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 젊은 부부가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낯선 얼굴이었다. 하이패밀리 경내의 <안데르센 공원묘원>을 찾아왔단다. 자신과 관계없는 죽음인데도 꼭 들르고 싶었다고. 그 마음이 짠했다.
어린 생명의 주검을 거두어 주는 내가 고맙다고 했다. 손에는 선물이 들려있었다. 하나는 귤이었고 또 하나는 작은 상자였다.
귤은 계란 판에 정성스레 담겼고 상자 안에는 수건 셋이 가지런히 놓였다. 계란 판과 귤의 부조화가 궁금했다. 한참만에야 여린 귤이 눌려 짓 물리지 않도록 하는 ‘배려’였다는 것을 알았다. 눈물 났다. 그 심성이 부럽고 감사했다. 수건은 크리스마스트리를 금방 떠올리게 했다. 선물을 고르느라 쏟았을 ‘정성’이 느껴졌다. 올 해 가장 먼저 찾아온 성탄 축하였다.
저녁기도 시간, 이 가정을 축복하는 기도를 드렸다. 찰스 아이젠스타인(Charles Eisenstein)의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감사하도록 태어난 존재이다. 감사야말로 삶이라는 선물에 대한 원초적인 반응이다. 감사의 마음, 즉 선물의 정신으로 살면서 선물을 베푸는 경로를 더 확대하면, 선물이 돌아오는 경로 역시 확대되기 마련이다.”
‘삶이라는 선물’ ‘선물의 정신’ ‘선물의 경로’… 선물이 선물을 낳고 있었다. 배부른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