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짜 청년의 베트남 수출 일기
㈜노리소프트_정영인 대표
교육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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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미래에 아이들에게 따뜻한 교사가 되고 싶었고 교실은 왁자지껄한 놀이터이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탁상공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꿈꾸는 교실이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교사가 먼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예비교사 친구들 다섯 명을 모아 ‘STEAM 교육기부단’이라는 교육봉사 단체를 만들었다.
청년 사업가의 미래를 꿈꾸다
작은 날개짓이 수많은 네트워크를 만들어 3년 뒤인 2017년에는 초·중등 교육수혜자 멘티 200명, 멘토 50명을 달성했다. 아이들은 늘 우리 수업을 기다렸으며 우리는 각종 멘토링 대회나 전국 공모전에서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콘텐츠를 제시하여 수상을 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부끄러움 없이 스스로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졌을 때 나는 청년 사업가가 된 멋진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내가 만든 교육 콘텐츠를 전 세계 아이들이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내 판매도 시작하기 전에 감히 해외 수출이라니! 지금 생각하면 너무 용감하면서도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호기 있고 강단 넘치는 상상이 머지않아 현실로 이어질지 누가 알았겠는가?
작년에 열린 한국무역협회 주최의 무역수기 공모전을 보며 내년에는 꼭 수출을 달성해서 저 수기를 쓰겠노라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2017년 2월에 사업자등록을 냈고 창업 동아리에 가입하는 동시에 산학협력사업을 시작하였다.
무작정 찾아간 수출상담회, 바이어와 대화는 어려워
우리는 우선 베트남, 태국, 인도 등 동남아 시장 진출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수출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정말이지 가장 쉬운 건 사업자 등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사업과 수출은 막연하고 어려웠다. 수출은 도저히 그 실체가 잡히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영역으로만 보였다. 온갖 강의를 듣고 상담을 받아도 머리로는 알겠지만 구체적으로 감이 안 잡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렇게 해서 언제 바이어를 만나고 수출을 하겠는가. 어려운 걸 쉽게, 복잡한 걸 단순하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직접 만나서 대화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지금까지 개발한 콘텐츠만 수십개다. 뭐라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내 상품에 유효 수요가 있는지, 무엇이 부족하고 문제인지를 알지 않겠는가? 그래서 단 몇 개월 만에 무작정 찾아가 뛰어든 곳이 ‘수출 상담회’였다.
4050 세대들이 절대 다수인 넓은 상담회장에서 미숙하고 어린 사업가가 손에 쥔 거라고는 상담 시간표와 콘텐츠 샘플, 그리고 무역협회 사이트에서 공부한 해외시장 조사 보고서가 전부였다. 내가 처음에 만난 바이어는 미국의 어느 국제학교 마케팅 담당자였다. 우리 제품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지만 자신이 찾는 제품은 아니라고 했다. 그 다음은 일본, 그 다음은 중국. 여섯 번째 팀을 만났을 무렵 아침식사로 가득 채웠던 뱃속이 비워지는 것을 느꼈고 목소리가 갈라지며 몸에 힘이 풀렸다.
한번 생각해보시라. 주어진 40분 동안 상품을 설명하는 것은 물론 당신의 철학과 비전을 함께 제시하고 이것들이 상품에 녹아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 오랜 제도권 교육 아래 영어 회화는 나름 자신이 있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그저 자신감으로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는 불가능했다. 상대에게 전달하고 싶은 정보는 많고 설득도 해야 하고 바이어 얘기도 들어봐야 하고, 서로 교집합이 무엇인지 앞으로는 어떻게 진행해야 하는지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생각만 해도 해야 할 일이 차고 넘치지 않는가.
결론은? 그래서 망했다. 수출상담회 첫째 날 7명의 바이어와는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그들의 시간을 뺏어 오히려 미안한 마음과 쓰디쓴 자책감이 밀려왔다. 숙소에서 스스로를 힐난하고 자책하는 구렁텅이에 빠져 당장 내일을 걱정하고 있는 나를 보고 한 팀원이 이런 말을 했다. “그냥 학생 앞에서 수업하듯이 해보자!”그 말을 듣고 나는 “아! 수업 시연!”이라고 박수를 치며 외쳤다.
Would you introduce your company?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하면 교사의 일방적인 설명만으로는 아이가 이해했는지 못했는지 무엇이 궁금한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지 않는가. 지금 생각하면 그 팀원의 말 한마디가 오늘의 수출 성과를 이루었다 할 정도로 강렬한 깨달음과 각성을 주었다. 나는 지금까지 말하기만 했지 상대방의 얘기를 귀 기울여 도통 제대로 듣지를 않았다는 것을 깊이 깨달은 것이다.
다음 날 이어진 수출 상담회 행사장에서 나는 바이어에게 이렇게 말했다. “Would you introduce your company?” 그리고 “What products are you interested in?”라고 덧붙였다. 내 제품을 소개할 테니 들어보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회사와 네가 관심 있는 제품이 궁금하니 먼저 이야기 해달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펼치며 웃기도 하고 나의 반응에 천진난만한 아이의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14명의 바이어를 만난 첫 수출상담회에서 2개의 기업과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그 중 베트남 기업과는 오늘날의 수출을 실적을 이루었다. 피곤함과 후련함을 기차에 싣고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설득은 말하는 것이 아닌 듣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Call &Response’ 하며 이루어지는 수업과도 같은 것이다.
베트남과 독점 계약, 작은 방에서 수출하다!
그렇게 설득의 기술을 발견하고 꾸준히 소통하여 수출 문제까지 단 한 번에 일사천리로 해결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랬다면 나는 이렇게 수기를 쓰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사업할 공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같은 사범대학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었기에 사실 딱히 장소라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었다. 제 기능을 하는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든 상관없었다.
나는 사업자등록, 법인 설립도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는 집 주소로 하여 사업자등록증에는 내가 사는 아파트 이름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정말 사무실이 필요가 없었을까?
아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사업할 자금이 없었다. 이것이 수출은 물론 사업 전개의 첫 번째 어려움이라 할 수 있겠다. 대출 한번 없이 단돈 100만 원으로 사업을 시작한 나는 운영자금이 모자라 대학생으로서 온갖 공모전이나 대회, 아르바이트를 통해 50만 원, 100만 원, 200만 원씩을 모았다. 닥치는 대로 준비물을 위한 준비를 한 것이다. 콘텐츠와 기술을 개발하고 유지하는데도 비용이 상당했기에 당연히 사무실을 임대할 자금은 그 당시 생각하지도 못했고 그럴 여력도 없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사업을 창고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간절히 기도했다. 우리 집, 나의 작은 방에서 수출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말이다.
두 번째 어려움은 바이어와의 ‘밀당’이다. 우리는 물건을 사러갈 때 아무리 단골이라도 내 지갑에서 나가는 돈이기 때문에 신중하고 꼼꼼하게 따져본다. 캡 모자 하나를 사기 위해 방방곡곡 찾아보며 손에 쥐었다 놨다 한다. 바이어는 더 까다로웠다. 만년필을 가져와 계약서 서명 직전까지 갔는데 한 번 더 생각해보겠다고 돌아서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제품 하나를 수입하기 위해 온갖 다양한 것을 조사하고 시간과 비용을 경제적으로 계산한다. 그리고 우리와 가격이나 수량 또는 시간으로 협상하고자 한다. 베트남 바이어도 그러했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무엇이 어디서부터 더 필요한 것인지 자세히 얘기해주지 않는다.
세 번째 어려움은 ‘수요에 대한 욕심’이다. 아무리 내가 유익하고 재미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소비자의 구매욕구가 없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차별성과 혁신적 기술이 있다고 하지만 상대 바이어의 자국 유효수요가 제로에 가깝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미 당신의 콘텐츠, 제품과 비슷한 것이 현지에서 판매되고 있다면 그것을 포기하겠는가?
나는 STEAM 교육이 어느 나라에서라도 블루오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교육과정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는 자부심과 함께 정부보다 이전에 서비스를 운영한 사례가 있다는 장점을 나는 제품의 강점으로 보았다. 하지만 바이어들은 속속들이 그 제반사정을 모른다. 그들은 현재와 미래의 수요성, 한계비용, 당장 제품의 가시적인 측면만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기 때문이다. 나의 정성이 한 땀, 한 땀 들었기 때문에 반드시 수요가 높을 것이라는 착각과 욕심이 가장 위험한 것이었다.
가장 좋은 조력자는 직접 경험한 노하우
내 결론은 이렇다. 나는 내 방에서 수출을 했다. 납품확인서에 서명을 받고 있을 때 베트남 바이어가 내게 물었다. “서울이나 학교, 다른 곳을 놔두고 왜 집 주소를 그대로 유지하십니까?” 나는 차마 ‘돈이 없어서’라는 말은 할 수 없어서 떼굴떼굴 머리를 굴려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제 방에서 산업혁명과 같은 교육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죠.”
방에서 수출을 하든, 창고에서 수출을 하든 제품의 콘텐츠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제품을 보면서 조사하고 나와 교신하는 그 모든 과정은 의사소통이다. 거래 성사까지 밀고 당기며 나를 괴롭히는 수많은 질문들이 인내를 요구하고 불안과 불만도 생기지만 그들에게는 새로운 제품에 대한 관심과 신중함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나는 수출 상담을 통해 그들과 함께 1년 이상의 긴 수업을 했던 것이다. 또 이러한 대화의 과정 속에서 부족했던 것,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몰랐던 부분을 보완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가 이루어졌다.
성공에는 조력자가 늘 따른다. 그런데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조력자는 내가 경험한 노하우일지도 모른다.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 디슨은 ‘나는 발명하기 위해 발명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럴 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서 그냥 너무 좋아서 사업을 하고 싶었다. 수천 명의 청중들 앞에서 내 제품을 이야기하는 상상을 하는 것이 교단에 선 나의 모습보다 더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당신도 또 다른 괴짜 청년이다
간절함과 설렘 때문에 시작한 수출, 그리고 그 수출의 성과로 나는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땅의 청년들이 도전할 수 없는 것에 도전하고, 당장은 믿을 수 없는 일을 믿었으면 좋겠다. 그 열정에 노력을 더한다면 당신도 에디슨과 같은 괴짜 청년이다.
수출한다는 것은 그저 소비자에게 재화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다. 무역은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다. 제품 속에 담긴 그들의 과거와 현재와 간절한 미래, 그리고 우리의 삶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너와 내가 주고받은 웃고 울고 상처받고 부서지고 다시 깨달은 많은 이야기들이 녹아 춤을 추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무역은 수입과 수출의 결과를 넘어 새로운 일생의 순간들을 가져다 주는 따뜻하고 소중한 것이었다. [출처 : 한국무역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