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문제, 한일국제 세미나 성황

  • 등록 2009.11.04 16: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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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연대 정하균 의원 주최로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안락사 문제 한·일 국제세미나’에서는 ‘생명의 존엄성’이 배제된 채 의료계 주도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상원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는 “고통으로부터 환자를 자유롭게 하는 일이 아무리 선한 의료행위라 하더라도 죽음이라는 수단을 통해 행해져서는 안된다”며 “최선을 다해 환자의 고통 제거를 위해 노력하되 끝끝내 제거되지 않는 고통이 있을 때는 환자로 하여금 고통의 의미를 알게 하고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는 길을 제시하며 이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환자가 생명의 종결을 요청한다 하더라도 이 요청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며 “신체적 고통이 있는 환자에게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면 정신적인 고통을 포함해 비슷한 고통을 가진 모든 환자에게 안락사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경계선상에 있는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혼수상태나 뇌사상태에 있는 환자가 죽음을 원한다는 대리자의 판단은 환자의 의사와는 다를 수 있으며 매우 위험한 판단”이라며 “혼수상태나 뇌사상태에 있는 환자에 대해 음식물, 수액, 산소공급을 중지시켜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다떼이와 신야 일본 릿츠메이칸대학대학원 교수는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이유가 있다면 대부분 주위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라며 “연명이라는 것이 기계에 의지한 채 단순하게 목숨을 잇는다는 부정적인 의미로만 쓰이고 있지만 기계를 이용해서 삶을 연장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본에서도 2005년부터 한국의 ‘김 할머니’와 같은 상태에 있는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을 법제화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며 “현재 법안이 제출된 상태는 아니고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바로 법제화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과 안락사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제도화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반박했다. 허대석 한국보건의료연구원장은 “인공호흡기와 같은 연명장치가 자연스럽게 임종을 맞이해야할 만성질환자에게까지 널리 적용되면서 의미 있는 삶이 아니라 고통 받는 기간을 연장시키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죽음에 대해 논의하겠다는 것이 아닌 회생 불가능한 환자가 임종하기 전까지 중환자실에 격리된 채, 기계에만 매달린 채 보내고 있는 것에 대해 논의하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안락사는 당연히 옳지 않다. 환자에게 기계적인 삶이 아닌 의미 있는 삶을 살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며 “말기암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으면서 엄청난 의료자원을 쓰고 있는데 이들이 편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자원을 줄여 사회보장제도를 확대하자는 것인데 오해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윤성 대한의사협회 부회장(연명치료 중지 지침 제정 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의료현장에서 연명치료를 중지하는 상황이 있는 까닭은 생명을 경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의미한 연명치료로 사망의 과정을 늘임으로써 생명의 품위를 훼손하기 때문”이라며 “지속적 식물상태나 뇌사 상태 환자도 살아있는 인간이라고 한 점은 수긍하지만 뇌사를 죽음의 판단 기준으로 인정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 부회장은 “관습적으로 경험적으로 사망을 사건으로 인식하기 위해 사망을 판단하는 기준이 필요했고 오랜 기간 호흡의 종지(終止)를 기준으로 삼았다가 18세기 이후부터 심장박동 종지(終止)를 함께 기준으로 삼았을 뿐”이라며 “의료계가 제정한 ‘연명치료 중지에 관한 지침’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의사로부터 자신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자유롭게 연명치료에 관한 결정을 했다면 이를 존중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 발표자로 나선 가와구치 유키코(일본루게릭협회 이사)는 13년 동안 루게릭을 앓다 2007년 숨진 어머니를 간병한 얘기를 털어놨다. 그는 “시간마다 어머니를 움직여주고 관으로 식사를 넣어주고, 그런 과정에서 (인공호흡기를) 멈추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또 “2000년 개호보험(우리 요양보험)이 시작돼 헬퍼(요양보호사) 도움을 받으면서 엄마를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 사라졌고 내 기분도 좋아졌다”며 “가족의 부담을 작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루게릭환자의 일침 "환자의 삶의 질 향상 문제가 더 중요"
환자 대표로 나온 원창연(45·충남 천안시 두정동·사진)씨는 2005년 12월 루게릭 진단을 받은 순간을 떠올리며 얘기를 시작했다. 그는 하반신과 양팔이 마비됐기 때문에 부인 이연희(46)씨가 옆에서 마이크를 잡아줬다. 그는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살다가 수년 내에 죽는다는 얘기를 들었고 의사는 ‘아무런 방법이 없다’고 했다”며 당시의 절망적인 상황을 소개했다. 이어 “언젠가 죽을 텐데 언제 죽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지금 죽어버리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수차례 했다”고 말했다.

“안락사를 논의한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고통과 부담을 주면서 하루하루 삶을 연장하는 이들에게 ‘가족과 사회에 더 이상 고통을 주지 말고 죽는 게 어떠냐’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죽음은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강요입니다.” 원씨는 “안락사나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과 같은 고민을 하기에 앞서 사회적으로 환자와 가족들의 삶의 질 향상 문제에 더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증장애인’의견 적극 반영해야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이름으로 안락사를 감행하는 것은 ‘생명경시풍조를 재촉하는 일’이 될 수 있으며 중증장애인이 논의에 중요한 참고인으로 참가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윤삼호 부소장은 의사들이 굳이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윤리적 부담을 덜고 안락사를 다른 표현법으로 변형시켜 여론을 오도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 따르면 안락사를 결정하고 규제하는 논의에서 안락사의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큰 중증 장애인 등의 참여가 이뤄져야 하며 의사들의 신중한 태도와 접근방식이 필수불가결하다. 윤삼호 부소장은 “의료 절차상에도 문제가 크다”며 “서울대병원이 제시한 기준 중 "병원 의료윤리위원회의 의학적 판단에 따라야 하는 경우"와 "법원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경우"등의 안락사 판단 기준에서 환자 본인 의사를 완전히 배제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환자는 의료정보를 독점한 의사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되며 보호자 역시 치료비 부담으로 명확한 의사를 표시하기 어렵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윤 부소장은 “환자에게 죽음을 권유할 권리 자체를 누구로부터 부여받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의사의 말과 행동이 환자에게 영향을 끼쳐 안락사를 선택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한다”고 당부했다.
뉴스관리자 기자 info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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