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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뉴스

<장례, 유쾌한 반란>“아니, 이게 장례식이야?” 조문객들의 의아했던 표정이 서서히 미소로 변해

양평청란교회 하이패밀리에서 거행된 장례식, 고정관념 타파하고 웃음꽃 피운 장례 혁명

역사는 물흐르듯 느긋하게 흘러가다가 때로는 높은 파도를 동반한 격랑의 변혁이 일어나 지난날의 사고방식과  일상을 크게 변화시키는 '혁명'이라는 격변이 수시로 찾아온다. 

 

수백년 아닌 수천년이 될지도 모르는 장례관행이 지금 어느 한 곳에서 큰 변혁을 일으키려 하고 있다. 장례는축제라고 선언하고 유쾌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사단법인하이패밀리' 송길원 목사가 주도하는 '메멘토모리 기독시민연대'가 그 주체다. 

 

지난 10월 10일 저녁 7시 40분 Zoom영상 시스템으로 중계된 발기인대회의 선언문 중 일부다.

"(중략)죽음이 바르게 회복되는 자리에 인간 존엄과 품위가 있다. 그 때 삶은 예술이 된다. 메멘토모리 기독시민연대는 기독교 상·장례 모델을 찾아낸다. 죽음교육을 통해 죽음지수를 높인다.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으로 안내하는 지팡이가 된다. 죽음의 사회·생태 환경을 일구는 일에 활동목표를 둔다." 

 

 

관련기사 --> 메멘토모리 기독시민연대 발기인대회 성료
 

'(사)하이패밀리'가 소재한 양평 '청란교회'에는 가정사역 전문 목회자인 송길원목사가 마련한 장례시설이 오랜전부터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실내외 장례식장, 유가족과 조문객들이 함께하는 카페, 성경적인 의미를 고스란히 담은 '막벨라호텔(굴)', 고인을 경건하게 모실 투명안치관 '예효경라스텔',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맞춘 묘지시설인 수목장까지....

 

   

송길원 목사가 청란교회 장례식장 시설을 Zoom 영상으로 브리핑하고 있는 모습이다.

(왼쪽은 실내장례식장, 오른쪽은 막벨라굴(호텔)에 편히 안치된 고인의 관이다)

 

그리고 '장례는축제다, 유쾌한 반란'의 때가 드디어 왔다. 12월 1일 0시 39분 임종하신 고인을 3일 11시 발인 예배후 교회 경내 수목장에 모신 60 여시간 동안 실시된 일체의 장례관행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진행됐다.  실감있게 전하기 위해 장례를 시종 주관한 송길원 목사의 SNS글을 인용하기로 한다.

 

 

<첫 장례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아니, 이게 장례식이야? 결혼식이지.” 
조문객들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다. 곳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호상(好喪)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장례식장 곳곳에 고인의 웃음사진이 놓여 있었다. 고인의 삶이 그러했기에 그가 남긴 웃음의 향기가 조문객들의 얼굴에 웃음으로 번지고 있었다. 

 

        

 

3단짜리 조화와 국화전시, 지나친 염습과 결박은 사라졌다. 고인은 붉은색 개량한복을 입은 채 호텔에 잠들었다. 가장 평온한 영면(永眠)이었다. 아무도 굴건과 완장을 차지 않았다. 조문객들이 머무는 카페의 시계가 0시 39분을 가르킨 채 멈춰 서 있었다. 

 

고인이 숨을 거둔 시간이었다. 유가족만이 아닌 조문객의 심장도 함께 멈춰섰다. 진정한 애도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모두들 묻고 있었다. ‘내 삶의 시간이 멈출 날도 머잖았구나.’

말 그대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였다. 

 

  
  사진: 고인을 경건하게 석별하는 유가족 모습(좌)과 만남과 사랑의 기쁨을 나누는 장면(우)

 

조문객들의 접객은 맛 기행이었다. 양평 서종의 맛 집들이 소개되었다. 음식점 주인이 말했다. “썰렁하던 경기가 살아난 듯 기분이 짱입니다. 축복받을 거예요.” 

 

좀 체 보기 힘들었던 교회 장례식이 살아났다. 영정사진 앞에 묵념을 하고 재빨리 빠져 나와야 하는 눈도장 장례식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손주 손녀들이 찾아낸 추억의 사진이 전시되었다. 고인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메모리얼 테이블에는 밑줄 그어진 성경과 찬송가가 놓였다.

 

고인은 ‘나의 갈 길 다가도록’(384장)을 가장 즐겨 부르셨단다. 그 옆에 효자손(등 긁개)이 주인을 잃고도 기분좋게 웃고 있었다. 손자 손녀들이 쓴 편지와 고인이 받은 감사장이 훈장보다 빛나고 있었다.  

 

병원장례에서 맛 볼 수 없는 것들은 한 둘이 아니었다. 유가족들을 위한 기도실과 예배실, 침묵의 계단은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기에 넉넉했다. 유가족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휴게실과 숙소, 방문객들을 위한 갤러리까지 보태졌다. 저녁노을과 둥근 달, 빛나는 별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물이었다. 

 

2세들의 역할도 돋보였다. 방역사령탑을 자청한 손자는 발열체크와 기록, 안내를 맡았다. 호스트가 된 손녀는 분주하게 손님들 사이를 오가며 차를 대접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것은 고인이 좋아했던 간식이었다. 손님들이 남긴 쓰레기를 말없이 치우는 손길도 그들 몫이었다.  말 그대로 가족장, 아니 가족잔치였다. 

 

 

그리고.....
'장례는축제다, 유쾌한 반란'의 진면목은 계속되었다. 고인을 모신 '막벨라굴(호텔)'의 모습이다. 기자를 안내한 송 목사님의 진지한 브리핑은 앞으로 기독시민연대가 주도해 나갈 장례혁명의 정신 그대로다. 막벨라굴(호텔)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가족이 묻힌 가족공동체의 중심으로 유대인들이 이 동굴에서부터 에덴 동산으로 가는 길이 시작된다고 믿는 것처럼 이곳에 안치된 고인도 이곳을 거쳐 영원한 안식처 하늘나라로 가는 중도 거처를 호텔로 명명한 것이다. 

 

2개의 동굴이란 원어의 뜻과 같이 또 하나의 작은 굴을 옆에 마련해 놓고 평소에는 임종체험 공간, 장례가 중복될 경우에 동시 진행할 수 있도록 대비한 공간이다.  이 막벨라호텔에 평상복을 곱게 입은 고인이 평화로운 자세 그대로 투명한 안치관 '라스텔(라스트호텔)'에 모셔졌다.

 

 

조문 접대실은 평소 교인들의 휴게실로 사용하는 카페에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간식)으로 조문객들을 접대하고 있었고 벽면에 고인의 평소 모습을 담은 영상이 소개되고 있었다. 이틀째 저녁에는 Zoom 영상으로 교회장례식장 현장을 소개하며 장례식의 혁신적인 의미를 다시 한 번 브리핑했다.


사흘째 마지막날 또 한번 이변을 보여주었다.
현행 장례식에서는 대개 이른 아침 간단한 발인식후 화장장으로 고인을 앞세우고 유가족들이 동행하여 화장장에서 고인과 유족확인, 대기, 화장로 입고, 대기, 수골후 유가족들은 다시 봉안당이나 자연장 등 묘지로 함께 가서 안치하는 절차가 고정적이었다. 

 

 

이번 혁명에서는 먼저 고인을 화장장으로 모셔다가 화장후 유골함을 모시고 교회로 돌아와 발인식을 거행후 자연장으로 모시는 거의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다.  송길원 목사는 "지금까지의 발인식과 화장후 봉안당 안치까지의 절차는 거의 7시간 가까이 유족들이 고생을 하는 모습인데 그걸 고쳐야 합니다. 화장한 유골도 고인의 시신이란 점은 마찬가지 아닙니까?" 라고 장례관행 변혁의 의미를 말해 주었다. 

 

 

먼저 호텔 막벨라에 머물러 잠든 고인에게 관보(棺褓)가 덮였다. 준비된 리무진에  유족을 대표한 손자가 동승하고 화장장으로 향했다.  유족들은 떠나가는 고인을 향해 손을 흔들어 환송했다. 그리고는 교회에 남은 유가족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사랑을 나누었다. 

 

오전 10시, 화장을 끝낸 고인이 돌아온다는 전갈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의 유해가 가장 앞장서 어머니를 맞이했다. 둘째아들이 받아든 유골함과 함께 채플에 모셔졌다.

 


11시 15분 전, 유족들과 조문객들은 방역수칙을 따라 줄과 칸을 비워 착석했다. 파이프오르간의 연주가 모두의 마음에 하늘의 평화를 전하고 있었다. 발인예배는 무게가 있었고 장엄했다.  큰 며느리의 추모사와 작은 아들이 조가(弔歌)가 이어졌다.

 

 

예배를 마친 후 조문객들은 유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교회 계단위에 두 줄로 서서 터널을 만들었다. 영정사진과 함께 유족들이 걸어 나올 때 찬양으로 또 다시 위로를 전했다. 

 

예배를 마친 후 조문객들은 유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교회 계단위에 두 줄로 서서 터널을 만들었다. 영정사진과 함께 유족들이 걸어 나올 때 찬양으로 또 다시 위로를 전하며  청란교회 경내에 있는 수목장지까지 모두 함께 걸었다.

 

 

 

안치는 부부동혈(夫婦同穴)이었다. 아버지의 이장(移葬)과 함께 일어난 부부금슬(琴瑟)의 상징이었다. 자녀들이 준비한 최고훈장이었다. 모든 유가족이 허토에 참여했다. 이어 추모의 종을 타종했다. 종소리가 구릉을 타고 땅 끝까지 번져갔다. 줄을 당기며 소리치는 메시지는 영화의 엔딩 자막처럼 강렬했다.


“아버지, 어머니! 천국에서 봬요.”

 

사진 : 화장후 발인식에 이어 유골함을 자연장 묘지에 모시는 유가족들(zoom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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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모리 기독시민연대가 주관하는 최초의 장례식 유가족이 된 금번 상주는 "장례식장 아닌 결혼식 같은 분위기에 조문객들이 당황할까봐 걱정했는데 조문객들의 의아하던 표정이 차츰 변하는 모습이 오히려 재미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인을 기리는 영상과 정성스럽게 전시된 유픔들을 들러보면서 새롭게 혁신적으로 변한 장례식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들이 참으로 흐뭇했다고 말했다. 예배시작부터 추모의 종을 타종하고 마치는 데까지 정확하게 1시간이 걸린 뜻깊은 진행이었다.

 

 

"어떤 조문객은 농담까지 했어요. '아니 19년전에 작고하여 천국에 먼저 가 계신 부군을 만나는 것이니까 혼인잔치란 말이 맞군요"'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요" 

 

기자가 보는 또 다른 관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전통장례가 IT기술을 만나 오히려 가능성의 활개를 편것이다.  지금까지 뜻있는 사람들이 장례문화를 변화시키고자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2020년 비록 코로나로 인한 언택트 시스템이 때를 만난 점도 있겠지만 그렇게 변화시키려 해도 쉽지 않던 장례관행이 IT기술에 의한 온라인 시스템이 때와 장소를 초월한 접근으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장과 주관자의 전시효과가 지역적 한계를 벗어날 수 있었고 때를 가리지 않고 학습효과를 계속 유지 할 수 있다는 점도 무척 흥미롭다. 소수의 개척자가 대다수의 안목에 변화를 제공할 수 있다는 여건이야말로 매우 긍정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장례혁명 #메멘토모리 #하이패밀리 #기독시민연대 #청란교회 #송길원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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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만큼 중요한 죽음준비 -김영심 웰다잉전문강사 임신 10달동안 태명에서부터 음식, 음악, 독서, 태담, 동화, 영어와 수학으로 학습태교까지 하고 있다. 태어날 아기를 위해 정성스럽게 최선을 다해 태아교육을 하고 있다. 탄생만큼 중요한 죽음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보건소나 노인대학 강의시 죽음준비를 하고 계신가요?라고 물으면 “나는 죽음준비 다 해놓았어요.”라고 대답을 하시는 분이 계신다. 어떻게 하셨느냐?고 물으니 윤달이 있어서 수의를 해 놓았고 영정사진도 찍었다고 하신다. 결국 수의와 영정사진만이 죽음준비를 대신하고 있다. 죽음준비 강의 후에 ‘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을 안 해봤는데 죽는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 ‘죽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웠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오히려 편안해지네요.’ ‘사는동안 잘살고 죽음도 잘 받아 들여야겠어요.’ ‘확 깨게 만들어 주셔서 감사해요’ ‘집에 가서 자식들하고 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이런 강의 처음 들었어요’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준비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좋은 시간이었어요.’ 등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처음에는 학장님이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죽음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라며 못을 박으며 ‘신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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