급격히 바뀌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고 효율적인 묘지 이용에도 방해가 된다. 국립묘지에서 장군급 묘역은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데, 2087년까지 장군급 유해를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영관급 이하 군인 및 전사자, 전상군경, 공상군경, 무공수훈자 등을 위한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은 이미 포화상태다. 국립대전현충원 묘역도 이미 공간에 여유가 없다. DNA 위패로 대신 보관하는 방안에 더하여 최근에는 국립묘지에도 자연장을 도입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한 동안 잠잠하던 국립묘지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故채명신 장군의 유언 때문이다. 故 채명신 장군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사병의 묘역에 안장된 최초의 장군으로 기억되게 되었다. 채 장군은 생전에 “나를 파월 장병이 있는 묘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 데 따른 것이다. 장군이 사병묘역에 안장되는 것은 현충원 설립 사상 처음이다. 고인이 묻히게 될 묘지 크기는 일반 사병과 같은 3.3㎡(1평)다. 봉분도 없고 단출한 비석이 하나 세워진다. 장군묘지는 26.4㎡(8평)로 사병묘지보다 8배 넓다.
채 장군은 생전에 현충원을 방문할 때마다 “전우들의 곁에 묻히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결정된 자리가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있는 2번 사병묘역이다. 이미 자리가 꽉 찼지만, 현충원은 입구 쪽의 남은 공간을 이용해 채 장군의 묘지를 만들기로 했다. 애초 채 장군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사병묘역 안장은 쉽지 않았다. 채 장군이 병세가 악화되자 가족과 보좌관들이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아 사병묘역에 묻히기를 원한다는 뜻을 전했지만 국방부나 현충원에서는 장군묘역과 장교묘역, 병사묘역으로 구분하고 있는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때문에 난색을 표명했다고 한다. 참고로 국립서울현충원은 국방부 소관이고 국립대전현충원은 국가보훈처 소관이다. 국방부는 긴급회의를 열어 고인의 유언을 수용하기로 했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채 장군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찾아 유족들에게 정부의 결정을 공식 전달했다. 김 장관은 “고인은 군의 정신적 지주이셨다”며 “파월 장병들과 같이 묻히고 싶다고 유언하셔서 그 유지를 받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채 장군의 부인 문정인씨는 “어려운 결정에 감사드린다”고 사의를 표했다.
한때 국립묘지령 개정 논란
국립현충원은 장군 출신의 묘역과 사병 출신의 묘역은 그 넓이도 큰 차이가 날 뿐 아니라, 묘비, 묘역, 장소 모두 계급대로 나눠져 있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 사회의 뿌리 깊은 등급주의 문화가 망자에게도 적용되는 예라고 말하는 논쟁거리로 남아있다.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2004년 “장성들의 묘에 봉분 설치를 금지하고 시신도 화장해 묘 규모를 3.3㎡(1평)로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불법이던 봉분 설치 관행을 합법화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국방부와 보훈처는 묘의 면적을 규정한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12조를 2005년부터 몇 차례 개정해 장군묘의 경우 26.4㎡(8평)의 면적에 봉분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2004년 2월 국방부는 불법적인 장군묘의 봉분 설치를 합법화하는 국립묘지령 개정을 추진했다가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당시 고건 국무총리가 개정작업 중단을 지시했고 국방부와 보훈처는 장군묘 축소 및 봉분 설치 백지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이들 기관은 약속을 번복하고 봉분 설치의 합법화와 시신 매장을 계속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에 기습적으로 묻힌 안현태 전 청와대 경호실장의 경우도 시신 매장과 함께 봉분까지 설치됐다. 대령급 이하 군인들은 임무 중 전사하거나 무공훈장을 받더라도 국립묘지에 묻히려면 시신을 화장하고 3.3㎡ 묘역에 평장(지면과 같은 높이로 평평하게 한 것)을 해야 한다. 국립묘지령은 ‘국가원수를 제외한 모든 국립묘지 안장 대상자는 원칙적으로 화장을 해야 한다’고 규정해왔으나 1983년 이 가운데 일부 규정을 개정하면서 장성들의 시신 매장 관행이 계속돼왔다. 국립현충원 관계자는 “국립묘지 묘역이 부족해 앞으로 유골 안장 대신 DNA가 들어간 위패로 대치하는 것을 장기 과제로 검토하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장군들에게만 시신 매장과 봉분 설치를 허용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미국의 알링턴 국립 묘지는 445헥타르의 방대한 땅에는 남북전쟁 전사자 뿐 아니라 1, 2차 세계 대전, 한국 전쟁 등에서 죽은 전사자들이 잠들어 있는데 장군 병사 할 것이 모두 묘지 면적이 1평, 3.3제곱 미터 남짓하다. 묘역도 따로 분류돼 있지 않으며 장군의 묘비도 다른 사병과 똑같은 모양 똑같은 크기, 똑같은 재질에다 심지어 위치 또한 평범한 외곽에 있는 경우도 있다. 이 외 유럽의 국립공원묘원에도 각 방면에서 다대한 공헌을 쌓은 유명인들도 한겱같이 일반 시민들과 다름없는 규격과 모습으로 시민들과 해외 관광객들의 추모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