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장례학과의 효시는 1999년 봄, 서울보건대학(현 을지대학교 성남캠퍼스)인데, 같은 해, 명지대학교사회교육대학원에서도 '상장례최고지도자과정'이란 학과가 탄생했다.
이듬해, 2000년 3월, 기자가 제3기로 입학했는데 그때 인원이 고작 7명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동문들은 지금도 현장에서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1.장례지도사교육원 운영, 2.요양산업으로 진출, 3.장례용품제조회 경영, 4.동물장례업 경영 및 관련협회 회장, 5. 여성대학교수 등 쟁쟁하다. 또 한사람 본 기자.....
당시의 수업 내용이란 그야말로 황무지, 미국 엠바밍 책자의일부분을 시커멓게 복사한 몇 페이지가 교재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의미심장한 사실은 상장례학과를 창설한 사람은 명지대 경영학과 경영학 박사인 전도일교수(작고)였다. 또 그때 학과가 창설된 사연은 주민들의 복지향상 방안을 연구하다가 내린 결론은 "복지중에서도 인간의 가치가 가장 소중한 바, 사람이 마지막 임종할 때에도 제대로 인정받고 존경받는 풍토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선 장례문화 연구가 필요하다.." 는 결론을 내리고 이에 따라 전도일교수 주도로 '지방자치'를 공부하던 여러분야 기성세대 학생들이 호응하여 장례학과가 찰설되었다는 것이다. 기자의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으나 장례학과가 '인간가치의 존중'이란 명제로부터 출발하였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은것은 사실이다. 또 당시만해도 국내 최초로 학과단위 홈페이지를 기자가 만들었다는 추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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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기자가 말하려는 이야기의 주인공은 동기 7명 중에 한 사람, 남승현 대한장례지도사협회 회장에관한 것이다. 그는 당시 금융업계 임원으로 있다가 물러난 다음 장례업에 뜻을 두고 그때만해도 한국 초유이던 장례학과에 입학한 참이다. 그는 당시에도 매우 활발하고 의욕적인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그 학과를 졸업하고부터 위생제재 제조와 보급에 일편단심 지금까지 달려 온 그는 현재 완전히 자리를 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학구열이 대단하여 명지대를 거쳐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장례식장 안치시설 및 염습도구의 오염실태와 감염관리에 관한 연구"란 긴 주제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소지한 박사다. 뿐만 아니라 제23회 신지식인 인증식에서 특허분야 신지식인 인증서를 수여받은 바도 있다.
그의 또 다른 현재 직함은 '사단법인 대한장례지도사협회 회장'이다.
기자는 지난 9일 모처럼 서대문 협회 사무실을 찾았다. 남자들이 주로 드나드는 사무실치고 매우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고 회의용 사무비품과 책들이 가득 꽂힌 책장이 우선 어떤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또 협회 살림을 도맡은 송덕용 사무총장도 스스로 걸레질을 하며 사무실을 깔끔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에서 27,000명 국내 장례지도사들을 아우르고 대표해야 할 협회의 위상과 책임감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협회 이사회도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내부 소통을 원활히 하면서 그 때마다 전문가를 초빙하여 특강도 실시하는 모습 등이 비영리 공익 기관으로서 할 일을 제대로찾고 있다고 볼 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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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협회 회장을 수임하게 된 과정 또한 사사로운 목적이 아닌 전적으로 공적인 수임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수 장례지도사들의 권익을 위한 공적인 활동에 조금만치라도 흠을 남길만한 편파적인 치리가 없도록 하겠다는 업무방침에도 믿음이 갔다. 보건복지부에 인가를 신청한 바, 좋은 결정이 있을 것으로 여기고 준비하는 자세가 보였다.
화살처럼 빠르게 흐른 세월 18년,
당시 본 기자도 서울 강남역에 납골당(장안낙원) 모델하우스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장례업계에 입문한 결정타였는데 그후 계속 남회장 같은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뜻을 같이하여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다.
조촐한 점심식사와 원두커피 한잔, 그리고 즐겁고 우애 가득한 대화.....
그야말로 같이 늙어가는 20년지기 우정이지만,
젊고 유능한 신진들이 가득 뒤를 잇는 작금,
마지막 열정을 다하고 합심하여 한국의 장례문화산업 발전에 기여하여야 겠다는 각오를 공유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