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있는 '서울 SOS 어린이 마을'. 세 살 꼬마 민호(가명)가 자기 키보다 높은 책장 위를 가리키며 "엄마, 저거"라고 칭얼댔다. 그러자 정순희(여·58)씨가 책장 위에서 민호의 색칠공부 책을 꺼내줬다. 민호가 놀아달라며 손을 끌어당기자 정씨는 "이따가 누나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같이 놀자"고 달랬다. 정씨는 고등학생 딸 6명, 중학생 딸 1명, 세 살 민호까지 8명의 자식과 한집에 산다. 서울 SOS 어린이 마을은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들을 성인이 될 때까지 돌봐주는 아동복지단체다. 1982년 신월동에서 문을 연 이후 35년째 집 열 채가 조그만 마을을 이뤄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봐왔다. 지금은 비어 있는 두 곳을 제외한 여덟 채에서 7~8명씩의 아이가 8명의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정씨처럼 배가 아닌 가슴으로 자식을 낳은 엄마들이다..이곳 엄마 8명은 모두 '평생 결혼하지 않고 아이들을 돌보겠다'는 서약을 하고 들어왔다. 엄마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정씨는 1986년부터 30년 동안 아이들을 보살펴왔다.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켜 세상으로 내보낸 자식만 50명이다. 그 자식들이 이제 아이를 낳아 명절이나 어버이날 때면 정씨를 할
배우 문근영이 소아암 및 희귀난치병 환자들을 위해 약 13년간 고액의 기부를 해 온 사실이 밝혀졌다. 22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랑의 열매 공식 홈페이지에는 문근영이 아너 소사이어티 178번째 회원으로 등재돼 있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지도층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 고액기부자 클럽으로 배우 안재욱, 박해진, 김보성, 소녀시대 윤아, 미쓰에이 수지, 축구선수 박지성 등이 포함돼 있다. 천여 명에 달하는 회원들은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한 순서대로 번호가 붙게 되는데 문근영의 경우 초창기인 2012년에 가입해 백번 대의 번호를 받았다. 문근영은 지난 2003년부터 사랑의 열매를 통해 소아암과 희귀 난치질환자의 수술비를 꾸준히 기부해왔다. 지난 13년간 기부해 온 금액은 총 9억 3천여만 원에 이른다. 2008년에는 이 단체에 8억 5천여만 원을 익명으로 기부해 온 여배우의 정체가 문근영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를 모았는데, 문근영은 이후에도 조금씩, 꾸준히 기부를 해왔다는 전언. 사랑의열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문근영 씨는 꾸준히 기부했던 고액기부자 중 한 명이다. 익명으로 기부를 해왔으나, 2015년부터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얼굴을 공개하
♣ 매일 아빠는 울고 있어요. 나처럼 엄마를 만나고 싶은 거예요♣.아내가 4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나와 아들 둘만의 생활이 시작됐다. 아이 뒷바라지하랴 매일 식사 준비하랴 지쳐만 갔다. 회사 일도 잘 안 풀리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집안일도 제대로 못하는 나와 아들을 하늘에서 아내가 보고 얼마나 슬퍼하고 있을까. 아빠 역할과 엄마 역할을 모두 해야 했던 나는 잘 하지 못해 몇 번이나 좌절감을 느꼈다.하루는 밤늦게 집에 돌아와 몹시 지쳐서 밥상을 차릴 기운도 없어 옷을 벗고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때 ‘퍽’하는 소리가 나서 보니 라면 국물과 면발이 사방에 튀어 침대시트와 이불이 엉망이 됐다.이불 속에 컵라면이 있었던 것이었다.‘뭐하는 자식이야!’라며 화가 솟구친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던 아들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렸다. 너무 화가 나서 심하게 때렸더니 울음을 터뜨린 아들이 나에게 말했다.“밥은 아침에 다 먹어 버렸어요. 저녁은 유치원에서 먹었는데 아빠를 기다려도 안 와서 욕실에 뜨거운 물로 컵라면을 만들었어요. 아빠가 가스불은 사용하면 안 된다고 했으니까. 하나는 내가 먹고, 또 하나는 아빠 꺼 남겨둔 건데. 라면은 식으면
한류 톱스타 이영애의 선행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이영애는 여러 나눔 활동에 조용히 힘을 보태는 모습으로 대중의 귀감이 되는 것. 아이들이 자라 살아갈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됐으면 하는 마음을 비친 이영애의 뜻깊은 행보가 시선을 끌고 있다. 이영애는 13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부사관 사랑 음악회-더 히어로스'의 경비인 4억 원 전액을 후원했다고 알려지며 관심이 쏠렸다. 이번 음악회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용사들의 자리. 육군부사관학교발전기금을 통해 기부활동을 해오던 이영애의 또 한 번의 선행이 알려지며 훈훈함을 안긴다. 이영애는 이에 앞서 지난 8월에는 북한의 DMZ 지뢰 도발로 큰 부상을 당한 김정원 하사와 하재헌 하사에게 위로금을 전달하고 전방에서 고생하는 부사관들을 위한 공연에 써달라며 5천만 원을 기부한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당시 이영애의 지인에 따르면 이영애는 젊은 군인들이 북한의 지뢰 도발로 다리를 잃는 처참한 상황을 겪고도 "평생 군인으로 남아 나라를 지키겠다"고 다짐한 용기와 희생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다. ▲ 음악회에 참석한 이영애 부부 이영애는 이 같은 일이 외부에 알려지는 걸 철저히 막고 있지만, 이미
지난해 11월 절도 혐의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A씨(25)는 너무나 기쁜 소식을 들었다. 4년 전 결혼했던 아내가 임신했다는 것이다. 이후 A씨는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모범적으로 복역하다 지난 1월 출소했다. 새 삶을 살기위해 교육을 받고 임시직이긴 하지만 직업을 가진 A씨는 아내의 불러오는 배를 보며 행복했지만, 못내 아쉬운 점이 있었다. 바로 아내와 결혼식을 치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모아놓은 돈이 없는 그에게 결혼식의 벽은 높았다. 그러던 중 그는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등의 지원으로 많은 사람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을 하게 됐다.5일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 경기지부와 한국민속촌은 수원지방검찰청과 본보의 후원으로 용인 한국민속촌에서 ‘제31회 합동 전통혼례’를 개최했다. A씨처럼 형사처분, 보호처분을 받은 이른바 법무보호대상자 10쌍을 대상으로 합동전통 결혼식이 열린 것이다. 이날 오후 2시께 한국민속촌 내 혼례장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신랑 신부가 서로 맞절을 올리며 백년해로를 다짐했다. 이 행사는 이들이 교도소에서 반성의 시간을 지켜봐 준 가족들을 위해 앞으로 새로운 미래를 다짐하며 뜻깊은 의미를 전하고자 만들어졌으며 이 자리에는 이순국 경기일보
안녕하세요? 전 33살의 주부입니다.결혼해서 지금까지 분가해서 살고 있는데남편은 혼자 사시는 아버님을 모셔 왔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꺼내더군요.어느 며느리가 혼자 되신 시아버지 모시자는 말에단번에 좋다고 할 수 있겠어요.더구나 우리보다 훨씬 형편이 나은 형님도 계시는데,수입이 많지 않은 남편이 모신다는 것이 저로선 이해가 안 됐습니다.전 임신 중이라 회사도 관둔 상태였거든요.그 일로 거의 매일 싸웠습니다.전 저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서로 입장만 이야기하니싸움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더군요.그렇게 서로 지쳐 갈 때쯤, 남편이 술을 마시고 들어와눈물을 글썽이며 속에만 담아놨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곧 칠순을 바라보시는 아버님 속을 그동안 얼마나 썩였는지를요.그때마다 아버지가 다른 사람 앞에 얼마나 많은 고개를 숙였는지,차에 치일뻔한 남편 대신 차에 치여 어깨를 아직 잘 못 쓰는 것도,공사장에서 막노동하시며, 자식들 평생 뒷바라지 하셨고넉넉하진 않지만, 많이 부족하지 않게 키워주신 이야기도 했습니다.아주버님네는 아예 모시지 않겠다고 선을 그어놓은 상태고요.아들자식 키워도 다 소용없네 싶었지만,막상 제 남편이 아들 노릇 해보고 싶단 소리에아버님을 모시면 불편해
저는 평범한 회사생활을 하는 34살의 회사원입니다. 용인 민속촌 근방의 회사에서 근무를 하다가 회사 일로 인해 서울 역삼역 근처 본사에 가게 되었습니다. 용인 회사에 있을 때에는 자가용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다가 막상 서울을 가려고 하니까 차도 막힐 것 같고 지하철을 타자니 너무 답답할 것 같아서 오랫만에 버스를 타고 가기로 마음먹고 버스를 기다렸습니다. 서울로 가는 버스는 분당에서 많이 있기에 용인 신갈에서 오리역까지 완행으로 운행되고 있는 버스를 탔습니다. 그때가 7시 50분 정도 되었을 겁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버스는 만원 상태일거라 생각했는데 그날은 보통 때와 다르게 서있는 사람은 3~4명 정도고 모두 앉아있는 상태였습니다. 구성 쯤 도착해서 막 출발을 하려고 할 때의 일입니다. 한 할아버지가 양손 가득히 짐을 들고 버스를 간신히 탔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당신의 아들이나 딸에게 주려고 시골에서 가져온 식료품 같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 10 미터 정도 앞으로 전진을 했을까요?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사람들이 앞을 쳐다 보았습니다. 운전기사가 할아버지에게 차비 없으면 빨리 내리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몰
50대 중후반 부부가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했다. 8개월에 걸쳐 러시아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을 누볐다. 오토바이 한 대로 총 41개국을 훑었다.강병희(58)·이병자(56) 부부를 인천의 자전거 공장에서 만났다. 부부가 평생을 매달려 일궈온 회사다. 자전거를 수입하던 회사는 어느덧 직원 10명에 자체 브랜드를 판매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부부는 그간 딸과 쌍둥이 아들을 키웠고, 시집간 맏딸은 손자를 안겼다. 결혼 30년째 되던 2012년, 남편은 사업을 돕던 아들에게 회사를 갑자기 물려줬다. 그다음엔 배기량 800㏄짜리 근사한 독일제 오토바이를 샀다. 그러고선 "엄마와 이걸 타고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자식들에게 통보했다.부부는 2008년 한 달간 자전거를 갖고 스페인 산티아고를 여행한 적이 있지만, 자녀는 아버지의 선언을 믿지 않았다. 아들 강민수(29)씨는 "오토바이 타고 국내 여행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장기간 해외를 누비는 여행이어서 놀랐다"며 "당연히 어머니를 설득하지 못할 거라 봤다"고 했다. 작년 초 어머니가 "아버지와 여행가겠다"고 했을 때, 세 자식은 걱정으로 다 같이 울었다고 했다. 이씨는 "남편은 평소 세계여행을 함께 가고 싶다는 말을 하곤 했다"
SBS '8뉴스'를 진행하는 정미선 아나운서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29일 SBS에 따르면 정미선 아나운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진행을 맡았던 2008년 희귀난치병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대사에 임명되면서 받은 출연료 1000만원을 월드비전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에 기부했다. 정 아나운서는 올해까지 8년째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대사직을 수행하면서 2009~2013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희귀난치아동후원파트에 기부했다. 또 작년에는 우연히 길을 지나다 자원봉사자들이 나눠준 팸플릿을 보고 장애인을 위한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의 낙후된 건물을 새로 짓는 데 보탬을 주기도 했다.정 아나운서는 올해 SBS '8뉴스'를 진행하면서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 대사관 앞 수요시위를 15년째 이어가고 있는 단체로, 생존자 의료지원, 상담, 인권캠프, 치유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8년 동안 8000만원이라는 거금을 기부한 것에 대해 정 아나운서는 “돈은 그냥 나를 잠
개그맨 유재석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나눔의 집에 4천만 원을 기부했다. 22일 오후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개인 SNS를 통해 “유재석 씨가 2015년 6월2일에 나눔의 집에서 추진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관 건립에 2천만 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복지 지원에 2천만 원 포함 총 4천만 원을 기부했다”고 밝혔다. 이어 안신권 소장은 “유재석이 2014년 7월에도 2천만 원을 기부해 지금까지 기부 금액이 총 6천만 원에 이른다”고 전했다. 유재석과 ‘나눔의 집’은 지난해 ‘무한도전’ 멤버들의 코리아스피드페스티벌(KSF) 출전 과정을 담은 레이싱 특집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당시 멤버들은 출전 차량에 사회 단체의 이름표를 부착해 해당 단체의 홍보를 지원하는 역 스폰서 활동을 펼친 바 있다. 당시 유재석은 ‘나눔의 집’ 마크를 달고 출전해 "완주 후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차량 고장으로 아쉽게 완주에 실패했다. 하지만 유재석은 완주에 실패했음에도 남몰래 후원을 실천했다.
6·25전쟁 당시 인해전술로 내려오던 중공군을 공포에 빠뜨려 ‘육박전의 사나이’로 알려진 영국 출신 유엔군 참전용사가 조만간 한국을 방문해 영국 정부로부터 받은 훈장을 기증한다. 국가보훈처는 6·25전쟁에서 무공을 세워 영 연방 최고의 무공훈장인 ‘빅토리아십자훈장’을 받은 참전용사 윌리엄 스피크먼(88·사진)씨가 20∼25일 방한한다고 밝혔다. 스피크먼씨는 보훈처 초청으로 이번에 한국을 찾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 연방 4개국 출신의 6·25 참전용사 및 가족 일행 85명에 포함됐다. 스피크먼씨는 6·25전쟁 당시 근위 스코틀랜드 수비대 1연대 소속 이등병으로 참전했다. 2m가 넘는 거구인 스피크먼씨는 1951년 11월4일 새벽 임진강 지역 일명 ‘후크 고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을 때 6명의 육탄용사와 함께 용감무쌍한 수류탄 공격을 감행해 적진에 막대한 인명 손실을 가했다. 당시 스피크먼씨는 심한 다리 부상을 당했으나 소속 부대가 철수할 때까지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부상한 그는 1952년 1월 영국으로 돌아갔으나 귀국 3개월 만에 자진해서 한국으로 돌아와 같은 해 8월까지 전장에서 싸우는 투혼을 보였다. 그의 무용담은 영국 더 타임스
3세 때 소아마비에 걸려 두 다리가 불편한 1급 장애인 김영배(43·택시기사)씨는 지난 2월 외동딸 민지(16)를 하늘로 보냈다. 올 초까지만 해도 댄스 동아리에서 신나게 춤도 추고 대회도 5개나 나갈 정도로 건강해 보이던 딸이었다. 그런 민지가 지난 1월 26일 갑작스러운 두통과 구토 증상으로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민지의 뇌에 5㎝ 크기의 종양이 있었다. 민지는 더 큰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지난 2월 2일 뇌사(腦死)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뇌종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뜬 민지의 장기가 현재 다른 사람 4명의 몸에서 힘차게 뛰고 있다."민지가 다른 분 4명에게 생명을 베푼 만큼 이 사회에 4배 이상의 좋은 에너지가 생길 것이라 믿습니다."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하지만 몸이 불편한 김씨에게 외동딸 민지는 딸 이상의 딸이었다. 민지는 어릴 때부터 '우리 아빠는 내가 지킬 거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아빠를 챙겨줬고, 2년 전 새엄마가 된 이모(39)씨에게는 수시로 '엄마, 우리 힘들지만 같이 힘내자'며 격려 편지를 건네던 효녀였다. "지난해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갈 때 민지는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가서 내 성적표를 떼왔어요. 여행이 끝나고
가수 오승근(64)이 "사업 실패로 한 순간에 70억 가량의 손해를 보고 전 재산을 날렸다"고 고백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오승근이 16일 한 방송에서 70억 사업 실패와 함께 아내 고(故) 김자옥의 든든한 응원으로 가수로 재기할 수 있었던 사연을 털어 놓은 것. 그는 "사업이 잘 되다가 IMF 당시 믿었던 사람에게 사기를 당해서 부도가 났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아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아서 사업이 실패 한 후 아내가 알게 됐다. 그때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를 달게 돼 아직 신용불량자 신세"라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또 "당시 암 투병 중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는 아내를 보고 사람들은 '남편 사업 빚 때문에 김자옥이 쉬지 않고 일을 한다'고 수근 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숱한 루머에 시달렸지만, 아내 김자옥의 열띤 응원과 내조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재기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이어 "사업 실패 후 실의에 빠져있는 나에게 아내가 노래를 권유했다"며 "태진아 씨께 '있을 때 잘 해'란 곡을 받았는데, 처음엔 생소한 트로트 장르에 선뜻 도전하기가 두려워 노래를 거절했다. 하지만 아내와 태진아의 끈질긴 설득 끝에 녹음을 했고, 트로트 가수
“스님께선 어느 책에서나 죽음이 무섭지 않다고 하셨는데 정말 무섭지 않습니까.”(최인호) “죽음은 나무가 자라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이거늘, 육신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 소유물이 소멸된다는 생각 때문에 편안히 눈을 못 감는 것이지요. 육신은 내가 잠시 걸친 옷일 뿐인걸요.”(법정 스님)3월11일 법정 스님(1932∼2010)의 입적 5주기를 앞두고 고(故) 최인호 작가(1945∼2013)와의 산방 대담을 담은 ‘꽃잎이 떨어져도 꽃은 지지 않네’(여백·사진)가 24일 출간됐다. 2003년 4월 길상사 요사채에서 4시간 동안 나눈 대담이다. 책에는 2004년 출간된 ‘대화’(샘터)에 수록된 대담과 산문집 ‘최인호의 인생’에 실렸던 법정 스님 관련 글이 수록됐다. 최 작가는 생전 암 투병 중에도 법정 스님의 입적 3주기에 맞춰 2013년 이 책을 출간하려 했지만 소설 작업과 병세 악화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해 9월 세상을 떠났다. 그는 출판사에 스님이 입적한 날(3월 11일)을 전후해 책을 내 달라고 유지를 남겼다. 책 제목과 구성도 작가가 직접 정했다. 두 사람은 행복, 사랑, 고독, 죽음, 진리, 시대정신 등 11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남은 생의 꿈에
"봉사 스펙위해 지원했지만 그분들 이야기 들을수록 우리가 빚지고 있다는 생각"서울 노원구의 12평 임대아파트에 혼자 사는 양모(87) 할머니는 호적상으로는 일흔둘이다. 아들 귀한 집에서 구박 받으며 자라 열다섯 살에야 호적에 올랐다고 한다. 어머니가 정해준 남자에게 시집가 천덕꾸러기로 살았지만 갓난 아들의 맑은 눈망울을 보며 견뎠다. 그 아들을 업고 떠난 6·25 피란길에서 맞은 어느 아침.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전쟁 뒤 이 집 저 집에서 '식모살이'를 하던 할머니는 두 번 재가(再嫁)했지만, 결국 외로운 식모살이로 돌아왔다. 할머니는 "내 육신은 도움 없이 살 수 없었지만 출생신고가 늦어진 탓에 나라에서 주는 혜택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했다. 양씨 할머니가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한스러운 삶이 다음 달 자서전으로 나온다. 할머니를 대신해 자서전을 쓰고 있는 이는 박주은(17·노원구 혜성여고 3년)양이다. 박양은 지난 석 달간 매주 토요일마다 할머니 집을 찾아 할머니의 인생을 글로 정리해왔다. 박양은 "처음엔 '피란 왔다'고만 하시던 할머니는 차츰 가슴속 응어리진 사연을 들려주셨다"고 했다. 박양이 석 달 만에 탈고한 자서전의 첫 문장은, '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