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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나눔과 나눔이 모여 아름다운 세상이 되고

[무연고장례지원] 아름다운 세상이 모여 또다른 나눔을 만듭니다.

 

 

 

 

[나눔장례지원] 2020 변화된 것들
2020년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시 공영장례 수행업체가 새롭게 바뀌었고, 한 달의 시간동안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예년에 비해 안정적으로 진행되는 모습입니다. 무연고 사망자 중 기초생활수급자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면서 사망자의 연령대와 여성의 비율(1월 무연고 사망자 36명 중 11명)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관련 정책 변화로는 무연고 추모의 집에 봉안기간이 기존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되었고, 기초생활수급자 장제급여는 소폭 상승했습니다. (기존 75만 원에서 80만원)

 

 

또 다시 쓰는 슬픈 이별이야기 


① 유언, 나의 장례를 무연고로……

 

1월 중순 서울시의 한 장례식장에서 무연고 기초생활수급자 ㄷ님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이 장례는 사망자가 생전에 “자신의 장례를 무연고로 치러 달라.”는 유언에 따라 공영장례로 진행되었습니다. ㄷ님은 1939년생으로 지난 1월 초 서울시의 한 병원에서 뇌종양으로 사망했습니다. ㄷ님은 생전에 일찍 자녀를 잃은 슬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ㄷ님에겐 아들과 딸이 있었지만 아들은 30대 초반에, 딸은 30대 후반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특히 아들은 결혼해서 손자를 낳고 1년 만에 사망하여 ㄷ님이 많은 충격을 받았는데, 이후 몇 년 뒤 딸마저 이별하게 되었습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아픔을 안고 평생을 사셨던 ㄷ님은 손주들이 보고 싶을 때는 지방에 찾아가 만나고 올 정도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습니다. 세월은 흘러 배우자를 먼저 보낸 반려자들은 또 다른 가정을 꾸리게 되었지만 다행히도 서로의 노력으로 ㄷ님과의 관계는 변함없이 돈독함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ㄷ님은 자신이 사망한 이후 장례가 항상 걱정이었습니다. 어린 손자, 소녀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고 자신의 장례를 맡길 수 없으니 만날 때마다 “나는 무연고로 갈 테니까 나한테 신경 쓰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ㄷ님은 생전에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었고, 말년에는 뇌종양 수술을 하면서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이후 서울에 사는 외손녀가 돌보기도 했지만 요양병원으로 자리를 옳겨 삶을 마감했습니다.


입관의식에 참석한 며느리는 “어머니,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라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고, 손자들도 장례식에서 술을 따라드리며 먼저 떠난 할머니께 마지막 예를 갖추었습니다.
먼저 떠나보낸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 살았고, 본인 생의 마지막을 항상 걱정했던 ㄷ님은 유언을 통해 남아 있는 자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공영장례를 부탁했고, 제도를 통해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었습니다.

 

② 삶을 나누었던 이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1월 말 ㄹ님의 무연고 장례에 성당에 함께 다녔던 지인 분들이 참석했습니다. 1943년생인 ㄹ님은 지난해 11월 말 거주하시던 곳에서 사망했지만 오래지 않아 발견되었습니다. 생전에 지인 분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고 있었고, 왕래도 많았기에 일찍 발견될 수 있었습니다. 장례에 참석한 분들 중엔 ㄹ님을 대모(代母, Godmother)로 모셨던 대녀(代女)가 계셨습니다. 대녀 분은 자신의 결혼식에도 성당대모로 축하해주셨던 ㄹ님과 매일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무연고자가 된 개인적인 사연을 처음 알게 되었다며 많이 놀라고 사망 후 두 달이 지나서야 장례를 치르게 되었다며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처럼 나눔과나눔이 서울시 공영장례 상담업무를 진행해 오면서 점점 더 많은 연고자, 지인 분들이 무연고 장례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일반 장례와 다른 절차와 방식에 처음에는 의구심에 화를 내기도 합니다. 이를 테면 시간적으로 무연고자 확정까지 시간이 소요되는 점과 장소 측면에서 장례식장이 아닌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장례가 치러지는 점, 그리고 의전업체가 지자체의 공문을 통해 장례를 진행한다는 점 등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장례에 참석하면서 장례를 진행하는 집례자와 자원봉사자 등이 장례에 집중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내 마음이 누그러지고 융화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마지막에는 공영장례에 대해 꼭 필요한 제도라는 말을 전하기도 합니다.


무연고 사망자 당사자의 인간의 존엄성, 가족과 지인의 ‘애도와 치유’, 공동체의 ‘사회적 애도’라는 ‘공영장례’라는 취지를 구현하기 위해 아직도 해결해야 할 숙제들이 남아있습니다. 일부 지자체 담당자의 성의부족 등으로 지인들이 제대로 된 장례참석 안내를 듣지 못해 장례에 제때 도착하지 못하거나, 사적인 이윤추구에 반하는 것으로 판단해 공영장례에 비협조적인 장례식장 등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 교육을 확대하여 원활한 협조 체계를 구축하는 데 올 한해도 더욱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이 글은 나눔과나눔 활동을 지지하는 부용구 활동가가 작성한 글입니다.)

 

 

 

 

#무연고장례 #나눔과나눔 #내장례를무연고로 #삶을나누었던사람모두참석할수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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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가 함께한 무연고 장례 -부용구
서울역에서 도로를 건너면 높은 건물들 사이 여인숙과 쪽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동네가 있습니다. 동자동쪽방촌은 주민들 스스로가 사랑방마을주민협동회를 조직하여 열악한 주거환경 개선과 반찬 나눔, 의료서비스 등의 지원을 모색하며 이웃들끼리 나눔의 문화를 만들어왔습니다. 나눔과나눔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거주민들 중 무연고자가 되어 돌아가시는 분이 있을 때 함께 장례를 치러왔습니다. 그러던 지난 3월 중순 SNS에서 동자동사랑방의 유○○ 이사장의 사망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장례 등을 통해 뵈었던 이사장님의 건강에 이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사망소식은 황망하기만 했습니다. 연고자로 형제들이 있었지만 시신인수를 거부하는 상황이라 장례가 언제 확정될지 알 수 없어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랑방 활동가들은 형제분들에게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지난 4월 초 유 이사장의 장례일정이 확정되었고, 화장일에 앞서 동자동에서 추모제가 열렸습니다.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추모식에 조문을 왔고, 각자의 추억들을 가지고 유 이사장을 애도했습니다. 유 이사장은 생전에 아픈 주민들을 병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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