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릉은 공원일까, 정원일까 ?

  • 등록 2009.05.20 16: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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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의 왕릉이 세계적으로 문화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은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에 간단히 조명해 보고자 한다.
▶본받아야 할 왕릉의 조경 철학

요즈음도 소풍을 왕릉으로 가는지 잘 모르겠으나, 4, 50대 나이의 사람들에게는 초등학교나중고등학교 때 한 번쯤 동구릉이나 서오릉으로 소풍을 갔던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선생님이 뭔가 설명을 했는데 그런 건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고 김밥을 까먹고 나서 콜라 병을 든 채 무엄하게도 왕릉 꼭대기까지 올라가 석물에 올라타고 신나게 놀았던 기억만 난다. 이 추억 속의 왕릉이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ICOMOS, 즉 국제 기념물 유적 협의회에서 서울과 근교의 왕릉을 세계문화유산으로 권고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가장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이유는 두 가지이다. “왕릉들이 유교사상과 토착신앙 등 한국인의 세계관이 반영된 장묘(葬墓) 문화 공간”이라는 점과 “자연경관을 적절하게 융합한 공간 배치와 빼어난 석물(石物) 등 조형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이유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가시적인 공간 구조물이 어떻게 추상적인 덕목들을 반영하는지를 일러주기 때문인데, 이러한 공간과 사유행위의 관계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4대 강 사업과 같은 국토 개발이나 신도시 개발 그리고 작게는 아파트 건설 등에도 활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 동안 우리가 숨가쁘게 살아온 세월을 돌이켜보면 왕릉에 녹아있는 조경 철학이 오직 왕릉에만 적용되었을 뿐 생활 속으로 파급되지는 못했다. 이런 반성은 왕릉에 대한 새로운 접근만이 아니라 한국식 조경 혹은 한국식 정원 개념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도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환경을 최우선적 화두로 여기는 요즈음 한 번쯤 되돌아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왕릉은 공원일까, 아닐까? 정원으로 분류가 가능할까?

서구에서는 왕의 묘를 결코 야외에 안치시키지 않는다. 대개 성당 지하에 안치시키곤 하는데 영국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프랑스 파리 인근의 생 드니 성당이 역대 왕들의 묘가 안치되어있는 곳이다. 그래서 지금은 문화재로 보호되면서 엄청난 관광 자원이 되어있는 옛날 궁전에 가면, 왕의 묘는 볼 수가 없고 으리으리한 궁과 드넓은 정원만 보게 된다.

이 점에 있어 우리는 서양과 전혀 다른 전통을 갖고 있다. 한국의 궁에는 묘는 물론이고 정원이 없다. 적어도 궁의 건물과 일체가 되어있는 정원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왕릉을 이 정원에 포함시켜야 될지도 모른다.

왕릉은 공원일까, 아닐까? 정원으로 분류가 가능할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능을 찾아가 산책을 하고 쉬다가 오곤 한다. 이전처럼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석물에 올라타고 하지는 못하지만 인근에 사는 사람들에게 능은 더 없이 좋은 공원인 것이다. 왕릉을 시민들이 가깝게 두고 찾아갈 수 있는 것도 한국만의 특징이자 장점이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다고 해서 무조건 폐쇄시키고 관리만 할 일이 아닌 것이다.

▶서구식 정원의 두 유형

지금 우리가 서양으로 해외여행을 가서 보는 정원들은 대개가 옛 왕궁의 정원들이다. 프랑스를 가면 대부분의 정원들이 궁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화단과 분수들이 배치되어 있고 나무들도 모두 각을 세워 전지작업을 해놓았다. 이른바 프랑스식 정원으로 불리는 이 기하학적 조경은 베르사유 궁에서 본격적으로 선을 보였다. 베르사유 정원은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정원 설계자로 남아있는 앙드레 르노트르의 작품이다. 물론 성을 지은 루이 14세는 전쟁터에 나가서도 설계도를 볼 정도로 애착을 가졌었고 어느 정도 완공되고 나서는 손수 <정원 산책법>을 쓰기도 했다.

 
- 베르사유
 
그러나 사실은 베르사유 정원보다 규모는 작지만 아름답기로는 베르사유를 능가하는 정원인 보르비콩트가 프랑스 식 정원의 출발점이다. 파리에서 남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성은 17세가 중엽 당시 재무 총감을 지낸 푸케의 성이다.

성을 짓고 완공되는 날 루이 14세를 비롯한 왕실가족과 귀족들을 초대해 성대하게 만찬을 베풀었지만 23세의 젊은 루이 14세는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시만 해도 루이 14세는 루브르에 머물고 있었고 귀족들의 난을 겨우 진정시키고 난 직후였다. 게다가 푸케는 루이 14세의 애첩에게 접근을 해서 여러 가지 부탁을 넣기도 했다.

 
- 에르몽빌 철학자의 정원
결국 푸케는 귀양을 가서 죽고 말았고 루이 14세는 보르비콩트 성을 지은 건축가, 화가, 정원사를 불러 베르사유를 짓도록 했다. 푸케의 성에 있던 조각과 장식은 물론이고 정원에 있던 나무들까지 모두 뽑아오도록 했다. 당시 왕의 진노가 얼마만했는지를 알 수 있다.

즉 베르사유 궁과 정원은 절대왕정의 정치적 무대였던 것이고 그 규모와 화려함은 “짐이 곧 국가다”라고 외쳤던 절대군주의 정치적 야망을 나타낸다. 베르사유 궁의 실내 장식만이 아니라 정원 등이 모두 태양이라는 하나의 상징으로 출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를 태양왕으로 불렀던 루이 14세는 태양 광선처럼 방사선으로 뻗어나간 도로와 정원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이는 당시 자연관을 일러주기도 하는데 무질서하고 변덕스러운 자연을 인간의 이성적 지배 하에 두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상록수만으로 정원에 조형성을 부여할 뿐 일체의 꽃은 금지시켰고 이른바 자수화단이라고 하는 개념에 따라 잔디를 심어 마치 수를 놓듯이 땅을 구획해서 장식했다.

이 나무들과 화단은 프랑스 4대강을 상징하는 분수들을 좌우에서 감싸며 뻗어나가다가 마지막으로 태양신인 아폴론 분수에서 정점에 도달한 다음 원근법의 소실점을 따라 직선으로 뻗어나가도록 배치했다. 조각은 필수품이었는데 이탈리아 정원의 영향이었으며 로마로 유학을 간 파리 국립 미술학교 학생들이 로마에서 고대 조각을 모각한 것들을 본국으로 보낸 과제물들이었다.

유럽의 군주들은 모두 이 베르사유를 모방했고 직접 프랑스 정원 설계사들을 초청해 공사를 맡기기도 했다. 빈의 쇤부른, 포츠담의 상수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여름 궁전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스페인과 심지어 중국에서도 베르사유를 모방해갔다.

 
- 에르몽빌 루소의 묘
 
- 빈 쇤부른 정원
18세기 들어 이러한 프랑스식의 인위적인 정원 개념에 대한 반발로 풍경화 정원이 서서히 모습을 나타낸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당시 계몽주의 시대를 살고 있던 런던과 파리의 시인과 작가들의 작품에서 시작된 일이다. 또 당시는 전 유럽에 회화가 크게 인기를 끌기도 했는데 풍경화 정원은 목가적 세계를 그리워하는 풍경화에서 나온 회화적 조경이다.

 
- 스토헤드 풍경화 정원
대표적인 예가 영국의 스토헤드 정원이며 프랑스의 경우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던 장 자크 루소가 숨을 거둔 에르몽빌 정원이다. 지금은 샤토호텔이 되어 손님을 받는 고급스러운 영업장이 되었지만 에르몽빌에 가면 유명한 ‘폐허 화가’인 위베르 로베르가 설계한 장 자크 루소의 무덤이 있다. 물론 루소의 묘는 프랑스 대혁명 때 영웅으로 추대되는 바람에 판테온으로 이장되었지만 그 묘곽만은 그대로 남아있다.

현재 런던에 가면 세인트 제임스 파크, 하이드 파크, 켄징턴 가든, 리전트 파크 등 수없이 많은 공원과 정원들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오솔길과 연못 그리고 너른 잔디밭을 갖고 있는 영국식 정원들이다. 이 정원들은 막대한 돈을 투자해 외국에서 가져온 구근 식물들을 심는 등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들인데, 이러한 정원 열풍은 런더너들에게까지 퍼져 모두들 손바닥만한 정원이라도 가꾸려고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영국인들의 유별난 정원 사랑은 여기서 나왔다. 이런 유행 탓에 사실 영국 정원은 절충주의식이 되어버려 프랑스식 정원보다 양식성이 적다.

▶한국의 왕릉에서 한국식 정원 개념을 완성시켜야

비단 궁이나 정원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식 정원이라는 개념 자체가 유럽인들에게는 존재하질 않는다. 언제나 일본과 중국식 정원만 존재한다. 이는 무언가 잘 못된 것이다. 청덕궁의 금원인 비원만 해도 얼마든지 한국식 정원 개념을 도출해낼 수 있는 곳이고 40기에 이르는 통일성을 갖춘 조선조 왕릉은 두말한 나위가 없다.

한국 정원들에 스타일을 부여하고 추상적 덕목들과 사유행위와의 관련성을 찾아내 양식화 시켜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양식화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정원의 구성요소와 개념과 그 철학적 근거를 명문화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양식은 광화문 광장을 조성하는 데에도 한강을 개발하는 데에도 4대강을 개발하는 데에도 지침이 되고 준거가 되어야 한다. 조선 왕릉은 “유교사상과 토착신앙 등 한국인의 세계관이 반영된 장묘 문화 공간”이자 “자연경관을 적절하게 융합한 공간 배치와 빼어난 석물(石物) 등 조형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고 한다. 이 칭찬을 한국적 정원 개념으로 양식화시켜야 하며 도시계획과 국토 개발에 연계시켜야 할 것이다.

한국은 이 양식화 작업에 둔감한 편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는 스타일들의 역사, 즉 양식사가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우선은 학자들이 게으른 탓도 있지만 외세의 잦은 침탈과 즉흥적인 민족성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베르사유와 파리가 하나의 동일한 정원 설계 개념에서 나온 사실은 우리가 참고할 만하다. 작은 로터리에 분수대 하나를 설치하고 포도의 상판을 교체하는 작업에서부터 광화문 광장 조성을 비롯한 더 큰 사업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사유행위와 추상적 덕목들이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즉 반복되고 전수되며 창조적으로 변형될 수 있는 하나의 한국적 형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여행·문화·예술 포탈 레 바캉스(www.lesvacances.co.kr) 대표 정장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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