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야 김좌진 장군 추모제향이 22일 충남 보령시 청소면 재정리 소재 장군묘소에서 거행됐다. 김좌진장군 추모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임기석) 주관으로 거행된 이날 제향에는 이시우 보령시장을 비롯한 각급기관·단체장, 김좌진 장군의 증손자인 송일국씨(39세, 탤런트)를 비롯한 유족과 주민 등 500여 명이 참석해 장군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렸다. 백야 김좌진 장군은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독립전쟁 사상 최고의 승리로 꼽히는 청산리 대첩의 주역으로 일생을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다. 보령시는 묘역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장군의 업적과 독립정신을 계승하고자 청산리 대첩기간(10월21일~26일)중인 22일에 매년 추모제향을 올리고 있다.
미국 뉴저지주의 한인 밀집지역인 팰리세이드파크시 도서관 앞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들을 추모하는 기림비. 이번 추모 기림비는 미국 한인들의 권리신장 운동을 펼치고 있는 한인유권자센터(KAVC)와 지역 주민들의 1년여 노력끝에 세워졌다.
▶도쿄 유해발굴 심포지엄서 신운용 연구원 주장 ▶뤼순(旅順) 감옥 부근에 있던 안중근 의사의 묘지가 이후 아파트 건축 과정에서 영원히 사라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신운용 안중근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4일 도쿄 민단 8층 홀에서 열린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 국제 심포지엄에서 주제 발표를 통해 안 의사를 매장한 곳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신빙성 있는 것은 뤼순 감옥 옆의 둥산포(東山坡.동쪽산 언덕)라는 주장이라며 이곳에는 이미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묘지는 영원히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신 연구원은 둥산포설(說)의 근거로 중국의 공식기록인 여순일아감옥구지(旅順日俄監獄舊址)에 독립운동가 유해를 발굴했다고 나와있는 지역이 일제가 만든 뤼순비밀군사지도에 선으로 표시된 묘지와 일치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뤼순감옥 관리의 딸인 이마이 후사코 씨가 주장한 뤼순감옥의 뒷산 묘지설 등에 대해서는 근거자료 없는 일부의 주장이라고 평가했고, 이에 근거해 한국 정부가 2008년에 벌인 발굴 작업을 혈세 낭비라고 비판했다.신 연구원은 희망적인 얘기를 하면 좋겠지만, 연구자의 양심상 안 의사의 묘지가 없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할 수밖
국가의 장례의식인 국장과 국민장이 ‘국가장(國家葬)’으로 통합되고, 장례기간은 5일로 단축된다. 행정안전부는 21일 국가장 기간을 7일에서 5일로 줄이는 내용의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을 재입법예고했다. 행안부는 지난 3월 국장과 국민장을 국가장으로 합치고 장례기간을 7일로 정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으나 장례기간이 너무 길다는 여론을 반영, 법률조문을 변경했다. 다만 천재지변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장 기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재개정안은 또 국가장일 관공서 휴무규정을 삭제했다. 국가장에 들어가는 비용은 국고에서 부담하되, 조문객의 식사비용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용은 제외하도록 했다. 국가장 대상자는 전·현직 대통령과 대통령당선인 또는 국가와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사람이다. 대상자가 서거하면 유족 등의 의견을 반영해 행안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한다.
행복전도사로 알려진 작가이자 방송인 최윤희(63)씨가 7일 오후 8시30분께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의 한 모텔에서 남편 김모(72)씨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이날 오전 7시15분께 투숙한 최씨 부부가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긴 모텔 종업원에 의해 시신이 발견됐다고 밝혔다.최씨는 모텔방 침대에 누운 채로, 남편은 화장실에서 끈으로 목을 맨 채로 각각 발견됐으며, 방 테이블 위에는 최씨가 직접 쓴 편지지 1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다. 경찰은 최씨의 목에 남아있는 흔적으로 미뤄 남편이 먼저 최씨의 자살을 돕고 나서 뒤따라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이 유족을 통해 최씨의 친필로 확인한 유서에는 2년 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며 많이 지쳤다, 더 이상 입원해서 링거를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 않다며 심장과 폐질환 등 투병생활에 지친 내용이 담겨 있다. 또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마음을 이해할 것.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수는 없고..그래서 동반떠남을 하게 됐다며 부부가 함께 목숨을 끊은 이유도 적혀 있다. 최씨 부부는 모텔에 투숙하기 전날 집으로 찾아온 아들 부부에게 여행을 간다
▶[제1회 위국헌신상] 헌신 부문/ 이용석 육군 중령▶6·25 전사자 유해 발굴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1분, 1초가 아깝다는 생각에 어쩌다 보니 지난 10여년 동안 휴가 한 번 못 갔네요. 허허허….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과장 이용석(51·3사 16기) 중령은 국내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의 선구자이자 산 증인이다. 육군본부에 근무하던 1999년 유해 발굴을 처음으로 계획하고 추진했다. 이듬해 4월 초 경북 칠곡의 다부동에서 유해 발굴을 위한 첫 삽을 떴고, 이후 11년 동안 전국의 주요 전투지역 1000여곳을 찾아다니며 유해를 발굴했다. 그가 발굴 현장 책임자로 활동하는 동안 발굴된 유해가 5153구에 이른다. 그는 유해 발굴 전문 특기인 1230특기를 부여받은 첫 군인이다.지금까지 증언을 청취한 분들이 2만명쯤 됩니다. 이젠 전화로 몇 마디 질문만 던져도 제보가 믿을 만한지 알 수 있을 정도가 됐죠. 그가 돌아다니는 거리는 매년 6만㎞나 된다. 그 사이 전용 차량을 3대나 갈아치웠다. 그가 유해 발굴 분야의 최고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뼈를 깎는 노력과 이 일만은 꼭 내가 해야 한다는 헌신적인 사명 의식이 밑거름이 됐다. 그가 유해 발굴을 한다고 하자 주
“이 땅에 기독교가 전래된 지 1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조상 숭배(또는 제사) 문제가 기독교 복음 전파에 적지 않는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추석을 며칠 앞두고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 만난 손봉호(72·영동교회 장로·사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손 교수는 “제사 문제만 해결되면 교회에 나오겠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면서 제사나 절의 문제가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 소지가 있다면 당연히 배격해야 하지만, 지금은 구한말 초대 교회 시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기독교 추모예식이 새롭게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크리스천 가운데 제사를 우상 숭배나 조상신 숭배로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속으로는 제사를 우상 숭배로 여기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말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전통 제사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성경의 가르침을 따르는 새로운 추모예배 보급이 시급합니다.”손 교수는 기존의 기독교 추모예배는 성도들에게는 유익하나, 불신자들과 함께 하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그는 요즘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 후원으로 성경적인 추모예배 및 대안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내달 이와 관련
‘천안함 46용사’가 잠들어 있는 국립대전현충원 내 사병 제3묘역(천안함 희생자 묘역)이 순국열사에 대한 희생정신과 보훈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국립대전현충원(원장 권율정)은 19일 “천안함 46용사가 안치된 4월 29일 이후 지금까지 묘역을 찾은 참배객은 63만 명으로 하루 평균 4500여 명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특히 “일반 참배객 중 90%가 ‘천안함 희생자 묘역과 고 한주호 준위 묘역이 어디냐’고 물을 정도로 천안함 희생자 묘역을 찾는 발길이 많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현충원은 이달 17일 경내에 천안함 희생자 묘역 위치를 알리는 이정표와 안내판 9개를 설치했다. 현충원에는 국가원수, 애국열사, 장군, 장교, 사병묘역 위치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지만 단일 사건 희생자 묘역 표지판이 별도로 설치된 것은 이번이 처음.천안함 희생자 묘역은 일반인들의 보훈관광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달 16일 오후에는 충남 공주시 신풍면 노인회 회원 40명이 관광버스를 이용해 이곳을 찾았다. 노인회장 박노선 씨(73)는 “계룡산 동학사 관광이 끝나자 일행 중 한 명이 ‘여기까지 왔으니 천안함 희생자 묘역에 가 보자’고 즉석에서 제안해 참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9일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독립운동가 이준(1859~1907) 열사의 묘역을 참배하고 헌화했다.(사진) 김 총장은 지난 4일 시작된 국제검사협회(IAP) 집행위원회 및 연례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헤이그에 머물고 있다. 우리에게 대한제국 고종 황제의 밀명을 받고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서 특사로 활동하다 순국한 것으로만 알려진 이준 열사는 대한제국 최초의 검사이기도 하다. 그는 1896년 현재의 사법연수원에 해당하는 근대적 법률교육기관인 법관양성소의 첫번째 졸업생이다. 김 총장에게는 ‘선배 검사’인 셈이다. 이 열사는 을사5적을 처단하려다 체포돼 복역 중이던 독립운동가들의 사면을 주장하다 검사 자리에서 파면됐다. 대검찰청은 “이 열사는 국제법에 탁월한 식견을 가진 검사였으며, 특히 이번에 국제검사협회 연례총회 개막식이 열린 리데르잘 건물은 당시 이 열사가 참석을 갈망했던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장소라 의미가 남다르다”고 설명했다.
▶차에 깔린 친구 죽을 힘 다해 살리고 하늘나라로.....50대 남성이 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한 친구를 구한 후 자신은 숨져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10년 전 객지생활을 청산하고 홀로 고향에 돌아와 친구 농사를 도우며 사는 김모씨(57·광주 남구 이장동). 김씨는 5년 전부터 당뇨를 앓아 최근 건강이 악화됐지만 죽마고우 이모씨(57)가 있어 늘 힘이 됐다.8일 오후 6시쯤 여느 때처럼 김씨는 이씨의 비닐하우스 근처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김씨는 “농로에서 지게차를 이용해 짐을 옮기는 중인데, 지게차 한쪽 바퀴가 논으로 빠져 떨어질 것 같으니 도와달라”는 이씨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은 김씨는 부랴부랴 옆에 있던 콤바인을 끌고, 20m 가량 떨어져 있던 이씨에게 달려갔다. 친구는 지게차에 타고 경사진 농로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김씨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타고 온 콤바인과 지게차를 밧줄로 연결한 뒤 지게차를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이씨가 타고 있던 지게차가 갑자기 무게중심을 잃고 논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이씨의 머리와 목이 지게차에 눌려버린 상황이 벌어졌다. 당황한 김씨는 황급히 농장으로 달려가 이번에는 트랙터를 몰
인생을 하늘 행복으로 가득 채우려면 예수님의 참된 제자,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한다고 하신 당신을 기억합니다.지난 2일 별세한 고(故)옥한흠 사랑의교회 원로목사의 장례식이 6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에서 엄수됐다. 이날 오전 9시30분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유족들의 예배 후 영구차에 모셔진 고인의 유해가 오전 11시 사랑의교회로 옮겨진 후 1만여명의 교인이 참여한 가운데 천국환송예배(발인식)가 시작됐다.홍정길 남서울은혜교회 목사가 영광의 개선식이라는 제목으로 설교에 나섰고, 두레교회 김진홍 목사,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 연변과학기술대 김진경 총장, 호산나교회 최홍준 목사가 조사를 낭독했다.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도 오정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를 통해 조사를 했고, 해외선교단체인 국제OM(Operation Mobilisation )선교회의 조지 버워 총재가 영상 조사를 보냈다.이어 공동장례위원장인 손인웅 덕수교회 담임목사와 고인의 장남 옥성호씨가 대표인사를 했고, 내수동교회 원로 박희천 목사가 축도를 전했다.운구행렬은 천국환송예배 이후 사랑의교회를 출발해 장지가 있는 경기도 안성에 있는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으로 이동했다.이날 사랑의교회 장례식에 모인 교인
‘귀천(歸天)’ 시인 고(故) 천상병 시인의부인 목순옥씨가 26일 오후 3시16분 서울 강북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5세. 고인은 지난 23일 복막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수술 후 상태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천상병기념사업회의 김병호 상임이사장은 이날 “23일 복막염에 의한 패혈증 증세로 강북삼성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돌아가셨다”고 밝혔다.1935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난 고인은 오빠 친구였던 천 시인과 1972년 결혼했으며 평생을 무직으로 살았던 천 시인의 뒷바라지를 했다.고인은 1985년부터 인사동에서 전통찻집인 ‘귀천’을 운영했으며 천 시인이 별세한 뒤 2008년 천상병기념사업회를 만들어 고인을 추모하는 작업을 해왔다. 1993년 4월 28일 간경변으로 별세한 천 시인은 이승에서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으로 표현한 시 ‘귀천’을 비롯해 시집과 동화집, 산문집 등을 남겼다. 빈소는 강북삼성병원 장례식장 7호실에 마련됐다.
▶“사회약자 배려 어머니 가르침 효도하는 마음으로 실천할 것”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는 15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나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마음, 약자 편에서 생각하는 배려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모친 육영수 여사의 제36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어머니는 소외된 분들, 고통 받는 분들에 대해 진정 가슴 아파하셨고 함께 잘사는 좋은 세상이 되도록 노력하셨으며 저에게도 말씀과 행동으로 그런 가르침을 주셨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저에게 남은 것은 효도하는 마음으로 어머니의 가르침을 잘 실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박 전 대표는 헌화 및 분향을 마친 뒤 1시간 20여 분 동안 2000여 명의 참석자와 악수하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추도식이 끝난 뒤 취재진이 개각 등 현안에 대한 의견을 묻자 “오늘은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추도식에는 박 전 대표의 동생인 지만 씨 내외가 함께 참석했다. 동생 근령 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 한나라당 서병수 최고위원과 유정복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내정자, 박종근 이해봉 서상기 한선교 이정현 현기환 조
▶옥천, 37억5천만원 들여 교동리 가옥 복원, 99칸 전통한옥으로 조성 … 방문객 잇따라 ▶방치되어 오던 고(故) 육영수 여사 생가터가 전통한옥의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박정희 제5∼8대(1963∼1974) 대통령의 영부인인 고(故) 육영수(陸英修.1925∼1974) 여사가 나고 자라 생활하던 가옥이 마침내 그녀의 고향인 옥천읍 교동리에 복원된 모습으로 공개돼 방문객들이 잇따르고 있다. 옥천군은 주민들과 후손들의 염원으로 2003년부터 37억5000만원의 사업비로 부지면적 9181㎡ 규모에 안채, 사랑채, 사당, 중문채 등 주요 건물 13동(711㎡)과 담장, 석축 등 생가터에 99칸 전통한옥으로 새롭게 지었다.이 곳은 조선시대(1600년대)의 가옥형태로 유지되어 오다가 여러 번의 개·보수로 원형은 거의 잃어버렸으며, 1974년 육 여사· 1979년 박 대통령 서거이후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 없이 방치되어 오다가 1994년 지붕이 무너져 내려 일부의 석축과 담장을 남기고는 1999년 건물을 완전히 철거해 터만 남아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1894년경 건립된 일반적 충청지역의 전통주거 건축을 기초자료로 활용했으며, 생전 육 여사의 회고와 유족들의 인터뷰를
18일 오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에서 차남 김홍업씨가 추모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