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단은 무덤 내부의 유물을 빨리 수습해야만 이런 분위기를 잠재울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결국 서둘러 야간발굴을 강행했고, 이튿날 아침 9시까지 왕의 시신 머리에 씌웠던 금장식, 왕비의 베개, 은팔찌, 동거울, 중국 자기와 중국 돈 등 108종 4000여점을 찾아냈다. 그러나 시간에 쫓겨 큰 유물만 대충 위치를 표시하고, 나머지는 무덤 바닥에서 훑어내 꽃삽으로 쓸어 담았다. 하룻밤 새 왕릉 발굴이란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왕릉에서 나온 유물들 덕에 백제의 역사를 다시 쓰는 계기가 됐지만 학술적인 자료를 얻을 기회는 놓치고 말았다. 유리구슬 수천 점이 나왔지만 이게 팔에 매단 것인지, 목에 건 것인지도 모르고 쓸어 담기에 바빴다. 당시 고분 안의 온도가 어떻게 됐는지 기초 조사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유물을 주워담는 수준에 그치고 말았다. 사실 장비도 카메라가 1대 있었고, 야간발굴을 위한 발전기도 공주 군청에서 빌린 게 고작이었다.
고대 백제사의 비밀을 풀어줄 블랙박스 무령왕릉 발굴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왕릉을 단 하루 만에 발굴한 것은 어떤 후진국에서도 하지 않는 일이다. 당시 30세의 젊은 나이에 발굴 요원으로 참가한 것은 영광이었지만, 평생을 유적 발굴에 몸담아 온 나로서는 지금도 무령왕릉 얘기만 나오면 몸 둘 바를 모른다. 만약에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발견 당시의 실내공기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해 치밀한 조사계획을 세우고 모든 조사방법을 동원해 1년이든 2년이든 최선을 다할 텐데…. 나는 요즘도 발굴현장을 찾으면 후배들에게 후회 없는 조사를 부탁한다. 한번 실수한 발굴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고. [조선일보 에세이/ 조유전(경기도문화재연구원장·前국립민속박물관관장) |