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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유구한 역사의 현장 무덤,  찬란한 비화가야 모습드러내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등잔형 토기·주전자형 토기 발견

비화가야 지배자 묘역인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손꼽히는 대형 무덤인 39호분 축조기법이 온전히 드러났다. 봉토 지름이 27.5m, 높이가 8m인 39호분은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89호분, 7호분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무덤으로, 규모나 다른 무덤들을 조망하는 위치로 보아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가 묻힌 것으로 판단된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5세기 중반에서 후반 사이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39호분과 주변 고분 발굴조사 성과를 28일 공개했다. 63호분 봉토 위에 중첩해서 축조한 39호분은 빗물 등으로 인한 붕괴를 막기 위해 중심부는 점토를 사용하고, 가장자리는 흙으로 쌓았다. 아울러 봉분을 쌓는 단계마다 점토를 깔아 마감했다. 일부 구간에서는 길이 1m·높이 0.6m인 세부 성토 단위가 확인됐는데, 가장자리에서 점토 덩어리가 발견됐다.

 

양숙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점토는 흙의 응집력을 강화하고 다른 재료의 유입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며 "이러한 기법은 울산 약사동 고대 제방 유적에서 나타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시신을 두는 매장주체부는 길이가 약 1.5m인 큰 돌을 세우거나 눕히는 형태로 조성했다. 규모는 길이 6.9m, 너비 1.6m, 깊이 1.7m이다. 벽면과 천장에는 일부 주칠을 했다. 인접한 63호분처럼 2.5m 길이 뚜껑돌 8매를 놓고 깬돌로 틈을 메운 뒤 점토를 얇게 덮었다.

조사단은 매장주체부가 두 차례 도굴된 것으로 판단했다. 실제로 유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도굴범이 놓고 간 것으로 짐작되는 고무 대야와 양동이가 있었다.

 

양 연구관은 "39호분은 수혈계 횡구식 석실분으로 보이는데, 나무판을 경계로 부장 공간이 나뉜다"며 "63호분이 깬돌로 무덤방을 조성한 것과 달리 39호분은 판석을 썼는데, 창녕에서 발굴을 통해 이 같은 사례가 확인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연구소 측은 39호분 매장주체부 건축 양식에 대해 "경북 성주 성산동 고분군 등 대구·경북 지역과 일본 나가노 기타혼조(北本城) 고분 등지에서도 발견된다"며 "비화가야와 주변국 교류 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고 강조했다.

무덤 둘레에 쌓는 돌인 호석(護石) 남동쪽 구간에서는 약 2m 간격으로 큰 항아리인 대호(大壺)를 묻었다.

 

박종익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장은 "한쪽에만 의례용 토기를 놓는 사례는 신라 행렬도를 새긴 토기가 나온 경주 쪽샘 44호분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한편 봉토 지름이 8m인 62호분에서는 천칭처럼 잔 두 개가 있는 토기와 잔 6개가 달린 등잔형 토기, 주전자형 토기 등 상형토기를 비롯해 유물 400여점이 나왔다. 아울러 큰 토기 안에 작은 토기를 넣고, 같은 종류 토기를 포개거나 열을 지어 놓는 매납 양식도 확인됐다. 토기는 또 다른 소형분인 38호분에서도 출토됐다.

 

연구소 관계자는 "상형토기는 주로 가야와 신라 지역에서 발견되는데, 창녕 지역에서 나타나기는 처음"이라며 "특히 천칭 모양 토기는 국내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사적 제514호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은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 묘역으로, 목마산과 화왕산 기슭에 무덤을 조성했다. 비화가야는 창녕을 거점으로 삼은 가야 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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