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부시 여사…4명의 전직 美대통령들의 배웅 속에 떠나
전·현직 고위인사 등 장례식 찾은 추모객만 1500여명
현직 트럼프는 경호 문제로 불참…멜라니아가 대신 참석
美주요 방송사들, 장례식 생중계…전국민이 지켜봐
1953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첫째딸과 함께 묻혀
Attendees arrive at St. Martin's Episcopal Church for funeral services for former first lady Barbara Bush, in Houston, April 2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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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 성 마틴 교회 안에선 지난 17일 향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한 바바라 부시 여사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조지 허버트 부시 전 미국 대통령과 그의 아들 조지 워커 부시 전 대통령은 각각 아내와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성 마틴 교회는 바버라 여사를 비롯한 부시 전 대통령 일가가 1950년대부터 다녔던 곳이다. 이날 장례식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 수많은 전·현직 고위 관료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현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보안 문제를 이유로 불참했다. 대신 퍼스트레이디인 멜라니아 여사가 자리를 지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트위터를 통해 “모든 부시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며 바바라 여사를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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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바바라 여사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 4명과 현직 퍼스트레이디, 교회를 찾은 1500여명의 추모객과 생중계로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수많은 미국 국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작별을 고했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전직 대통령이 아닌, 퍼스트레이디 장례식에 정당이 서로 다른 주요 인사들이 함께 모여 슬픔을 나누는 모습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추도사는 바바라 여사의 둘째 아들인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가 낭독했다. 그는 “어머니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웃음의 힘이었고, 기쁨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운 분이셨다. 그는 우리 가족의 스승이자 롤 모델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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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들은 성경 잠언 구절을 차례로 읽으며 고인의 넋을 기렸고 여덟 명의 손자들이 운구를 맡았다. 바바라 여사의 유해는 텍사스 농업기술(A&M)대학 내 조지 부시 대통령 도서관 부지에 묻혔다. 지난 1953년 백혈병으로 3살의 나이에 숨진 부시 여사의 첫째 딸 폴린 로빈슨 부시가 안장된 곳이다.
바버라 부시 여사는 프랭클린 피어스 14대 대통령의 후손인 피어스 가문에서 1925년 태어났다. 16세 때 1년 위인 남편 조지 부시를 처음 만났고 1945년 1월 20세 때 결혼했다. 크리스마스 댄스파티에서 남편을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고 4년 만에 백년가약을 맺은 러브스토리로도 유명하다. 이후 남편과의 사이에서 훗날 남편처럼 대통령이 되는 장남 조지 W. 부시와 플로리다주지사가 되는 차남 젭 부시를 비롯해 4남2녀를 낳았다. 부시 여사는 미국 역사상 남편과 아들이 대통령이 된 단 2명 중 한 명이다. 다른 선례로는 2대 대통령 존 애덤스의 부인 애비게일 애덤스 여사가 있다. 그러나 애덤스 여사도 아들 존 퀸시 애덤스가 6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결국 부시 여사는 자신의 남편과 아들의 대통령 임기를 생전에 모두 보낸 유일한 미국 여성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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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여사는 전형적인 '내조형 퍼스트레이디'로 꼽혔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사업과 정치를 도왔고 자식들에 대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뒷바라지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유층 가정에서 자라나 상원의원(프레스콧 부시)의 며느리로, 대통령의 아내로, 또 대통령의 어머니로 그 누구보다도 주목 받는 일생을 살았다.
물론 자신의 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삼남 닐 부시가 난독증 진단을 받게 된 계기로 문해력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독서 교육 관련 단체에서 활동했으며, 남편이 대통령에 취임한 해인 1989년에는 ‘바버라 부시 가족 독서교육 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부시 여사는 2012년까지 재단 이사장을 맡았다가 자녀들에게 넘겼지만 재단 내 활동은 계속했다. 명사의 삶과는 거리가 먼 백발의 할머니 스타일, 솔직한 성품과 유머 감각 덕분에 미국 대중의 지지가 높았던 영부인이기도 했다. 남편은 대통령 임기 첫해 지지율이 한때 20% 아래로 곤두박질쳤지만 부시 여사의 지지율은 여전히 40%에 육박했다. 노년에도 백발의 인자한 모습으로 뇌리에 각인되면서 꾸준히 미국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남편 재임 중 영부인으로서 한국도 공식 방문했다. 특히 1992년 1월 방한 때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 문화재를 둘러보고 붓글씨로 '한미우호, 임신 새해 바바라 부시'라는 한글 휘호를 써서 증정하기도 했다. 남편이 중국 주재 대사로 근무할 당시 배웠던 '서예 실력'을 발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부시 여사의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은 모친을 “멋진 영부인이자 수백만명에게 사랑과 평등, 문맹 퇴치 혜택을 전힌 특별한 여성”으로 부르며 “마지막까지 우리를 웃음 짓게 했다”라고 추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추모 성명을 내고 “부시 여사는 미국 가족의 대변인”이라며 “국가와 가족을 위한 헌신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외신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