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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67회 현충일 추념식장을 울린 아름다운 전우애

손녀가 쓴 '할아버지의 편지' 평생을 지켜 온 장군의 약속

 

국립 서울현층원 5 만 7000 년 묘역 가운데 이름 없이 성만 새겨진 묘비가 있습니다. 1950년 8월 27일, 경북 안강 부근 전투, 쏟아지는 포화 속에서 부대를 이끌고 있던 황규만 소위를 지원하기 위해 김소위가 도착합니다.

 

김소위와 황소위는 서로 이름조차 나누지 못하고 곧바로 전투에 돌입하였고 김소위는 적의 기관총 사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황소위는 김소위의 시신을 소나무 밑에 묻어주고 큰 돌을 올려 표식을 남긴 채 다시 찾아오겠느라 다짐하였습니다. 

 

"좀처럼 그가 안 잊혀지더라고. 손에 다 피를 묻혀 가면서 그걸 내가 직접 여기 매장을 했는데 그게 잊혀질 수가 없지" 

 

전쟁이 끝난 후 어렵게 유해를 발굴할 수 있었지만 이름을 알 길이 없었기에 육군소위 김의묘라는 비석을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황장군은 명절마다 먼저 간 전우를 챙겼고 26 년에 걸쳐 수소문 한 끝에 마침내 김소위의 유가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40 년 동안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전우의 이름은 바로 김수영이었습니다. 
죽어서라도 김소위 곁에 있고 싶다고 하던 황규만 장군은 바람대로 2020년 6월 김소위 옆에 나란히 잠드셨습니다.  

 

황장군의 손녀 정지희 씨가 쓴 글을 배우 전미도씨가 낭독했습니다. 

 

 

그립고 또 그리운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따뜻한 미소를 볼 수 없게 된 지도 벌써 이 년이 되어가네요. 
할아버지는 늘 빚진 인생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때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언젠가 할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할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린 나이에 적과 대치하며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 한가운데에 계셨죠.

 

 곤경에 처한 할아버지의 부대를 돕기 위하여 혹시라도 적의 표적이 될까 계급장도 달지 않은 엣된 소대장을 앞세우고 온 지원 부대, 할아버지와 김소위 님의 이야기는 늘 그렇게 시작되었죠. 

 

 

서로의 이름도 서로의 사정도 나눌 새 없이 황소위, 김소위라는 짧은 인사 후 전투에 참여하였고 안타깝게도 김소위 님은 바로 전사하셨다고 하셨죠. 

 

할아버지는 김소위 님의 시신을 소나무 아래에 묻어주며 후일에 찾아오겠다는 첫 번째 약속을 하셨다고요. 

 

 

할아버지는 전장에서 하신 첫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14 년 뒤에 김소위 님의 유해를 찾아 국립묘지에 안장해 드렸죠.

 

이름을 모르기에 김의 묘라는 비를 세우며 할아버지는 두 번째 약속을 하죠. 

김소위 님의 이름과 가족을 찾아주겠다고 26년간 수소문한 끝에 김소위 님의 이름과 가족까지 찾으신 어느 설날 아침, 할아버지는 약주를 드신 후 어김없이 김소위 님과의 인연을 들려 주셨죠.

 

 이제 할아버지의 남은 약속은 김소위 님 곁에 같이 잠드는 것이라고 어린 제가 나는 할아버지가 장군님들처럼 멋있는 곳에 계시면 더 좋겠어요라고 했을 때 할아버지는 제게 말씀하셨어요. 

 

 

"할아버지가 우리 지희와 함께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김소위와 같은 분들 덕분이야. 그분들이 없었으면 우리는 만날 수도 없었단다.

 

아버지의 유해도 찾지 못하고 자라온 김소위의 자녀들을 생각하면 할아버지는 너무 죄스럽단다.  할아버지는 김소위 곁에서 술 한잔하며 못다한 이야기 나누고 싶단다."

 

 할아버지,


어른이 된 오늘에서야 당신의 깊은 뜻을 알 것 같습니다. 왜 할아버지께서 늘 빚진 인생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하셨는지를요.

 

소중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따뜻한 시간들, 사랑하는 손녀를 품에 안고 예쁘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행복한 순간들이 김소위 님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할아버지의 몫이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하셨던 것이겠죠. 

 

덤으로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묵묵히 신념을 지키며 사셨던 할아버지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전장에서 채 10 분도 되지 않은 짧은 만남이었지만 70여 년 마음에 품은 약속을 지키며 살아오신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영면에 드신 2020년 6월 20일,
 저희 모두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약속을 지켜드릴 수 있어 감사했어요. 
두 분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실지 정말 궁금합니다. 

 

할아버지 이제는 제 차례인 것 같아요. 
김소위 님께서 호국 영령들께서 힘겹게 지켜주신 이 나라 정신을 이제는 제가 자녀들에게 어린 세대들에게 전해 주고 싶어요. 

 

이 손녀가 잘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할아버지가 꼭 지켜봐 주세요. 
사랑해요. 할아버지 다시 뵐 때까지 편안히 계세요. 

 

손녀 정지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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